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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고도 명료한

단순한 행복

by euuna








매일 아침 6시 50분쯤 일어나, 세수 후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고 거실로 나가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워커 복으로 갈아입은 뒤, 머리를 땋는다. 시원한 얼음물과 이온 음료, 그리고 점심을 챙겨 대문을 나선다. 픽업 차를 타고 농장으로 가서 마칠 때까지 블루베리를 딴다. 아득하고도 긴 로우 하나를 끝내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단순하리만큼 별거 아닌 하루들이 너무나 명료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미니멈 아울리 농장에 고정 팀원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농장에 적응하기 위해, 탑 픽커와 새로운 픽커가 2인 1조로 팀을 이뤄 3일가량 가르침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함께 온 친구들이 서서히 자기 분량을 처리해내고 속도도 올라, 안정적인 위치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느 날, 컨트랙터의 부탁으로 캐시 농장에 가게 되었다. 캐시 농장은 많은 워커들이 꺼리는 곳이다. 대부분 워커들이 농장에 오는 이유는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비자를 만들려면 페이 슬립이라는 게 필요한데, 캐시 농장에 가면 페이 슬립을 받을 수 없다. 라이선스가 없거나 세컨드 비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농장이라 합법적이지 않기 때문에 페이 슬립이 나올 수 없다. 돈을 벌 목적이라면 모를까. 세컨드 비자를 위해 모인 우리는 관심 없는 곳이다.



- 로우에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느껴지는 짜릿함 !



내일은 고정으로 가던 아울리 농장이 휴일이라, 모두가 피스 레이트 농장으로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캐시 농장에서 다섯 명의 워커가 필요해, 컨트렉터에게 부탁한 상황인 듯했다.


“혹시 내일 하루만 캐시 농장 갈 수 있어요?”

“갑자기 캐시 농장요? 혼자요?”


그날 저녁, 컨트랙터로 부터 캐시 농장에 다녀와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히로나 서진 둘 중 한 분 더 같이 가야 하는데, 서진이 같이 갔으면 해요.”

“네. 생각해 볼게요.”

“실력 늘린다고 생각하고 한번 다녀오면 좋을 거 같아요. 부탁할게요.”


한 번만 도와달라며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마쳤다. 서진과 히로에게 물었다.


“캐시 농장 갈 생각 있는 사람?”

“갑자기 캐시 농장에 왜?” 히로가 물었다.

“페이 슬립 안 나오지 않아?” 의아한 듯 서진이 물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전화로도 그가 급해 보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가려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평소에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므로 한 번쯤은 갚을 일이 있길 바랐는데,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좋은 기회였다. 부담 없이 실력을 늘리러 간다니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서진과 같이 갔으면 하는 이유는, 히로보다 서진과 내가 킬로그램 성적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 셋 중에서는 히로가 가장 잘했다. 체력도 좋은 데다 열정이 넘치는 히로는 로우에 들어가기 전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놀이를 하듯 열매를 땄다. 열심히 벌어서, 여행 가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쭉쭉 성장해 갔다.


“서진아 같이 가자. 부담 없이 실력도 늘리고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서진은 탐탁지 않아 보였다. 하루빨리 페이 슬립 만들기도 바쁜데 캐시 농장이라니. 게다가 그 농장은 다른 농장들보다 거리가 꽤 된다는 것 말고는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한 번 갔다고 그 뒤로도 계속 부탁하면 어떡하지?” 서진이 물었다.


히로도 걱정된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고 그를 도울 수도 있으니 몇 번 더 간다 치더라도, 빈도가 자주가 된다면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가서 거절해도 늦지 않을 거란 판단이 섰다. 해 보지도 않고 하는 섣부른 걱정이었다.


- 농장에서 찾은 커다란 네잎클로버


- 선선한 날, 일 마치고 드라이브를 시켜 준 컨트랙터



“설마.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한 번 정도는 가보면 좋을 거 같아. 우리 신세 많이 졌잖아.”

“그건 그렇지." 서진은 걱정을 금세 지우곤 잘된 일이라며 같이 가겠다고 했다.


캐시 농장의 첫 기억은 몸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더웠다. 아무리 물을 먹어도 수분이 채워지지 않는 듯한 느낌. 땀을 뻘뻘 흘리고 핑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아가며 로우를 탈출하겠다는 마음으로 전념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집에 도착해, 냉장고로 가 맥주 한 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


저녁 시간쯤 컨트랙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갔던 탑 픽커와 내가 열매를 딴 양이 몇 킬로 차이 나지 않았다며,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을 먹다가 우리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말도 안 돼.


“난 네가 블루베리 훔치고 있는 줄 알았어.” 서진이 웃음을 겨우 참아가며 말했다.

블루베리를 따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볼까 봐 빨리 훔쳐 도망가려는 도둑처럼 제 바스켓에 담아대는 나를 보고는 무슨 급한 일이 있나 싶었단다. 후다닥 달아나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뒤따라 나왔다고 했다. 아무튼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블루베리는 이제 익숙한 열매가 됐다. 어느 농장에서 어느 수준을 요구하더라도 미니멈 아울리 농장에서 배웠던 것만큼 어려운 건 없었다. 간단한 규정만 기억해 두면, 그때부터는 그냥 떼어 넣는 놀이와 같았다.



- 꼬박꼬박 리사이클 (다시 맥주 사먹기 가능 !)


- 청소해 둔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음식들



낯선 것들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단순함을 쥐여 줄 때, 나의 일상도 군더더기 없이 돌아갔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루틴이 생기를 띄우고 잘 차려 먹는 밥상이 기운을 북돋고 10시면 졸리기 시작하는 신호가 오랜 불면증을 돌려보냈다.

픽업 차 뒷좌석에 쪼르르 앉은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노래를 듣기도 하고 전날 마저 다 보지 못한 유튜브를 본다거나 한국 뉴스 기사를 읽기도 한다. 같은 하루 속에서 제각기 저마다의 시간이 흐르고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간다. 그러나 매일 같은 일을 하는 듯해도 돌아보면 너무나 다른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자잘한 고민과 걱정들은 모든 걸 뒤흔들 정도도 되지 못했다. 저무는 해를 보며 오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갔음에 감사하게 된다. 커다란 건물 하나 없는 트인 하늘을 보고 있다 보면, 무료해 보이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곳에 온 지 한 달 정도가 되었을 무렵 느끼기 시작했다.



- 잘 차려먹은 저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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