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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5. 2020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뭘 배우려 하지 않는다. 배우는 것도 다 때가 있단다. 이젠 머리가 굳어서 안 된다고 한다. 또 지금 배워서 언제 써먹냐고 한다. 때로는 애들 틈에서 창피하게 어떻게 배우냐고도 한다. 


머리는 정말 굳었을까? 굳은 머리는 재생 불능일까? 꼭 어딘가에 써먹어야 배우나?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면 안 되나? 배우는 게 먼저일까 창피한 게 먼저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흔히 젊어서 고생했으니까 노년에는 좀 쉬고 싶다고 한다. 취미 생활이나 슬슬 하면서 살고 싶다고도 한다. 정말 하루 종일 쉬고 하루 종일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을까 싶다. 휴식이나 취미는 바쁜 속에 잠깐 있어야 빛을 발하는 게 아니었던가?      


신기하게도 배우는 건 없는데 뭐든 아는 척을 하고 뭘 자꾸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정도로 머리를 쓰지 않았으면 알던 것도 잊을 법한데 말이다. 자신은 도통 발전이 없고 화려했던 과거 속에 살면서 지금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훈계를 늘어놓는 어른들도 있다. 그 훈계가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다. 듣고 있다고 다 듣는 게 아니다.    

  

김미경 강사는 쉰넷의 나이에 밀라노 패션스쿨에 다녀왔다. 당연히 수업이 전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리 영어 공부를 해두었다고 했다. 근데 막상 가니 영어는 잘 들리지도 않았고 내주는 과제마다 힘에 부쳤다고 했다. 하루하루 무능한 자신과 만나야 했고, 처음엔 그런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용서가 안 됐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고 그 결과 졸업 때는 그녀의 작품이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하며 김미경 강사는 무능한 자신을 자주 만나라고 했다. 자신의 무능을 찾아 매일매일 발전해 나가라고. 계속 발전하는 그녀가 멋지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왠지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녀 꿈은 몇 년 뒤 패션쇼를 여는 것과 전 세계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는 거라고 한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된다.     

 

강민구 판사는 <인생의 밀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무엇보다 은퇴한 이들은 ‘시간제한’에서 상대적으로 타 연령층에 비해 자유롭다. 노인들에게는 오래 축적된 시간이 있고, 오랫동안 장고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 배움에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 ‘노인’이 된 때일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기시미 이치로는 예순 살의 나이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원문으로 한국 수필집을 읽는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움에는 특별한 때가 없다. 하고 싶은 그때, 그때가 때이다. 나는 마흔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내가 쓰면서도 내 생각이 글로 옮겨지는 것이 신기하다. 생각을 정리해 가고 모자란 생각은 책이나 강연 등으로 보충해 간다. 이 과정이 즐겁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내가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을 오래도록 가능한 죽기 전까지 느끼고 싶다. 강민구 판사는 오늘 어제보다 조금 더 삶의 밀도가 높아졌고, 내일 오늘보다 조금 더 그 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하루하루 배움 자체를 즐기고 싶다. 배움에 때를 따지고 싶지 않다. 

© craftedbygc,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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