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문자 특징
나르시시스트와의 대화는 피곤하다. 문자도 예외는 아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기운이 빠지고 뭐라 설명하기 어렵게 기분이 상한다. 얼핏 글자만 봐서는 무해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시가 잔뜩 숨겨져 있다.
A는 전남편과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많이 지쳤다. “밥 먹었어?”라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말을 걸곤 별생각 없이 거기에 답하면 “당신은 편하게 밥도 먹는구나. 남편은 밥 먹을 새도 없이 바쁜데”라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A가 어떻게 반응하든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A의 기운을 쏙 빼고는 마지막엔 “그래 그럼 남은 오후 잘 보내~”라며 마치 다정한 남편이라도 되는 듯 마무리를 지었다. 그럴 때면 A는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싶기도 하고 어느 땐 ‘날 약 올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예전 상사는 평소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직함이나 ‘님’ 자도 없이 마치 아이를 부르듯 “○○, 이리 와봐”라는 식이었다. 그런 사람이 가끔 사내 메신저에서는 지나치다 싶게 공손할 때가 있었다. 너무 정중해서 오히려 기분이 나쁠 지경이었다. 둘 사이에 트러블이 있을 때, 특히 본인이 먼저 원인 제공을 했고 내가 불만을 표시하려 하면 “어떻게 해 드리면 될까요?”라며 마치 너그럽고 인자한 상사가 불만 많은 아래 직원을 타이르기라도 하는 듯한 말투를 취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메시지 패턴은 다양하다.
1. 친절 속 비난형
이들은 친절이나 상냥함 속에 비난을 섞는다. “일은 잘돼 가? 걱정돼서 연락했어” “잘 쉬고 있어?”처럼 시작 글은 일상적이고 때론 따뜻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내 은근한 비난, 비아냥 혹은 깎아내림이 이어진다.
“못 할 것 같으면 미리 얘기해. 괜히 고집부리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다들 고생하는데 혼자 쉬니까 어때?”
그러곤 앞의 얘기가 무색하게 “그럼 수고해”나 “그래 잘 쉬어”라며 마무리는 다시 친절함으로 포장한다.
또는 깍듯한 존경어로 자신의 공격성을 덮기도 한다.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니 유감이네요. 생각을 좀 더 크게 가져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이나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2. 수동 공격형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에 침묵하거나, 일부러 답장을 늦게 하거나, 아예 확인을 안 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는 즉각 답하길 기대한다. 답이 늦으면 왜 자길 피하냐며 피해자 역할을 맡거나 왜 바쁜 척이냐며 비아냥거린다.
3. 감정적 압박형
이들은 종종 읽기도 벅찬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연속해서 여러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야기는 이리저리 튀고, 주제도 계속 바뀌어 점점 혼란스럽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감정 에너지가 고갈된다. 적당히 대화를 종료하려 하면 “내 얘기가 듣기 싫구나”라거나 “왜 피해”라며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처럼 군다.
나르시시스트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순간에도 상대방은 낮추고 자신은 높이려는 욕구가 발동한다. 대신 선량한 이미지는 지키고 싶다. 그래서 친절에 비난을 섞고 공손한 표현 속에 진짜 속마음을 숨긴다. 상대방이 예민한 거라거나, 자기는 예의를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자세한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르시시스트가 선의의 조언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들은 남겨지는 문자를 통해 사실 왜곡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들은 문자 하나에도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려 한다. 자기 메시지엔 즉각 답을 요구하면서도, 본인은 원할 때만 응답한다. 장문의 메시지로 상대방을 압도면서 대화를 종료하려는 시도는 허락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계속해서 정신적 에너지를 쏟고 시간을 할애하게 만든다.
이들의 문자 속 특징적인 표현들도 있다. “난 그냥 솔직하게 말한 거야” “난 그저 너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주었을 뿐이야”며 자신의 비난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포장한다. 문장 끝에는 “^^” “ㅎㅎㅎ” “ㅋㅋㅋㅋㅋㅋ” “...”와 같은 표현을 더해 공격성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문자 패턴을 보인다고 모두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는 물론 회피형이나 표현이 서툰 사람도 이럴 수 있다. 한두 번의 문자로 성급히 판단할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지, 나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려는 의도가 보이는지,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지다. 그렇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조용하고 순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에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의 예민함이 아닌 그들의 의도적 전략일 수 있다. 이때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고마워”나 “알겠어”처럼 담담하고 짧게 답하는 것이 좋다. 더불어 그들의 부정적인 말에 변명하거나 해명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라며 설명하려는 순간 그들의 통제에 들어간다. 가끔은 그들처럼 바쁜 척하며, 한참 후에 ‘그래’ 한 마디로 마무리하는 것도 내 감정을 지키는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