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콘텐츠 기획과 작성에 역량이 있고....
자소서를 쓸 때만큼 벌거벗은 기분을 느낄 때가 없다.
나를 역량과 경력의 카테고리로 조각조각 나누어 뭉쳐서,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그것들의 질량을 잰다.
자주 민망스럽고, 때로 현타가 온다.
그리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다 보면,
한 줄을 쓰고 한 마디를 말하는 데에도 어렵고 머쓱한 마음이 든다.
그래, 내가 뭐 콘텐츠에 얼마나 역량이 있다고...
지난 주말에 <인사이드 아웃2>를 보다가 주인공이 기어이 "I'm not good enough"를 떠올리며 불안에 잠식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열할 뻔 했다.
왜 나는 충분해야 하고, 결국에는 죽도록 노력했어도 부족하다는 자기 평가와 자기 혐오의 굴레에서 괴로워 해야 할까?
영화는 친절하게도 그 원인이 본체를 위해 기쁨이가 자행했던 실수, 실패, 잘못 삭제하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기 위해, 잘난 사람이기 위해, 그렇게 미화되고 합리화된 기억 속에서 자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패와 실수, 잘못의 기억을 지워왔는지.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무척 힘이 드는 일이다.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완벽'이다. 결함이 없이 완전한 게 세상에 존재나 할까?
오늘은 일하다가 또 마음이 다쳐서 팀 리드와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 또한 마음이 다쳐 있었다.
그녀는 다른 팀원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이라 느끼고 있었다. 대표가 자신을 가스라이팅하고 무시한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선, '내가 그래도 무능한 지점이 있으니 이런 취급을 받는 거겠지' 하고 나에 대한 하대를 스스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방관하고 있었다.
잠깐,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건 그러한 실수가 나라는 사람의 결정체이며 내가 하등한 존재인 이유라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작은 실수와 부족함과 무능함과 때로 큰 잘못까지도, 나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인정하고 알라는 것이 그래서 나는 안 된다거나 이 모든 게 내가 실패작인 이유라며 'I'm not good enough'의 늪에 빠지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을 평가하지 말고, 비교하면서 괴로워하지 말고, 더 잘나려고 마음 다치면서까지 노력하지도 말고,
이런 단점은 있지만 이런 장점도 있고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나는 이런 사람일 뿐이야. 하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기.
사람들은 심리 테스트를 무척 좋아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너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누군가가 나를 정의 내리고 평가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편견일 순 있는데, 남의 말이나 외부 환경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은 심리 테스트나 MBTI와 같은 것들에도 그다지 영향 받지 않더라.
여태까지 이래라 저래라 했던 모든 것은 아직 내가 아니다.
여전히 자존감이 바닥이고, 쉽게 나 자신을 평가하며 상처 입히고, 남의 잣대에 휘둘리며 죽상인 표정으로 출퇴근을 하는 나지만
그래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위안으로 삼으며,
<인사이드 아웃2>의 라일리와, 요즘 부쩍 힘들어 하는 우리팀 리드와, 이직 준비에 고통 받는 나 자신이 매일 소소한 기쁨을 채워갈 수 있기를.
...
자소서 쓰다가 갑자기 쓰고 싶어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