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Oct 06. 2020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집에서 말썽을 피우는 아이는 밖에 나가도 말썽을 피울 거라 생각한다. 집에서도 이러는 데 밖에 나가서는 안 그러겠냐고 한다. 집안에서의 행동으로 밖에서의 행동까지 미루어 짐작한다. 엄마 말도 안 듣는데 선생님 말은 듣겠냐는 식이다. 회사에서는 누군가 이직을 할 때, 특히 더 큰 회사로 옮길 때 뒤에서 사람들은 이런 험담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제대로 못 했는데 큰 데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배가 아파 하는 말이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럴 때 흔히 쓰는 속담이 있다. 바로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이다. 집에서 하는 행동을 학교에서도 할 거라 생각하고, 학교 생활이 이랬으니 사회 생활도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이 회사에서도 능력 발휘를 못 했으니 다른 회사에 가도 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한다. 반대로 회사에서 하는 행동을 보고 집에서의 모습을 유추하기도 한다. “회사에서도 이러는데 집에서는 더 할 거 아냐”라며.  



정말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샐까? 그럼 안에서 새지 않으면 밖에서도 새지 않을까?     

새학기가 시작되고 보통 한 두 달 뒤에 학부모 상담이 있다. 교우 관계나 학습 태도, 성적 등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대해서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다. 이때 종종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와 선생님이 말하는 내 아이의 모습이 다를 때가 있다. 매사에 신중하고 배려심이 많은 대신 내성적이어서 교우 관계가 걱정이다 싶었는데 선생님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 활동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장난을 좋아하는데 가끔은 심할 때가 있어 친구와 다투기도 한다고 한다. 내 아이 얘기가 맞나 싶다. 학교 상담을 마친 한 지인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애가 산만해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시네. 괜한 걱정을 했나 봐.” 이런 때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걔 조심해야 돼’라는 소문이 돌만큼 성격도 예민하고 행동도 거친 아이가 있었다. 그만큼 문제도 많이 일으켰다. 근데 정작 그 아이 부모님은 “우리 애가 너무 착하고 순해서...”라고 했다. “아...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회사에 있을 때는 일에 의욕도 없는 것 같고,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던 사람이 다른 데로 옮기고 나서는 완전 새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거기서는 잘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이?”란 말이 먼저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이름과 생김새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회사에 새로운 상사가 오면 사람들은 발 빠르게 이전 회사에서는 어땠는지 알아낸다. 권위적이다. 같이 일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심지어는 ‘조심해라’란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땐 잔뜩 긴장한다. 소문 그대로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곧 본색을 드러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 따라, 또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진다.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집에서는 한없이 어린 애 같지만 지켜야 할 규율이 있는 학교에서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엄마 앞에서는 문제 하나 푸는 데 하루 온종일 걸리는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열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안 보이던 사람이 회사를 옮기고 나서 혹은 부서를 옮기고 나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안 샐 수도 있다. 새는 바가지라고 단정 짓기 전에 왜 새는지 원인부터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대신 잔소리만 해서 아이가 어긋난 행동을 했을 수도 있고, 주변 환경이 어수선해서 집중을 못했을 수도 있다. 의견이 항상 무시되어 직원이 열의를 잃었을 수도 있고, 업무가 맞지 않아 재미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상사와 트러블이 잦아 늘 울상을 했을 수도 있다.    

       

<우리를 속이는 말들>에서 저자 박홍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를 ‘이런 사람’으로 규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떤 행동이 있으면 그 행동에 대해서만 판단해야 한다. 이를 사람에 대한 판단으로 연결하는 순간 부당한 편견이 생긴다. 게다가 동일한 형식의 행동이더라도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기에 일회적이고 부분적인 평가로 끝나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러면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틀렸으며, 열을 봐도 하나조차 알기 어려운 게 사람이라고 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틀림없이 밖에서도 샐 거는 판단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샌다'의 기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내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는 것은 곧 문제라는 생각도 한 번쯤은 의심해 봐야 한다. 문제 대신 특별한 능력일 수도 있다. 한편으론 새는 원인이 혹시 나는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봐야 한다. 내가 샐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nci, 출처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내가 똑똑히 기억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