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now.... maybe later...
짱구가 어느덧 자라 8살이 되었고, 정작 본인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맘껏 놀고 있지만 입시전쟁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연 언제부터 공부를 시켜야 할까? 일찌감치 공부 습관을 들여놓는 게 좋지 않을까?
일단 영어와 논술 중 어떤 것을 먼저 가르칠지가 고민이다. 흔히들 영어는 외국어고, 논술은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들어왔을 터이고, 내 생각엔 책을 올바르게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책을 바르게 읽을 줄 알아야 나중에 논술이나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목의 이해도나 습득력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책과 친해지기로 했다.
짱구가 글을 읽을 줄 몰랐을 때는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하루에 몇 권씩 읽어주곤 했는데, 한글을 알고 스스로 책을 읽고부터 내가 간과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짱구가 글을 읽는 것보다 책 장 넘기는걸 더 즐긴다는 거다. 아직은 글이 그리 많지 않긴 하지만 짱구는 서너 권의 책을 30분 만에 읽어낸다. 정독[精讀]을 하지 않고 대충대충 그림과 글을 함께 보면서 넘겨버리는 거다. 그러니 전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자신이 관심 있거나 재미있는 내용만 몇 번이고 읽는 이상한 독서습관이 들여버렸다.
둘째는 학습만화를 선호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학습적인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이고 처음 접근하여 이해하긴 쉬울 수 있지만 독서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아이들 사이의 필독서와도 같은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을 짱구 역시 좋아한다. 어렵고 복잡한 역사를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라 추천을 했고 1권부터 최신 본까지 챙겨봤지만 짱구에게 한국사 대모험은 '평강'이가 맨날 '온달'이를 구박하는 아주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재미있고 무엇보다 주문을 걸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 인상 깊을 뿐이다. 하루는 일제강점기의 내용을 읽고 있길래 넌지시 물어본다.
짱구 일제강점기 읽고 있네?
응
나라를 잃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이지 꼭 기억해야 해.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거야.
나도 알아.
그런데 짱구야,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이 누구야?
몰라
너 지금 읽고 있잖아. 여기 나와있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고...
몇 분 동안 정독을 하길래 혹시나 물어봤더니 그제야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읽으며
우와. 안중근 의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네. 정말 멋지다.
'그래. 건강한 게 최고지. 그런 거 아직은 잘 몰라도 괜찮아.' 라며 오늘도 난 스스로를 애써 위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하여 며칠 전부터 독서노트를 쓰기로 했다. 매일 한 권씩 읽고 책의 내용과 마지막에 느낀 점을 쓰기로 했는데, 느낀 점이 참 단조롭다. 겨우 한 문장 적어놓는데 그 끝은 항상 '재미있었다.', '재미없었다'가 끝이다. 짱구야. 느낀 점을 좀 더 길게 쓰면 안 될까????
영어유치원이며 영어학원까지 우리는 영어교육에 어렸을 때부터 많은 정성을 쏟는다. 나도 학부모가 되니 별수 없이 이제부터라도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집 앞에 있는 작은 규모의 영어학원부터 대형학원까지 상담을 다녀봤고, 모든 학원이 커리큘럼의 우수성을 자랑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 '유레카'를 외칠만한 곳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을 하루 2시간 가까이 공부시키고 숙제까지 해야 하는 학습량이 부담이고, 학원비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자 갑자기 나한테 짱구 영어를 가르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한테 짱구 영어를 가르치라고?' 짱구 한글을 처음 가르칠 때 없던 혈압이 올라 뒷목을 몇 번을 잡았는지 모른다. 한 글자 쓰고 팔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반 바닥 쓰고 피곤하다 벌러덩 누워버리고, 잠시 눈을 돌리면 벌써 딴짓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보고 영어를 가르치라고? 짱구가 유치원에서 phonics를 배웠다며 자랑하듯 이야기할 때 확장을 해서 응용해볼라치면 벌써 줄행랑이다. 유치원에서 받은 영어 단어 카드를 보여주면 단어 카드에 그려진 그림 이야기로 한 시간이다. 그런 짱구에게 free talking을 시킬 수도 없고, reading도 안되고, 왜 말하다를 "talk", "speak", "say", "tell"이렇게 힘들게 여러 가지를 쓰냐고 묻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데 내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야 하고, 3인칭 주어의 동사에 s가 붙어야 하는데 붙이지 않고 발음하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오랜 시간을 정성 들여왔건만 아직도 빼먹기 일수인데 문법을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고민하는 나를 해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짱구에게 한마디 한다.
짱구야. 나중에 짱구가 중학교 들어가면 그땐 엄마가 스파르타로 가르쳐줄게. 알았지?
스파르타? 옛날에 엄마가 이야기했던 아주 무섭고 힘들다는 스파르타?
그렇지. 엄마가 이야기했지? 스파르타?
응
그렇게 해줄 테니까 기대해?
그러면 "안돼"를 외치며 머리를 부여잡고 도망가 버린다. 그렇다. 중학생이 되면 그땐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전까진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