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쁜 날을 망치는 사람들, 우연이 아니었다

감정에 찬물 끼얹는 그들, 알고 보면 ‘조용한 나르시시스트’

by 김자옥

나르시시스트는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생일이나 결혼 등 주인공이 따로 있는 자리에서조차도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에게 쏠리길 원한다. 남의 축하 자리에 와서 “에이, 요즘 이런 건 별것도 아닌데. 나는 말이야…”라며 자기 얘길 쏟아낸다. 나르시시스트 엄마 중엔 딸의 결혼식에서 자신이 딸보다 더 화려하길 바라며 자기 위주로 결혼식 전체를 주관하는 사람도 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드러내고 이러면 사람들이 안 좋게 볼 거라는 걸 잘 안다. 이들은 사람들의 평판을 꽤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좀 더 은밀한 방법을 쓴다.


내 승진 날이었다. P는 축하한다면서도 자기는 예전에 몇 차례나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도 승진이 누락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제대로 승진했으면 지금쯤 더 높은 위치에 있을 거라며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나는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전에 있던 이사는 깐깐하고 고지식해서 승진도 엄격하게 처리했는데, 지금 이사는 사람이 느슨하다며 쉽게 승진을 시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전 이사를 겪었고 똑같이 누락이 한 차례 있었다. P는 이 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P는 말했다. “승진해도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월급 조금 올라가는 대신 세금만 더 내지.” 나는 “맞아. 그게 그거야”라고 맞장구는 쳤지만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굳이 그 말이 해야 하나 싶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가까운 친척이 방문했다. 집을 둘러본 그는 집을 잘 꾸며놨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셋이 살기엔 아담하니 좋네. 근데 확실히 더 넓은 데 있다가 여기 오니까 답답하긴 하다.”

회사의 한 직원은 다른 직원이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한다는 말에 잘됐다면서도 한 마디를 보탰다. “근데 거기 일 엄청 시킨다던데. 괜찮겠어? 난 그런 데는 오라고 해도 안 갈 거 같은데.”

A의 전남편은 A의 생일마다 기분이 안 좋았다. 회사에 일이 많다, 몸이 안 좋다,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분위기를 망쳤다. 그런 탓에 A는 매해 생일이 우울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남의 기쁜 소식이나 축하받을 일에 초를 치는 방식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대학원 합격했다며? 나도 사실 지원할까 고민 중이었는데...”라며 축하 대신 은근슬쩍 화제를 자기 얘기로 끌고 가고, “드레스 예쁘다. 살만 좀만 더 뺐으면 훨씬 예뻤겠다”라며 칭찬 속에 비판을 섞는다. “행복해 보여서 좋네. 난 요즘에 너무 힘들어서 진짜 죽을 것 같아”라며 사람들의 동정을 유도하기도 한다.

또는 중요한 행사에서 도움을 주기로 하곤 일부러 늦게 도착해서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차 괜찮네. 나도 이번에 새로 뽑으려고 하는데 이것보다 한 단계 위 모델 생각 중이야”라며 비교로 기분을 상하게 한다. “어, 이거 이렇게 했네? 이거보단 다른 방법이 훨씬 나은데.”라며 이미 끝난 일에 관해 불필요한 지적과 조언을 한다.

타인의 기쁘고 좋은 일을 대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심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타인에게 관심이 쏠릴수록 이들은 불안하다. 주목받지 못한다는 건 이들에겐 소외된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둘째, 이들은 상대방이 돋보일수록 열등감이 건드려지고 질투와 시기가 발동한다. 자신이 항상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좋은 일을 이들은 견딜 수 없다. 셋째, 이들은 통제력을 잃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상대방이 기뻐하는 일에서는 자신의 통제력이 약해질 수 있으므로 불편함을 느낍니다. 넷째, 이들은 타인이 행복할수록 불편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인생과 성공을 제로섬 게임으로 본다. 즉, 타인의 행복과 성취는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간다고 느낀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행복할수록,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이런 심리에서 비롯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남의 좋은 일에 초를 치는 행동은 가끔은 의도적이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인이 고치기가 힘들다.


고칠 수 없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르시시스트가 나의 좋은 날을 망치려고 할 때 효과적으로 대응법은 이렇다. 우선 그들의 말에 별 감흥이 없다는 듯이 형식적인 대답만 하는 것이다. 이때는 표정도 중요하다. ‘네가 뭐라든 난 관심이 없어’라는 듯한 표정이어야 그의 말이 힘을 잃는다. 또 하나는 “그 얘기는 나중에 들을게”라며 관심을 전환하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되도록 개인의 성취나 행복한 일에 대해 자세히 알리지 않는 것이다. 안 알려도 되는 건 굳이 알릴 필요가 없으며 알려야 한다면 아주 간단한 사항만 알리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나 공감이나 진심이 담긴 축하 등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오히려 불쾌해할 가능성이 크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과 대비도 중요하다. 이들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아직 통제력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격이다. 즉 이들이 원하는 상황이자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언제나 대비가 중요하다. 이들의 예상되는 행동이나 말을 생각해 보고 대응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모르고 당할 때는 당황하고 허둥대도 미리 짐작하고 있으면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내가 원하는 데로 가자. 네가 원하는 건 네 생일에 가.” “조언은 감사한데 오늘만큼은 좋은 얘기만 듣고 싶어요”처럼 선을 긋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게 된다. 아무 말이 없으면 ‘이 사람은 만만히 대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해서 날이 갈수록 더 함부로 대한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꼭 맞서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그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때론 가볍게 흘려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나를 지키고 돌보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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