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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Dec 16. 2019

엄마 이름은 '엄마'가 아니란다.

내 이름 찾기

'미운 일곱 살'이 된 짱구는 요즘 부쩍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다그치기도 하고 혼도 내지만 그때뿐이고 1분도 안지나 자기가 이제까지 엄마한테 혼난 것도 잊어버리고 또 다른 말썽을 부린다...ㅠㅠ

그래 아직은 아이인데 내가 너무한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혹시나 상처 받지 않았을까 걱정도 되고 하여 난 짱구를 혼내고 나면 마지막엔 꼭 안아주고 화해를 한다.


짱구야! 엄마가 짱구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짱구가 바르게 자랐으면 해서 그러는 거야. 짱구 사랑하지 않으면 엄마가 뭐하러 힘들게 이 놈 하겠어. 


그럼 짱구는 궁금한 눈빛 가득 담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엄마는 **이가 짱구처럼 그랬으면 이 놈 하지 않았어?
그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럼. **이는 우리 짱구 베프니까 엄마가 친절하게 대하는 거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짱구고. 엄마가 짱구처럼 유치원 다녔을 때...

 내 이어지는 말에 놀란 짱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엄마도 유치원 다녔어?
그럼
어느 유치원?
** 유치원  


결국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화해는 아름답게 결말을 맺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진다. 지금 이 순간 짱구는 자기가 왜 혼났는지, 엄마가 베프보다 짱구를 더 많이 사랑한다는 뿌듯함도 잊어버리고 엄마가 어느 유치원 다녔는지가 궁금하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가끔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는 평소 호칭에 대해 엄격하신 분인데 아빠가 엄마의 이름을 부르시는 걸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궁금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답이 놀랍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자기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불려서 자기의 이름을 잊어버리는데 아빠가 가끔이나마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니 오롯이 '내'가 된 거 같아 좋다는 거다. 그땐 뭐 그렇게까지 싶었는데 내가 엄마처럼 나이를 먹어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엄마 뱃속에서 10달 있다 태어나 기억은 안 나지만 돌잔치도 했을 것이고  짱구처럼 유치원도 다녔고 학교도 다니고 그렇게 자라 엄마가 되었는데 짱구에게 나는 처음부터 엄마였고 짱구는 엄마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재미난 '아빠와 딸의 대화'를  목격했다.


아빠도 어렸을 때가 있었어?
그럼
그럼 엄마는 어렸을 때 어땠어?
엄마 어렸을 때는 아빠도 모르지!
왜 몰라?
그땐 아빠가 엄마를 몰랐으니까?
왜? 그럼 엄마도 아빠를 몰랐어?
그렇지
그럼 아빠 어렸을 때 나도 몰랐어?
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잖아.
난 다 알고 있어
어떻게?
내가 하늘나라에서 다 보고 있었어.


너무나 공감하는 내용이라 초면에 실례인 줄 알면서도 쿡쿡 계속 웃음이 났다. 얼마나 아이다운 발상인가? 좀 전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라 했으면서 결국 자기는 하늘나라에서 다 보고 있었으니 알고 있다고 결론을 내다니... 가끔 짱구가 나에게 '하늘나라에서 놀고 있다 어느 엄마한테서 태어날까 보고 있는데 엄마가 제일 예뻐서 엄마한테 온 거야! 고맙지?'라는 얼토당토 안 하는 말에 '정말 고마워하는 얼굴'을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더 많이 웃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때는 우리 엄마랑 아빠가 처음부터 내 엄마 아빠로 태어나신 것으로 생각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자라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었을 땐 이미 우리 엄마의 머리엔 하얗게 서리가 내렸건만 난 우리 엄마는  이제까지 그랬던 거처럼  그 자리에서 날 지켜주실 거라 생각하고 연세 드셔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신데도 여전히 내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 주실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가끔 들려주시는 아빠와 결혼하기 전  엄마의 연애 이야기가 싫었던 게 아닐까? 난 이상하게 엄마가 만났던 남자 이야기하는 게 싫었다. 그땐 우리 엄마가 아녔으니까. 엄마는 그냥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으니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렸던 거 같다.


 

 

아직은 여러 가지 호칭이 어려운 짱구는 내가 짱구에게는 '엄마'인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그렇다. 내 이름을 잊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온 게 꽤 된 거 같다. 우리 엄마 아빠가 고민 고민해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그 이름은 내 지갑 속 주민등록증에만 적혀있지 정작 불러주는 이가 없다. 예전엔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제가" 혹은 "내가"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꼭 이름을 넣어 3인칭 주어로 말했던 나다. 그래서 그런 내 습관이 너무 오글거린다고 온갖 핀잔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왔는데 어느 순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다른 이름을 너무 쉽게 받아들여버린 거 같아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짱구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짱구는 자기의 이름과 내 이름이 같은 줄 알고 헛갈려한 적이 있었다. 친정엄마가 날 부를 때 내 이름 대신에 짱구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유를 설명해주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짱구가 알고 있는 아빠의 이름이 궁금해 물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송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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