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때 묻지 않은 사랑스러운 짱구에게 한마디
잠깐 중국 4대 기서 가운데 하나로 오승은이 지은 구어 소설인 서유기(西遊記)에서 나온 유명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손오공이 천계에서 그와 맞서 싸우는 상대가 없었고 옥황상제마저 숨을 정도로 난동을 부렸는데 이때 부처님이 직접 나온다. 손오공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겠냐고 내기를 제안하고 손오공은 코웃음을 치며 근두운 술법으로 내뺀다. 한참을 날아가던 중 기둥 다섯 개가 보이자 세상의 끝으로 왔다고 인증하는 낙서까지 써놓고 돌아오지만 이 기둥들은 부처님의 손가락이었다. 결국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으로 여기서 "네가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라는 관용어가 나왔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 집에서 나는 부처님 손바닥이고 짱구는 손오공인 샘이다. 그리고 고마운 이들에 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하고자 한다.
구름빵 장난감 요정
정리정돈을 잘 안 하는 홍시에게 어느 날 엄마가 장난감 요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장난감 요정이 정리가 안되어 있는 장난감들을 하나둘씩 가져간다고...
이 책을 읽던 짱구의 얼굴이 갑자기 사색이 된다. 난 평소에 겁이 많은 짱구가 난생처음 접한 '요정'의 정체에 긴장을 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엄마! 짱구는 장난감 정리정돈 잘하지?
순간 당황하다 이내 단호한 얼굴로 며칠 전 아무리 찾아도 결국 찾지 못한 장난감을 언급한다. 혹시 그것을 장난감 요정이 가져간 건 아닐까 하며 말이다. 이내 심각해진 짱구는 책을 읽다 말고 후다닥 자신의 장난감이 어지럽게 있는 방으로 가서 누가 시키기도 전에 정리를 한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정리해라 정리해라 노래를 불렀건만 책 한 구절에 보기 좋게 1패를 했다.
그다음부터는 짱구의 정리정돈 습관은 쉽게 자리를 잡았다. 혹여나 정리를 다 못하고 유치원을 가야 할 때면 짱구가 나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엄마! 장난감 요정한테 짱구가 유치원 다녀와서 정리할 거니까 절대로 장난감 가져가지 말라고 해! 알았지?
짱구는 내가 장난감 요정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는지 항상 장난감 요정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나에게 부탁을 한다. 그리고 며칠 전 이사 때문에 집이 어수선하고, 그동안 잘 가지고 놀지 않았던 장난감을 다른 아이들에게 주려고 한 곳에 모아두었는데 짱구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에 들어가서 뭔가를 하고는 뿌듯해하며 나온다. 이번엔 짱구가 직접 장난감 요정에게 편지를 썼다.
트니트니 늑대 아저씨
영유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거의 알고 있을 법한 문화센터 인기 프로그램! 트니트니! 우리 짱구도 돌이 지나 걸을 수 있을 때부터 트니트니를 다녔다. 음악에 맞춰 배우는 율동도 재미있고, 오감발달을 위한 활동이 아이들 감각 발달에 좋은 거 같아 다른 엄마들 명화 보게 하고 영어놀이 프로그램 등록할 때 눈 질끈 감고 꿋꿋하게 트니트니를 선택한 나다! 하지만 우리 짱구에게 이렇게 맞춤형 노래가 있을 줄이야! 정말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짱구는 아기 때부터 잠이 없었고, 취침시간은 매일 11시를 훌쩍 넘겼다. 내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고 엄마가 나갔다 와서 다시 만난 반가움에 다시 놀이 모드가 되는 짱구! 그래서 결국 마지막 수업은 포기를 하고 집에 일찍 돌아왔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짱구를 일찍 재우는 것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트니트니에서 받은 CD를 무심코 틀었는데...
아홉 시가 넘으면 무서운 늑대 아저씨가 나타나(아우)
누가 누가 안자나 두리번두리번두리번 두리번대요
어서 들어가 어서 들어가 이불속에 쏙쏙 쏙쏙 들어가
어서 들어가 어서 들어가 눈을 감고 쿨쿨쿨 쿨 꿈나라 가요
순간 짱구의 흔들리는 눈빛! 그다음부터는 9시만 되면 늑대 아저씨 오실까 봐 짱구가 먼저 자리에 눕는다. 물론 자리에 눕는다고 곧바로 자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짱구 몰래 침대 헤드를 쿵쿵 두드리거나 고맙게도(?) 위층에서 쿵 소리를 내주시면 짱구는 늑대 아저씨가 다른 집으로 아직 잠을 안 자고 있는 아들을 찾으러 갈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 가끔은 정말로 일찍 잠이 들 때도 있었다. 7살이 된 지금은 9시가 되었다고 잠자리에 들지 않지만 아직까진 늑대 아저씨가 올까 봐 무서운지 나에게 '늑대 아저씨 오면 짱구 금방 잘 거니까 다른 집에 먼저 다녀오라고 말해달라'라고 부탁을 한다.
덕분에 난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난감 요정이랑 늑대 아저씨와 무척 친하고 신뢰가 쌓인 사람이 되었다....ㅠㅠ
EBS 연습생 펭수 - 따라 귀신
짱구가 유튜브에 눈을 뜨고 재미있어할 때 우연히 내가 보고 있던 펭수를 보고는 짱구의 외마디 외침!
엄마 이거 너무 재미있어
그래서 가끔 짱구와 함께 펭수를 보는데 어느 날 나와 짱구를 위한 맞춤형 에피소드가 나오니 그건 바로 '따라 귀신'. 자꾸 매니저의 말을 따라 하는 펭수에게 매니저가 퇴근하면서 이야기한다. '자꾸 따라 하면 따라 귀신이 나온다'라고. 그리고 매니저가 퇴근하고 혼자 EBS 소품실에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싸한 기운이 감돌고... 매니저가 이야기한 따라 귀신이 나온다.
이번 역시 짱구의 표정이 심각하다. 요즘 부쩍 엄마의 말을 따라 해서 아무리 다른 사람 말 따라 하면서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 해도 혼자 재미있다고 따라 해서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이다. 정말 신기한 게 내가 어렸을 때 했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난들을 짱구가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배워 그대로 따라 한다. 아무리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왜 그런 옛날스런 장난들을 아직도 좋아할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심각한 표정의 짱구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정말로 따라 귀신이 있어?
그럼!
그래서 엄마가 말 따라 하는 거 아니라고 한 거야?
그래! 그런데 짱구는 엄마 말 안 듣고 계속 따라 했지?
그럼 짱구한테도 따라 귀신이 와?
계속 따라 하면 당연히 따라 귀신이 오지?
그다음부턴 절대로! NEVER! 내 말에 따라 하면서 장난치지 않는다. 땡큐 펭수! EBS 만세!
그리고 며칠 전 9살 생일을 맞이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파티라는 것을 해보고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아 다소 흥분한 짱구가 평소 잠자는 시간이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생각을 안 하자 한참을 잊고 있던 협박을 한다.
“ 너 빨리 안 자면 늑대 아저씨 오신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늑대 아저씨라는 말에 얼른 침대로 가 자는 시늉을 하던 짱구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엄마! 나도 알아”
“(순간 뜨끔하지만 일단 우겨보기로 한다) 네가 뭘 알아?”
“늑대 아저씨 없다는 거 나도 알아. 아이들 빨리 재우려고 어른들이 거짓말로 만든 이야기쟎아.”
우리 짱구가 많이 컸네 생각도 들고, 허긴 초등학교 2학년에게 늑대 아저씨가 웬 말이냐 싶기도 하지만 갑자기 수긍해버리고 미안하다 사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늑대 아저씨가 왜 없어? 그래? 그럼 너 오늘 자지 말고 늑대 아저씨 한번 만나봐. 엄마는 무서우니까 먼저 잔다.”
하며 아주 쿨하게 퇴장을 해버린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짱구가
“산속에 사는 늑대 아저씨가 여기까지 어떻게 와?”
“그러니까, 너 혼자 한번 자지 말고 오나 안 오나 보면 되겠네. 혹시 늑대 아저씨 와도 무섭다고 엄마 깨우지 마라!”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선물 더미들을 책상 위로 부랴 부랴 치우고는 후다닥 침대로 가 이불을 덮는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장난감 요정한테 내 선물 책상 위에 올려놓은 거니 가져가지 말라고 해줘!”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이야기한다.
“알았어. 오늘 짱구 생일이었으니까 늑대 아저씨한테도 장난감 요정한테도 엄마가 이야기 잘할게.”
그리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사랑해! 오늘 생일 축하하고! 잘 자”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짱구야! 네가 아무리 뛰어봤자 엄마 손바닥 안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