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도 안풀릴 수가 있나?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사주팔자를 믿지 않았다.
이제 인생은 운전과 같이 내 의지만으로 100% 제어 가능하다고 믿었던 젊고 호기로웠던 시절은 끝났다. 명리학을 진지하게 공부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삼재’라는 단어는 잘 알고 있다.
2019, 20, 21년은 소띠에 해당하는 내가 삼재를 겪어낸 시간이었다. 삼재는 음력으로 계산하기에 아직 삼재는 끝나지 않았고 일주일 가량 남았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보려 한다.
2019년엔 연년생 둘째가 생겨서 육아와 임신기간을 보냈다.
2020년엔 코로나와 터짐과 동시에 22개월 첫째와 신생아 육아에 정신 없었다. 지금은 무뎌졌지만 코로나가 터진 초창기엔 치사율도 높고 백신도 없었던 상황이라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상황이었다.
당시 난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에 방콕이 일상이 시절이었다. 그 당시 육아가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별탈없이 건강히 잘 컸다. 옆에서 남편과 친정엄마가 살뜰히 육아를 도와줘서 나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과는 별개로 2020년은 엄마인 나에게 가슴이 턱! 하고 막힐듯한 시기였다. 손발이 딱 묶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내 미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상황은 여의치 않았지만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았다. 막무가내로 통번역대학원 공부와 블로그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2021년, 삼재가 끝나는 ‘날삼재’가 되었다. 재수가 좋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블로그 도서 인플루언서로 선정이 되고, 통번역대학원도 입학하게 되었다. 일을 잔뜩 벌려놨다. 하지만 여전히 애들은 여전히 어렸고, 코로나로 외부적인 요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통번역대학원 1학기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집에만 있던 나에게 많은 과제?와 동기들은 큰 힘이 되었다. 블로그도 통번역대학원 공부를 하는 엄마라는 컨셉으로 밀고 나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영어를 좋아하는 것과 통번역가는 별개라는 사실. 졸업도 어려운 실력이지만 혹여나 졸업해도 취직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점. 친정엄마가 4학기까지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점. 내적 동기도 무너지고 외부 환경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기에 1학기를 마치고 대학원을 휴학했다.
공인중개사로 일을 시작했다. 전 직장 상사가 대표로 있는 상가전문 중개법인의 소속 공인중개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 일도 녹록치 않았다. 아이들이 어려 근무시간 자체가 적고 출퇴근 시간도 멀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영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 이게 너무 큰 벽처럼 다가왔다. 집에서 글쓰고 애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사회에 나와서 모든 게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사무실을 옮겼다. 우리 집 앞에서 가장 가까운 부동산 사무실. 아이들이 어리지만 자유롭게 출퇴근하라는 대표 소장님이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일을 시작했다. 이 곳에서 전화받고 손님을 응대하는 방법 등 기본적인 업무를 배웠다.
다만 간혹 손님 안내 약속이라도 잡히면 항상 아이들 하원이 신경쓰여 제대로 일할 수 없었다. 항상 손님 약속은 아이들 하원시간과 맞물렸다. 사무실 자리를 간혹 비울 때마다 눈치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공인중개사는 계약이 체결되어야만 수익이 발생한다. 출근해서 시간만 채워서는 절대 돈을 벌 수없는 직업이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치여서 스트레스 받고 있던 찰나…
매년 다니던 갑상선 결절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갑상선 결절이 커져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권고를 들었다.
결절이 암일 확률은 20%. 암이 아닐수도 있었다. 이렇든 저렇든 갑상선 절제 수술을 해야 했다.
육아와 내 커리어 쌓기에 몰두하는 동안 결절이 암이 되었던걸까?
커피로 대충 끼니를 떼우며 내 몸을 혹시 시켜왔기에 몸은 나에게 경고를 했던게 아닐까?
그리고 날삼재가 끝나는 마지막 달에 갑상선 반절제 수술을 받았다. 진단적 시술이었기에 갑성선 결절이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2박 3일간 입원했고 퇴원날이 되어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여포암’
두둥. 사실 수술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입을 모아 양성 종양일 거라며 걱정말라며, 암 확률은 20%일 거라며 위
로해주었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이었다.
암은 조기에 제거되어 동위원소 치료는 필요없었고, 퇴원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만 하면 됐다.
일하던 사무실은 그만두기로 했다.
갑상선 한쪽이 사라지니 체력이 부족해 육아만으로도 버거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 몸의 장기를 하나 떼어냈지만 왠지 나를 가로막고 있던 돌덩이를 없앤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 상황이 더 명확하게 받아들여졌다.
일단 현실을 인정했다. 늦은 시간 손님을 응대하기엔 아이들도 너무 어렸다.
차라리 쉬자.
2022년은 잠시 숨을 돌리며 더 높은 도약!(언제나 계획이 있다…나란 사람..)을 준비하려 한다.
아이들 케어와 체력 회복에 힘쓰며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삶의 Pause 버튼을 눌렀다.
공부, 일, 건강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이 자꾸만 넘어지는 형국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니,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많으려고 이렇게 자빠지는걸까?
당분간은 쉬기로 했으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해보려 한다.
아참, 밥 잘 챙겨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게 1순위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