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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r 08. 2020

신사임당이 있다면

 최근 나의 주말은 정말 무료하다. 주중에는 보통 하루에 5-6시간 정도 잔다. 더 많이 자고 싶어도, 습관인지 매번 늦게 자게 되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 이렇게 5일 동안 지내면, 주말에는 녹초가 된다. 


 아이들 개학이 연기되고 학원도 계속 취소되다 보니, 윤재가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어른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한데, 아이는 오죽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윤재와 같이 밖에서 놀려고 마음을 먹었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있다 보니 잠이 솔솔 왔다. 한숨만 붙이고 오후에 놀아야지 생각했다. 눈을 뜨니 방이 깜깜하고, 시간을 보니 벌써 8시였다. 오늘 하루도 다 갔구나라는 아쉬움과 윤재와 같이 놀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윤재에게 오늘 뭐했냐고 물어보니, Suna와 같이 산책을 했다고 했다. 나 대신 Suna가 윤재를 데리고 다녔구나라는 생각에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Suna와 이야기하면서, 윤재랑 뭐했냐고 다시 물어보니 , 계속 걸어 다니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며, 윤재가 참 수다쟁이라고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했냐고 물으니, 게임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재도 논술을 대비해야 하고, 영어공부도 해야하기 때문에 영어 연습을 시켰다고 했다. 


 평소에 윤재에게 영어로 말해 보라고 하면 한 마디도 안하고, 내 앞에서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해서 일부러 영어를 안 쓰거나, 영어로 말을 해도 이상한 발음으로 말을 했었다. 이런 윤재의 행동을 잘 알기에, 어떻게 Suna가 윤재에게 영어로 말하도록 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Suna가 산책하면서 윤재가 영어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줬고, 그 일환으로 영어 토론을 해 보라고 했다. 토론 주제는 베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서 윤재가 ‘존버’와 ‘여포’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설명하라고 했다. 


 윤재가 요즘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매일 베틀그라운드를 해서, 주제를 일부러 윤재가 좋아하는 쪽으로 잡았다고 했다. 평소에 우리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는 아이가, 게임을 주제로 자기 의견을 말하라고 해보니,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며, 어떤 것이 좋은 전략인지 매우 논리적으로 말을 했다고 한다. 500년전에 율곡 이이를 키운 신사임당이 있다면, 지금은 윤재를 키우는 21세기 신사임당인 Suna가 있다고 칭찬해줬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Suna가 있어서 윤재는 매우 좋은 것 같다. 


 일화이지만, Suna를 알게 된 이후로, Suna는 자주 내 지갑을 열어 확인한다. 물론, 나는 Suna가 언제 내 지갑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다만, 지갑속에 만원짜리 몇 장 혹은 5만원짜리 지폐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누가 내 지갑에 돈을 넣어 놨지라고 의아해 했고, 이내 곧 Suna가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도 Suna는 내 지갑에 $20짜리 지폐를 내가 모르게 자주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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