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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Aug 02. 2021

부모님과 아이 사이가 부럽다

늦은 저녁때쯤이었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아이가 말했다. "아, 아침에 할아버지한테 전화 왔었어." 난 우선 어떤 할아버지냐고 물었다. 외할아버지인지 친할아버지인지. 아이는 "당연히 외할아버지이지"라고 했다. 하긴 아버님은 아이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없다. 

"그래? 왜? 뭐라시는데?" 나도 모르게 한꺼번에 여러 말이 나왔다. 아빠는 아이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 아이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일이 없었다. 혹시라도 학원이거나 공부 중이면 방해가 될까 봐 그러시는 것 같다. 근데 웬일로 아이에게 직접 전화를 했을까. 내 핸드폰을 확인해 봐도 아빠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순간 아이에게만 특별히 할 이야기라도 있었나 싶었다.  


아이 말에 마음이 좀 심란해졌다. 

"나 많이 보고 싶다고.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더 나이 먹기 전에 우리 Y 봐야 하는데 라고 하셨어.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젊은 할아버지 모습을 기억할 거 아니냐고."

그 외에 다른 말도 하셨는데 아이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부모님과 아이 사이는 좀 각별하다. 첫 손주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돌도 되기 전부터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평일에는 아예 부모님 댁에서 엄마가 아이를 봐주셨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방과 후 시간에 케어를 해주셨고. 그러니 보통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키운 정까지 더해 애정이 더 깊다. 아이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많이 따른다.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고 대하는 걸 볼 때면 난 많이 어색하고 신기하다. 내게 어느 쪽이 됐든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저 어렵고 낯설고 먼 존재였다. 지금은 외할머니 한 분만 살아계시지만 평생에 걸쳐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게 몇 마디 되지 않는다. 대화랄 것도 없다. 잘 지냈냐, 밥은 먹었냐는 질문에 답한 정도가 전부다. 아이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장난을 치고 농담을 건네는 건 상상으로도 해 본 적이 없다. 돌아가셨을 때도 별 감정이 없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통화를 마칠 때면 매번 건강하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내게도 두 분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난 그것 역시 새롭다. 

 

코로나 이후로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 초기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 결혼식장에서 잠깐 본 것 말고는. 그것도 나는 밥도 먹지 않은 채 결혼식만 보고 빠르게 식장을 빠져나왔다. 게다가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어 아이는 데려가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생신 때도 명절 때도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자. 코로나 끝나면 그때 맘 편히 만나자'며 계속 만남을 미뤄왔다. 대체로 부모님 쪽에서 먼저 제안했고 나도 동의했다. 근데 그게 벌써 2년이다. 지금쯤 부모님은 아이가 굉장히 보고 싶으실 거다. 보고 싶다는 말도 아이에게 건넨 한마디 한마디도 진심이 아닌 게 없었을 거고 그 농도 또한 꽤 짙었을 걸 잘 안다. 아이도 그걸 느낀 걸 테고. 


그런데 내 마음은 왜 심란할까. 

부모님과 아이 사이의 애틋함이 난 부럽다. 어이없게도. 부모님이 아이에게 보내는 애정 표현의 반만이라도 아니 반의 반만이라도 내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부모님이 아이를 보던 눈빛과 사랑 가득 담긴 말과 말투를 접했을 때 난 무척 당황스러웠다. 우리 부모님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니. 내가 30년간 알고 지냈던 그 무뚝뚝한 부모님이 맞나 싶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다들 그런다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때보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보고 있으면 나를 대할 때의 온도차가 느껴지면서 마음 어딘가가 시려진다.


부모님은 아이가 보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아이에게 직접 하기도 하고 내게 하기도 하고. 그런 반면 내가 보고 싶다는 말은 내 기억으로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지 그런 마음이 들긴 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을 안 할 뿐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마음이 좋진 않다.

부모님과 나 사이는 늘 어딘가 서먹서먹하다. 게다가 부모님은 그 원인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집 딸처럼 사근사근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나로서는 꽤 억울한 일이다. 사근사근이라는 걸 받아봤어야 그게 뭔지 알지.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건데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매번 할 말이 없다.


자식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부모 입장에서는 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그게 두렵고 싫어 내 아이에게만은 애정 표현을 많이 하려 한다. 처음엔 노력이었다. 워낙 그런 말에 익숙하지 않아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나와 부모님 사이를 생각하면 노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고 아이 역시 아무런 스스럼없이 내게 다가온다. 이맘때쯤이면 아들 중에는 부모 특히 엄마와 거리를 두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고맙게도 아이는 아직은 그러지 않는다.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

이런 걸 보면 부모님에게도 내가 먼저 다가가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이에게와는 달리 참 어렵다.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때론 마음이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란 고민까지 해본다. 이런 고민까지 하는 내가 싫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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