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아침엔 오트밀을 먹는다
비가 오기 전날 밤, 나는 이상하게도 일찍 잠들지 못했다.
공기는 무겁고, 천장은 낮게 내려앉은 것처럼 느껴지고,
눈을 감으면 감정의 잔향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자려고 애쓰기보단, 그냥 깨어 있는 편이 더 나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아침.
커튼을 걷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늘은 회색이다.
햇빛이 아닌, 눅눅한 공기와 저기압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컨디션은 흐려지고,
기분도 덩달아 느슨해진다.
뭐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각성보다 안정,
자극보다 회복,
소음보다 조용한 무게감이다.
그래서 나는 오트밀을 꺼낸다.
오트밀 한 컵에 물을 조금 붓고 천천히 저어가며 끓인다.
팔팔 끓이기보다 묵직하게 퍼지도록 기다린다.
그 사이 작은 아몬드 몇 알, 호두 조금,
그리고 얼려둔 블루베리를 꺼낸다.
아몬드는 단단하고, 호두는 다소 거칠다.
블루베리는 조용히 녹으며 색을 내고,
오트밀은 천천히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릇에 담긴 이 작은 조합은
누군가에겐 너무 심심한 음식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작은 평온식이다.
이건 허기를 채우기 위한 한 끼가 아니라,
흐릿한 마음에 중심을 심어주는 의식 같은 것이다.
주말이다.
누군가는 푹 쉬고 있을 시간,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몇 시간의 노동을 감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 자유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오기 위해서다.
그건 단지 돈이 아니라,
10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저축이자 선언이다.
나는 이 시간을 내 존재의 투자로 사용한다.
지금은 몸이 무겁지만,
이 오트밀 한 그릇이
나를 다시 조용히 일으킨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회색 아침.
누군가는 무기력이라 부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우울의 초입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다.
이건 감응자의 리듬이다.
환경의 미세한 파동을 감지하는 몸이고,
그에 반응하는 정신이고,
그걸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트밀을 고르는 삶이다.
회색 아침은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조용히 끓여 먹는다.
오트밀, 아몬드, 호두, 블루베리.
그것은 곧, 내가 나를 살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