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선이 점점 부풀어서 터지는 것처럼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긴장되고 초조하다. 오진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시작되면 긴장이 빵빵하게 채워진 풍선이 주변에서 서성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운이 나서 멈춘 것들이 다시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간질간질하다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긴장들이 그득하다. 오진우는 비워진 곳을 채우고 잘 못 놓인 것에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아무 생각이 없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웠다. 코너에 몰리는 기분이 들었을 때는 이미 마음속이 까맣게 되어 이 우울에서 나가야 할지 몰랐을 때이다. 익숙한 물건들 곁에서는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상기시키는 것이 어렵다. 신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났던 여행에서 다시 할 일들을 찾으러 집으로 올라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오진우는 무작정 홍제천을 따라서 망원동 한강공원까지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산책길을 오른다.
웃음이 섞여 있는 탄식 그것이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목적지가 어렴풋이 예상되고 기대도 되지만 이 곳에서의 의미를 그만 소멸하는 의식 같은 행위를 갖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절망을 입 밖으로 뱉지도 못하는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야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오진우는 분명히 생각했다.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돌아다닌 건가. 여행에서는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을 때도 있었다. ‘맛있어’라든지 ‘멋있어’라든지. 돌아온 곳에서는 집이 있는데도 오진우는 자신의 자리가 사리진 것 같다고 느꼈다.
서울에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서야 오진우가 정수진에게 연락을 한다. 보낸 톡에 답장이 재까닥 돌아온다. 망원 한강공원에 앉아있다가 연남동으로 온다는 정수진의 연락을 받고 오진우가 일어난다. 망원역 쪽으로 나가서 홍대 앞을 지나는 버스를 탄다. 오진우는 정수진의 도착 예상시간을 확인하고 익숙한 쌀국수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팟타이는 맛있었다. 정수진은 오진우 기분이 궁금한 모양이다. 오진우는 궁금한 게 많았던 정수진이 추천하는 맥주집으로 향한다. 오진우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말한다. 정수진은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얼굴 표정에 들어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전달해서 공유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비판은 비난이 되었고 그렇게 되면 회사 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게 당연하다고 오진우는 생각했다. 전하지 않은 말이 많았기 때문에 정수진은 듣기만 했다. 중간중간 화가 나기도 했던 것 같다. 정수진은 참고 있다가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가 그런 식으로 너한테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 이유는 뭐래? 정수진이 오진우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회사에 내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라는데 진짜 이유는 몰라. 그 자리에 가기 전에 내가 대표의 의중을 알아 채야했을까. 그 의자에 앉아서 내가 다른 말을 해야 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는데 모르겠어.
……
처음에는 두 대표에게 화가 났던 것 같아.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찾아서 고치려고 했는데 그걸 잘 모르겠더라. 어쨌든 나도 그 세계에 속해 있었으니까 나도 잘못이 있지 않았을까.
…… 정수진은 오진우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다.
언젠가는 맨 앞자리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세계에서 나오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앉았던 의자 말고 반대편에 대표가 앉은 의자에 내가 앉았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김 대표와 다른 사람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정수진이 정색하면서 오진우에게 말한다. 너랑 김 대표랑 비교하지 마, 비교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야.
오진우가 표정이 풀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리더가 제 역할을 하고 싶은데 못할 때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나는 알아. 내가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김 대표라면 초조했을 것 같기도 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장담을 못하겠어. 직원과 소통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권위로 내려찍을까. 먼저 다른 일을 도맡아 해야 하나.
김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해해 보려고도 안 하는 사람이잖아, 애초에 능력이 있어서 대표한 것도 아니고 그냥 회사 대표가 하고 싶어서 돈을 쓴 사람이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는 그 대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 여행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람을 비난했거든. 그는 대표였고 나는 직원이었는데 기분이 나쁘다고 가장 빠르고 센 카드를 드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아마도 두려웠던 것 같아. 회사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던걸 나한테 투영한 거야.
정신 승리는 그만 하자.
그래.
너 강원도만 간 거 아니지? 언제 서울 왔어?
그냥 발 닿는 데로 강원도에서 계속 내려갔어.
퇴사 여행에서 더 현타 오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한테는 잘 맞았어.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피해 다닌 것 같아.
정수진과 헤어지고 오진우는 다시 홍제천을 걷는다. 야광 목걸이를 한 강아지와 견주를 본 것 말고는 사람이 없다. 시원한 기분과 숙제를 하지 않은 기분이 섞인 느낌이다. 아직 생각하고 결정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입 밖으로 나온 사실들은 간편했다. 종결된 사건처럼 술술 말이 나왔지만 실은 그게 맞는지도 잘 몰랐다. 적당한 단어들을 선택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기억들을 입을 통해 누군가의 얼굴을 향해 쏘아 올릴 때, 어떤 것들이 휘발된다. 오진우의 퇴사 소식은 잠깐 동안 비밀처럼 마음에서만 둥둥 떠다녔지만 이제는 입을 통해 뱉어졌다. 그래서 오진우의 퇴사 이야기는 오진우의 것이지만 점점 멀어져 간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감정 동요도 가끔 일어나는 그래서 별달리 꺼내서 이야기가 필요 없는 일이 되고 있다.
버린다고 해야 맞을까. 아님 내놓는다고 하는 게 맞을까. 퇴사를 했다는 것은 견디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도 되는 걸까. 시간은 흐르고 다시 흐른다. 점점 간추려지는 이야기는 이제 누군가 오진우를 태웠고 그래서 그만두게 되었다 정도로 끝이 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조금 거리감이 생겼으므로 더 열심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