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누나와 찡찡이

나의 막내딸의 시선으로 써본 길고양이와 딸의 이야기

by 경미의 글

고양이는 길거리가 온통 자기 구역이다. 마치 이 구역의 대장은 자기라는 식으로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느낌을 주는 고양이. 길고양이지만 부르는 이름도 있다. 앞집 아줌마는 랑이라고 부르고 나는 찡찡이라 부른다.


찡찡이와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나는 사이다. 주로 찡찡이가 나를 찾아온다. 한없이 자기 맘대로 쏘다니는 찡찡이를 내가 따라다니는 건 아니다. 어떤 여자가 어디 사는지 누군지 그는 다 안다. 찡찡이는 수컷 고양이다. 아마 내가 이 골목에 처음 나타나서 기웃기웃 살피고 카페를 차려서 잘될까 안될까 혼자 고민하고 궁리하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어느 차 밑에서 고요히 지켜보고 관찰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여자애가 나타나서 내 영역을 기웃거리네? 뭐, 좋아 넌 좀 예뻐 보이니까 내가 좀 봐주지 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카페에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가 일하는걸 은근 스토커처럼 지켜보고 있고, 화장실 갈 때나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나를 따라 걷는 찡찡이. 우리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는 사이다. 내가 먹을걸 갖다 주면서 밥그릇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밥 먹으러 온 찡찡이 머리를 쓰담 쓰담하기도 하고 맛있게 먹어라고 말하면 저도 목구멍을 그릉그릉 하며 달달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알겠어 잘 먹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가서 볼일 봐 그 카페로 가서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게 손이나 닦으라고 하는 듯하다. 들러붙거나 따라다니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불쑥불쑥 내 주변에서 나를 보고 있는 눈길이 싫지는 않다. 동물과의 교감 같은 멋진 말 대신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 없는 정말 낯선 장소에 카페를 차리고 처음 해보는 일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하루가 어찌나 무섭고 외롭던지 작은 길냥이 찡찡이조차도 힘이 되는 얼굴로 의지되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서로 속상한 일이나 욕할 일 분 한일도 나누는 사이다. 주로 내가 말을 많이 하고 찡찡이는 그래? 아하, 음 그렇군 나도알지 쯧쯧 마음이 많이 상했겠군 뭐 이런 식으로 짧게 짧게 대답해준다.


불과 이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이름만 대면 아,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 라는 반응이 튀어나오는 대기업의 직원이었다. 그러나 몇 년간 다니다보니 대기업의 환상이 깨지면서 나 자신이 마치 물건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누구나 돌출 행동을 하면 바로 지적받고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쉼 없이 서비스하고 쉼 없이 일하고 쉼 없이 하라는 대로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없어져가고 조직에 맞는 '맞춤형 로봇'이 돼가고 있었다.

겉모습은 점점 세련되고 고급스러워졌지만 나의 내면은 점점 텅텅 비어져가는 듯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해서 누구 하나 걸려봐라,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날이다! 이런 못된 마음으로 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3-4년의 20대 중후반을 보낸 뒤, 그 틈에서 나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원섭섭하게 사표를 던지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과 퇴직금을 합쳐 동네에 작은 카페 하나를 차렸다. 그때가 벌써 2년 전이다. 그리고 일 년 뒤, 나는 이 길에서 마주친 길냥이와 친구가 됐다.


냐옹이도 나를 친구라 여기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냐옹이 역시 나를 친구로 생각해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냐옹이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골 목담 위에 나타나 나와 같이 걷는다 야옹야옹 아는 체를 하면서 말이다.

찡찡아 오늘 추운 날인데 어디서 잠을 잤니? 하면 말해서 뭐하겠니? 너무 춥더라 그래도 나는 여러 곳에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잖아 어제 내가 꼬맹이 냥이들이 걱정돼서 온 동네를 다니면서 애들을 찾아보니 다들 알아서 추위를 피해서 다행이야 내 하루도 쉽지 않아. 잘 곳도 너희들처럼 있어야 되지 너희들처럼 먹어야 하지. 너희들처럼 이웃도 챙겨야 되고 가끔 애인 만나러도 가야 되고 우리도 비슷하게 살아가 내가 애는 아니잖아 너는 내가 너보다 쉽게 사는 거 같지? 하긴 너보다는 좀 나을 수도 있지 돈도 안 벌어도 되고 집도 안 사도 되니 좀 나을 수도 있나? 그나저나 누나, 요즘 카페가 어때? 매일 가게 앞에서 손님 많기를 기도 해주는데 말이야! 네가 걱정해줘서 나도 든든하단다 이따 밥 먹을 곳 없으면 카페 앞으로 와그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하며 가게 문을 열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방안에서 가게 열쇠를 꺼내서 가게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제 밤사이 갇혀있던 칙칙하고 습한 어둠의 공기들을 밖으로 내보내 주고 오늘의 공기를 카페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어제 퇴근하면서 빨아서 의자 위에 널어두고 간 행주며 앞치마를 걷어서 이쁘게 착착 개키고 씻어서 물기를 빼느라 엎어놓고 간 컵이며 유리잔을 찬장에 넣는다.


라디오를 잔잔하게 틀어놓고 커피머신의 스위치를 켠다. 문을 열자마자 카페의 단골손님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 라거나 뭘 드릴까요 라거나 안녕히 가세요 라거나 얼마예요 라고 인사하고 주문받는 것도 겁이 나고 부끄러윘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어 단골 카페 손님이 오면 아는 체도 잘한다.



그 사이 찡찡이는 어느새 카페 앞에 주차되어있는 자동차 밑, 우리 둘만의 아지트로 와서 밥 달라고 야옹야옹 소리를 낸다. 여러 번 야옹야옹할 때는 많이 배고픈 거다.



누나, 나 아직 아침도 못 먹었어 ᆞ


알았어 알았어 천천히 나와도 돼, 기다려줄게
하듯 도도하고 기품 있는 자세로 기다리고 있다.


마치 내가 자기의 집사라도 된냥 야옹야옹 쳐다보며 잔소리까지 한다. 그렇게 손이 느려서 어떡하니? 우리 냥이들을 보렴 그 얼마나 빠르고 날렵한지 그하긴 인간인 너는 어쩔 수 없겠지? 덩치도 크고 다리도 두 개뿐이니 우리보다 느린 건 당연하겠지 나를 좀 보련? 갑자기 냥이는 원투스리스텝만으로 초등학교 담벼락 위로 순식간에 사뿐하게 올라가 내 카페 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앉는다


괜스레 급해진 나는 허둥지둥하며 그릇에 사료와 영양제를 섞어 얼른 밖으로 나가서 냥이가 밥 먹는 자리인 주차돼있는 자동차 밑으로 그릇을 밀어놓는다.
내가 그 임무를 완수하고 뒤를 돌아다보며 얼른 밥 먹어! 하며 카페로 들어오자 한 번에 휙 뛰어서 아스팔트 위에 착지하더니 앞발을 길게 길게 뻗치며 차 밑으로 들어가 냠냠하기 시작한다 아직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나는 바닥에 노트북을 꺼내서 고양이가 나오는 동영상을 틀어준다. 냥이는 무례하게 한 번에 들어오는 법이 없다.



살금살금 주저주저 조심조심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살피며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카페에 들어선다 그리고는 앉아서 노트북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고양이가 나오는 동영상을 갸우뚱 보다가 화면을 살그머니 만져본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평평하고 매끄러운 화면이 이상한지 뒤로 살짝 돌아가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켜보고 있노라니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대기업의 인사담당 행정담당도 우리를 이렇게 훈련시겼겠지 싶기도 하다. 화려함이 주는 광채, 처음 느껴보는 고급스러움과 화려함, 그 속에 나도 속하고 싶다는 간절함, 그런 걸 다 꿰뜷어보고 있었겠지? 그 속의 일원이고 싶어 하는 마음도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그 마음은 알아도 청춘의 발전과 희망과 성장을 원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냥 그 곳에서 맞춤형 인간이 되어 사그라질 때까지 편하게 사용되는 복사지 같은 존재이기를 원할 것이다.


나는 복사지로 있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추운 겨울날 아침 겨울바람을 볼에 맞으며 차디찬 가게 열쇠 구멍에 열쇠를 맟추고컹컴한 카페 문을 열고 혼자 들어설 때, 추운 저녁 어둑어둑 해는 지는데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문도 못 닫고 마냥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또는 늦은 저녁 커 피한 잔을 앞에 놓고 마냥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집에 갈 수 없게 만드는 손님이 있을 때, 중년의 손님이 들어닥쳐 이 집 커피는 금이라도 탔나? 왜 비싼 거야? 저기 길 앞에서는 2000원이면 이만큼 큰 데다 담아 주는데 할 때, 속으로는 그 집 가시면 되지 왜 여기서 그러세요?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할 때. 중년의 느끼함이 철철 흐르는 아저씨가 아가씨 아가씨 하면서 어젠 머리가 아주 이쁘더라고 하며 객쩍은 말을 시킬 때, 네 명의교회 아주머니들이 카페에 들어와서 두 잔 만주고 종이컵을 달래기에 안된다고 하니 카페가 한두 개냐? 배짱으로 장사하네 할 때. 아 환장하네 하며 속으로 땅을 친다. 몇 몇 남자가 혼자서 연이어 며칠 동안 계속 오다가 핸드폰 번호 좀 알려 달라고 해 올 때, 화장실 물이 얼어서 언 것을 녹이려고 물을 끓여서 계속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할 때, 동네에 왔다 갔다 하는 장애가 있는 덩치 큰 남자애가 카페 유리창에 얼굴을 딱 붙인 채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손을 흔들며 웃고 있을 때 그 데이트하는 남녀 커플이 와서 차는 어디다 세우냐고 했을 때 아 예예 하며 밖으로 뛰어나가 고양이 인형처럼 왼손 오른손을 쉼 없이 흔들 때 그냥 복사지나 밥풀이나 티슈나 그러거나 말거나 되돌아갈 수도 없는 직장을 괜히 그만둔 게 아닌가 깊이깊이 후회하고 그 안에서 시키는 일만 요령껏 하면서 지낼걸 잘못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다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집세를 줘야 하고 공과금을 내느라 전전긍긍해야 하고 상대할 일 없을 것 같던 아줌마 아저씨를 상대해야 하고 나아니면 아무도 해줄 사람 없는 온갖 잡다한 일을 해가면서 왜 카페를 차려서 혼자서 이 고생을 하는지 누구를 탓할 곳이 없다. 선배나 후배가 같이 일했더라면 네가 일을 잘못하니 내가 더 힘들지 않냐? 그런 식으로 할 거냐? 라는 잔소리도 하고 일 끝나고 맥주 한 잔 마시며 동기들과 욕이라도 할텐데 말이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온갖 일을 다하고 나 혼자 운영하는 건데 누굴 탓하고 누구한테 속마음을 털어낸단 말인가?


찡찡이가 나의 친구가 된 이유도 친구를 만날 틈이 안 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카페라 동료가 한 명도 없어서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냐옹 소리가 들리면 왔어? 하며 얼굴을 들어 냐옹이와 눈을 맞춘다. 그래 내가 누나 오늘 어땠는지 다 보고 있었다. 힘들었지? 해주는 듯 냐옹한다. 나도 찡찡이를 향해 어제 추웠는데 잘 있었어? 한 다음 첫해는 가혹했지. 하지만 나도 길에서 생활한 지 꽤 오래됐잖아, 그 첫 해처럼 힘들지는 않아하며 야옹야옹하다.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니? 견딜 줄도 알고 피할 줄도 알게 시간이 가르쳐주잖아? 내가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그 당해 봐야 아는 게 인생이라고 그 길냥이는 제일 먼저 숨고 피하는 걸 배워야 돼 그 너도 알겠지만 그게 우리 세계의 생존법칙 일 번이야 그 괜스레 인간하고 친해져서 필요 이상으로 정을 주면 나중에 우리 냥이들만 상처 받아 그니들은 언제라도 우리를 버리고 등을 돌리고 떠나잖아 그 너도 지금 이곳을 떠나고 싶은데 못 떠나는 거잖아 그


하긴 우린 집고양이가 아니니 누나가 나를 길들이려고 해 봤자 절대 길들여지지 않아. 물론 너도 모르고 있진 않겠지만 말이야 나는 애완동물이 아니야 그 너도 나를 친구라 여기듯 나도 너를 친구로 여기는 거야 너도 이 동네 고양이랑 다 친구가 아니듯 나도 이 동네 사람들하고 다 잘 지내는 건 아니야. 너는 지금 외롭고 고달픈 거야. 그 일이 힘든 게 아니고 마음이 힘든 거지 그 네가 생각했던 모습으로 살기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처음 당하는 일이 많은 거지, 아니면 말고!


그런 마음에서 나를 돌봐주는 게 아닐까? 나도 너처럼 힘들고 고단하게 느껴져서? 아니면 말고 혼자라는 게 그다지 나쁜 건 아냐, 아니면 말고 나는 돈 안 벌고도 살잖아, 집세도 안 내고 밥값도 안 들고 세상 혼자인 거 같을 때 고양이랑 친해지는 거야. 누나가 그런 마음 없을 때는 그냥 지저분한 길고양이로 보였을 텐데 혼자 인덕에 우리도 친해졌잖아! 가만 보니까 동네 꼬마들하고도 꽤 친해졌더라?


고양이랑도 친구가 되는데 사람하고 친구면 더 좋잖아. 고양이한테 얘기하러 나갔다 오고 고양이한테 밥 주러 나갔다 오고 고양이가 추우면 추울까, 더우면 더울까 날씨예보도 정신 차려 듣고 그렇게 친구가 되어 하루가 지난다.


찡찡이한테 밥을 맛있게 해서 갖고 올 테니 밤동안 춥지 않게 따뜻한 곳을 찾아서 잘 지내라고 얘기해야겠다
외로운 덕에 찡찡이가 눈에 보인 건가? 마음이 고단해서 찡찡이에게 다가간 건가? 내 마음대로 온정을 베풀어도 싫다고 안 하니 냥이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면서 친구가 생겼다고 여겼나 보다.


밤길을 걸으며 고단한 마음을 추슬러본다. 단지 조금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공간이 감옥 같은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질 때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얼른 눈가를 훔친다. 어느 고양이도 눈물 흘린 적 없는 길가에 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KakaoTalk_Photo_2019-08-05-13-11-07.jpeg 딸이 밥 주던 길고양이 찡찡이는 둘째 딸의 집으로 납치(?)되어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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