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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Oct 17. 2020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엄마가 나에게 묻고 내가 엄마에게 답을 하다.

어렸을 때 난 주택에 살았다.  그래서 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 현관을 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런데 내가 자라 드디어 아파트에 이사를 하게 되었건만 2층. 그래도 지하 주차장에서 집으로 들어올 땐 아주 잠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이번엔 꼭 5층 정도에 있는 집을 구해야지 너무 높아서 혹시나 엘리베이터 고장 나면 고생하니까 말이야 하고 혼자 설레발을 치다 결국 마음에 들어서 고른 집이 또 2층이다. 조금 더 돈을 모아서 다음에 이사를 하게 되면 그땐 꼭 5층 이상 높이의 집에서 살아보리라. 그래서 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리라.


주택에 살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엄마가 텃밭처럼 채소도 키우고 고추장 된장도 직접 담그고, 마당에 나무도 심고 꽃도 아주 많이 키우는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 담장엔 5월이면 덩굴장미가 아름답게 자랐고, 옥상엔 오이, 고추, 가지, 파, 부추 등 갖가지 채소가 쉴 틈 없이 자랐다. 물론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꽤나 따뜻하고 로맨틱한 가정의 모습이었겠지만 오랜 세월 경험해본 나는 아니다. 물론 내가 그 많은 채소를 엄마를 도와 키운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하교를 하거나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혹시나 채소가 더 자랐거나 꽃봉오리가 생겼거나 꽃이 활짝 핀 날이면  우리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그 앞에다 데려다 놓으시고는 뭐가 바뀌었는지 알아맞혀 하라고 느닷없이 퀴즈를 내신다. 평소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나는 그때가 가장 고민이다. 차라리 학교 기말고사 한번 더 보는 게 나을 것 같고, 프로젝트 발표 자료 하나 빨리 끝내라는 게 나을 듯하다.  한참 머리를 굴려 엄마가 기대하는 답을 드리고 싶지만 확률이 그리 높지 않고, 오랜 경험으로 엄마 마음에 드는 답을 찾았을 때는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엄마와 같은 공감을 하시길 원하시고, 엉뚱한 답을 했을 땐 바로 등짝 스매싱이다. 그러니 두 경우 모두  나에겐 그리 좋을 건 없다.


내가 결혼을 했을 때도 우리 엄마는 역시나 화원에 가서 화분 몇 개 사서 챙겨주시는 것에만 끝나지 않고 집에 있는 화분도 챙겨주셨다.

엄마! 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니까!

우리 엄마는 약하신 분이 왜 그리도 손이 매운지 연신 등을 쓸어내려야 한다.


엄마처럼 뭘 키울 자신이 없었다. 혹시나 내가 화분을 죽이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서고, 물은 얼마나 자주 줘야 하는지 햇빛이랑 온도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는 나에게 화분을 키우는 것은 부담이었다. 내가 짱구를 임신했을 땐  태교로  잠깐이라도 꽃을 보라고 하시면서 꽃화분까지 사다 주셨다. 그렇게 몇 번 화분을 죽이고 나니 엄마한테 혼날까 봐 화원에 가서 엄마가 사다주신거랑 비슷한 거로 사다 놓은 적도 있었다. 결국 화원 사장님까지도 내가 너무 자주 오니 한마디 하신다.

화분에 물이 너무 많아. 흙 만져보고 물기 없을 때만 줘. 그리고 햇빛 많이 볼 수 있게 하고.

흙에 물이 마르면 물을 주라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나는 매번 만져보고 물기가 없어서 물을 줬는데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은 거라니 참 답답하다. 그리고 우리 집은 남향이라 햇빛이 바로 들어오는데 어떻게 더 햇빛을 보게 하라는 건지...

그렇게 수많은 화분들을 떠나보내고, 작년부턴가 죽은 화분을 화원에 들고 가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슬슬 화분 키우는 재미가 붙었다. 새싹이 나는 것도 재미있고, 꽃이 졌다가 다시 피면 왠지 뿌듯하다. 재미가 있으니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싫었던 행동을 한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짱구를 붙들고 '짱구야 이것 봐! 너무 예쁘지?' 짱구도 처음엔 꽃이 피면 예쁘다 좋아라 하더니 유치원을 졸업할 때쯤엔 한번 쳐다보고 그만이다. 무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리고 올해부터는 엄마가 나에게 그 화분은 어떻게 키우는지 물은 얼마나 자주 주는지  묻는다. 물론 내가 엄마 몰래 화원 다니면서 화분에 꽃들을 채워놓느라 종류가 많아져서 일 수도 있지만 신기하다. 엄마가 나에게 뭘 묻는다는 게 말이다. 나에게 엄마는 내가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답을 해주고 해결을 해주는 존재였다. 내가 힘들어하면 언제든지 등을 토닥이며 용기를 주셨고, 기쁜 일이 있으면 나보다 더 기뻐하며 응원해 주셨다. 가끔은 엄마의 걱정 섞인 잔소리가 귀찮음으로 다가와 괜한 짜증을 부리기도 했지만 내가 힘들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도 엄마였다. 그런데 그런 우리 엄마의 어깨가 좁아지고 허리가 조금은 굽어지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이 졌다. 그리고 이젠 엄마가 나에게 묻는다. 처음엔 왠지 모를 뿌듯함에 답을 했는데 뒤돌아 조금 있다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가 늙었구나.  


그리고 이젠... 짱구가 나에게 묻는다. 그럼 어렸을 적 엄마가 나에게 해 주셨듯이 뚝딱 답을 해주고 해결을 해 준다. 그럴 때면 짱구의 얼굴에서  '우리 엄마는 뭐든지 다 해결해줘. 엄마 최고!'라는 말을 읽으며 어릴 적 내 모습을 떠 올린다.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슈퍼우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도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그리고 짱구가 자기는 1000살까지 살 테니 엄마는 990살 까지 살라고 말하듯이 우리 엄마도 언제까지나 내 엄마로 영원히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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