충청북도
나이가 지긋이 드셨지만 요즘 사회 분위기로는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조금 어린 식당 운영자가 멸치 똥을 따고 있다. 그 뒤에 비닐이 깔린 오래된 하늘색 마블 무늬가 있는 상이 있고, 그 앞 의자에 오진우가 앉아 있다. 얇은 비닐을 깔아 놓은 식당은 오랜만이라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나 대게를 먹을 때 사용한 기억이 떠오른다. 식당은 부부로 보이는 사람이 운영하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고 해도 식당은 유달리 고요하다. 오진우는 아무래도 백반 값은 현금으로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자동차에 현금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일어서려는데 부엌에서 어머니보다 더 나이가 드신 것 같은 여자가 나온다. 잠시만 기다려요. 국에 불만 올리면 됩니다. 말하고는 멸치 똥을 따는 사람 멀찍이 다른 곳에 앉는다. 오진우는 오래된 식당의 미닫이 문을 스르륵 열고 밖으로 나온다. 분위기가 금방 싸우고 토라진 것 같이 냉랭하다.
차 안에 있는 배낭에 다행히 지폐가 있다. 돌아와 앉으니 작은 반찬들이 놓여 있다. 10가지는 되어 보이는 반찬이다. 그리고 곧 따뜻한 시래깃국이 나온다. 얼마 만에 먹는 백반인지 오진우는 설레기까지 한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맛있는 것을 찾아 먹었지만 허기진 부분이 있었다. 밥집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주변에는 특히 백숙집이 많았는데 오진우는 혼자 백숙집에 들어가서 백숙 먹을 자신이 없었다. 남은 음식을 싸서 다음날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확신 없이 들어온 가게 었다. 밥을 한 그릇은 비우고도 찬으로 나온 감자조림과 이름 모를 나물은 한 번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좋다. 냉랭한 분위기 안의 세 사람 모습이 자연스럽다. 멸치 작업을 거의 마쳤는지 나이 든 남자는 손을 털고 신문지를 접는다. 오진우는 나이 든 남자에게 현금을 내고 거스름돈을 돌려받는다. 오진우는 식당에서 뭘 내고 돌려받았던 때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끼어 억 소리를 내는 미닫이를 다시 열고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인사를 하고 나온다. 셋은 냉랭한 공기 속에서 각자의 일을 했다. 오진우는 밥을 먹는 데에 집중했고 나이 든 남자는 멸치와 남은 일을 정리했고, 가장 행동반경이 넓었던 가게 주인은 잘 모르겠지만 가장 분주했다. 오진우는 밥 한 그릇을 먹었는데 마음까지 따뜻해져서 밖으로 나온다. 어쩐지 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소백산에 드나드는 사람이 이 계절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본격적으로 여름으로 접어들기 전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주중이라서 사람이 없는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더 추웠던 강원도보다 사람이 적다. 소백산 아래쪽에 있는 작은 한옥마을도 반 이상이 문이 닫혀 있었다.
울 수 있었다면 마음에 담아 놓고 불편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상실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으나 무엇을 잃었는지까지 잃을 것 같은 마음이다. 오진우는 운다는 것은 어떤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은 회사 사람들에게로 되돌아간다. 오진우는 직장을 잃었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슬픈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곳에서 걸었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착각과 오해 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채로 질문을 만들어내기만 하는 것이 버거울 때는 걷기에만 집중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오진우는 여행을 통해 배운다. 새로운 것을 향해 움직이면 새로운 것들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익숙한 것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어떻게 작동되는지 모르겠지만 퇴사 여행이 자신과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은 조용하고 사람은 거의 없다. 다행히 오진우는 텃밭에서 물을 주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텃밭 주인은 옆 한옥으로 오진우를 안내했고 작은 방 하나를 선택했다. 오진우는 아래쪽에 세워둔 자동차를 숙소 앞에 올리고 가방을 옮긴다.
소백산 어의곡에서 도시락을 받아서 산에 오를 예정이었다. 오진우는 도시락을 받아서 산에서 먹을 수 있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등산을 선택했다. 톡에서 친구 추가를 하고 예약을 걸어놨지만 예약 손님이 몇 명 이하 일 때는 운영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새벽 4시부터 닭이 울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는 처음 온 세상처럼 조용하더니 새벽은 달랐다. 처음에는 ‘아 이게 시골의 맛이지’ 생각했지만 지속되는 울음에 오진우는 이런 시골의 맛은 더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뜨고 주인아주머니는 귀한 음식이라 하시면서 오골계가 낳은 삶은 달걀을 주셨다. 방울토마토와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프로바이오틱 1000억을 쟁반에 올려 방에 넣어 주셨다. 그걸 받아 드는데 아주머니를 멀리서 지켜보시면서 오진우의 반응을 살피는 주인아저씨도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부스스하고 눈은 반쯤 든 채로 오진우는 ‘감사합니다’ 말하고 문을 닫는다. 눈을 뜨고 문 앞에 놓인 쟁반을 본다. 책상다리를 하고서 정신이 멍한 오진우가 방금 상황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하루가 지났다면서 조금 민망해하시지만 그래도 안정된 표정으로 ‘하루는 괜찮아요’ 말씀하시던 프로바이오틱 1000억을 먼저 먹는다. 그리고 오골계가 낳았지만 껍질은 햐얀색에 가까운 달걀 껍데기를 깐다.
여행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별한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사건에 휘말린 사람처럼 오진우는 지난 시간 속에 빠져든다. 한 편으로는 이 정도로 더 생각하지 않은 채로 덮어도 될 것 같다. 이 시간은 온전히 오진우 자신의 여행이어야만 하는데 매번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등장해서 같이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진우는 익숙한 곳으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이 일을 들춰보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이라도 잡히는 것이 있다면 잡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져들어가고 어떤 것을 문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퇴사는 회사에서 나왔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오진우에게 묻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사건 때문에 감정이 상해서 흔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중요한 가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하는 건지도 헷갈렸다. 단순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 이어진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운전을 하고 그리고 다시 내일을 생각하는 정도만이 요즘 오진우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일을 생각했지만 예상한 것과 달라지면 오진우는 다시 그만두고 싶어 졌다. 작은 것도 핑곗거리가 되었다. 산행을 해야 하지만 운동화 한 켤레 밖에는 없다. 마땅한 배낭도 없어서 산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다. 도시락을 받을 수 없으니 음식을 가져가야 하는데 주변에는 편의점도 없다. 처음 방문하는 소백산 등반로를 오를 수 있을까. 마음이 가고 싶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진다. 오진우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면서 따뜻한 방바닥에 눕는다. 눈을 껌벅이면서 땡땡하게 아파오는 두통을 느낀다. 이런 선택을 할 때면 머리가 아프다. 점심이 되기 전에 마음을 돌려 오진우는 가까운 편의점을 찾으려고 운전석에 앉는다.
등산로 입구에는 오늘 온도와 날씨가 전광판으로 크게 안내되어 있다. 신발끈을 조이고 손수건도 하나 챙겨서 손목에 묶는다. 조용한 산골 마을 초입부터 걷기 시작해서 흙을 밟는다. 가파르지 않은 경사에도 숨이 가쁘다. ‘이래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혼잣말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빵을 먹을 때 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1시간을 오르기만 했다. 지금 돌아나가도 1시간을 내려가야 하는데 비로봉까지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진다. 오진우는 왜 산에 오르려고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숨을 고르면서 더 올라야 하는 길목을 본다. 다짐한 것의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은 30분이 지나서 사라졌다. 1시간 30분을 오르막길만 올랐는데 앱으로 확인한 거리는 직선거리로는 몇 키로 되지 않는다. 발이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내리막이 오진우 눈 앞에 보인다. 땀이 나고 숨이 찬다.
어느 때보다 힘들게 걸어온 길을 멀리서 보면 몇 키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오진우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그래서 더 올라야 할 것인지 멈춰서 쉬어야 할 것인지를 가늠한다. 생각해 보면 사내에서도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산은 그대로이고 오진우는 변한 것이 없는데 달라질 수 있다는 허상이 힘든 시간을 지속하는 양분이 되었다. 오진우는 이제야 새소리를 듣는다. 낮게 흐르는 바람도 맞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돌아가자. 포기하자.
올라갔던 마음과 내려오는 마음은 다르다. 오진우는 사람보다 다람쥐와 청설모를 더 많이 만나는 것이 신기하다. 다람쥐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과 다르게 가장 부자연스러운 것은 오진우다. 오진우는 아침에 먹었던 오골계의 달걀을 생각한다. 오골계의 달걀도 검은색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자신을 생각한다. 올라갔던 길에 몸을 돌려 다시 내려오는 것인데 보이는 것은 다른 것들이다. 같은 나무와 같은 물길이지만 오진우는 다른 부분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