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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실수 그리고 낙천 !

호주로 다시 갈 수 있을까?

by euuna







멜버른에 도착해서는 곧장 윌리엄 아파트로 향했다. 내 집! 얼마 만이었던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할 줄 몰랐는네, 셰어생을 구하고 갔었던 터라, 마지막으로 셰어생과의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입주할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 새출발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었단다.



- 영원히 그리울 윌리엄



“그동안 정말 잘 지냈어요. 윌리엄에서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 집 덕분이에요. 잘 지내다 가요.”


첫 인스팩션 때, 처음 호주에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걱정되는 게 많아 고민이라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갔던 게 기억이 났다. 친구는 많이 사귀었는지, 여러 추억도 많이 생겼는지 나의 물음에,


“말도 마세요. 정말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슬픈 일도 있고, 그 덕분에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마지막인 오늘, 그녀는 어느덧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호주에 더 있을 결심도 세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회사와도 계약도 해냈다고 했다. 좋은 일이었다. 이 집 덕분이라 말하는 그녀 덕에 윌리엄 아파트가 내가 살던 동안에도, 내가 없던 동안에도 좋은 보금자리로서 역할을 했단 게 뿌듯했다.


간단히 짐 정리와 청소를 마친 후 오랜만에 푹 잤다. 내내 자다가 일어났다. 멜버른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반가운 연락을 보냈다. 어학원에 다닐 당시 만났던 친구들이었다. 학생 비자가 이미 만료된 은선은 떠나고 없었지만, 지예는 여전히 멜버른에서 지내고 있었다. 며칠 뒤 지예의 생일이라, 히로와 요리를 해 간만에 지예네 집으로 갔다.


- 보고 싶었던 지예



“야… 살아 있었어?”

“잘 지냈어?”


지예는 오자마자 나를 요리조리 돌려 보고서 잘 지냈냐며 재차 물어왔다. 진한 포옹을 나누고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눴다. 세컨드 비자를 만들러 가겠다고 할 당시, 가장 많은 도움을 줬던 것 지예였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세컨드 비자를 먼저 만들고 시작했던 지예는 그 시간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흐를 거라고,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너무 힘들지 말라며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정말, 지예의 말 대로 생각한 것처럼, 계획해 둔 것과 같이 흘러간 게 하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떠올린 지예의 말 덕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다가오는 가족들과의 여행 이후 나는 한국으로 잠시 돌아간다. 정리할 물건들도 많았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려 한국으로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비자는 신청해 둔 상태였고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 세워야 할 계획들이 많았다.


“그리고 다시 멜버른에 올 생각이야?” 지예는 멜버른에서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멜버른. 호주에 가기로 하고 정착할 지역으로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는 멜버른만큼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드니도, 브리즈번도 유명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멜버른에 가고 싶었다. 자잘한 이유는 많았고. 커다란 목적은 없었다. 그리고 호주살이 첫 시작을 멜버른에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새롭게 주어진 시간을 다른 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세컨드 비자를 준비하면서 여러 곳을 다녔다. 몇 번 여행 삼아 다녀온 시드니, 시드니와 브리즈번 사이의 콥스하버, 그리고 북쪽의 작은 해안 마을 울굴가, 마지막으로 타즈매니아까지. 앞으로 이 커다란 땅에서 얼마나 많은 곳을 더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다닐 수 있을 만큼 다녀보고 싶었다. 익숙한 멜버른을 떠올릴 때면, 이보다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펼칠 생활도 그만큼 기대가 됐다.


“아니. 이번에는 퍼스에 가려고.”


그래서 퍼스에 가기로 했다. 서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 퍼스. 호주에서 서쪽으로 이동은 처음이었다. 퍼스 주변은 사막과 광활한 대지뿐이라 다른 도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했다. 하지만, 자연과 여유로운 도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조용하고도 느긋한 분위기가 가득한 퍼스가 궁금했다. 퍼스는 지중해성 기후라, 여름은 덥고 건조하고 겨울에는 조금 시원했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과 같은 동부 도시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것도 좋았다.


함께 세컨드 비자를 만들었던 히로도 마찬가지였다. 멜버른에 남아있는 건 딱히 그의 선택지에 있지 않은 듯했고, 히로는 브리즈번과 퍼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퍼스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여러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는 돈독해졌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기도 했다. 겁 많던 히로는 여러 시간을 통해 쑥쑥 자랐고, 무모하던 나는 어느 판단 앞에서도 신중해지려고 노력했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배웠고, 자신을 돌아보며 커갔다.






시드니 공항 게이트가 열리고 이미 한 시간 전, 도착해 기다리던 나는 단번에 엄마와 이모 그리고 동생을 찾았다. 가족들은 연신 나를 찾기 바빴다. 두리번거리다 눈이 마주쳤고 반가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달려갔다. 고작 1년이 뭐라고 이렇게나 보고 싶었는지! 첫 장기 비행이라 쉴 법도 한데, 우리는 새벽녘이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자주 전화해도 묵힌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하필 여행 일정 중 나의 생일이 껴 있어, 가족들과 생일맞이를 했다. 호주에서 가족들과 이곳의 친구들과 보내는 생일이라니.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유독 서진의 생각이 많이 났다. 연락이 잘되지 않는 서진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 본격 가족 여행 시작


- Bondai beach


- Great Ocean Road


- Happy Birthday to me !



한국에 도착해서는 내내 바쁘게 지냈다. 그리웠던 가족들과 반가운 친구들도 보고 먹고 싶었던 것들도 잔뜩 먹었다. 호주에서는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딱히 생각나지 않아 웃겼다. 먹고 싶다고 뱉은 말들은 전부 허상이었나보다.


1년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애츳하다니.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1년 더 있다가 오기로 했다는 말에 아쉬워하면서도 행운을 빌어주었다. 몇 년씩이나 해외로 나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세상이 참 살기 좋아져서, 영상 통화로도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보고 몇 시간 비행기를 타면 그리운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다.






그런 행복한 날들도 잠시, 좋은 세상이 된 것과는 별개의 새 문제가 나타났다. 삶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균형과 조화. 하하. 올라가는 날이 있다면, 반드시 내려오는 날도 있다.


비자에 문제가 생겼다.


세컨드 비자를 신청할 당시, 헬스폼 요구를 받았다. ‘헬스폼’이란 호주 비자를 신청할 때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를 말한다. 1년 내 한 기록이 있으면, 요구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큰 걱정은 안 하고 있었는데 결국 메일이 왔다.


호주에서의 건강검진 비용은 알아본 바로 거의 400불에 가까이 했다. 한국에 가는 김에 하고 와야겠다 싶어서 신청해 뒀는데 가장 빠른 날이 퍼스트 비자 만료까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은 날에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호주에서 받고 오는 건데… 이 덕에 아주 먼 길을 돌았다.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가능한 한 빨리 제출한다고 해도 호주는, 일처리가 한국에 비하면 그렇게 빠른 나라가 아니라 걱정이 됐다. 외교부에도 물어보고 온갖 세컨드 비자 신청 관련된 사이트를 뒤져봐도 나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 틈틈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검진 결과가 이틀 뒤 나왔다. 받자마자 호주 정부로부터 새로운 메일을 받았다. 세컨드 비자 신청과 관련해 추가 정보를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호주에 돌아갈 의사가 있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보내라고 했다. 추가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평가가 불과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니까, 세컨드 비자 발급을 아직 할 수 없다는 거였다.


호주로 돌아갈 의사?


어떤 서류를 보내야 하는지 몰랐다. 게다가 어디에 첨부해야 하는지도 쓰여 있지 않았다. 호주는 퍼스트 비자가 만료되고 난 후인 다음 날 입국할 계획이었다. 비자가 없으면 입국할 수 없었다. 호주로 가기 전, 일본 여행도 계획되어 있는지라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호주에 갈 수 없다면 어떡하지?


급하게 일본행 티켓과 함께, 일본에서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퍼스로 간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두 티켓을 저장했다. 내 계정으로 들어가 급한대로 추가 서류라고 적고서, 티켓을 첨부하고 명시하라던, ‘워킹홀리데이 메이커 비자 발급 자격을 얻기 위해 호주로 돌아가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걱정스러운 와중에도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일본 여행까지 온 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날까지도 말썽이었다. 공항 직원은 티켓 안내를 하다가 말했다.


“여권에 오염이 있네요. 일본은 입국 심사과 까다로워서 입국 못 하실 수도 있어요.”


악! 언젠가 흘린 커피가 여권에도 묻은 듯했다. 엄마는 조용히 ‘너 한국 금방 올 수도 있겠다.’라고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말했다. 모든 게, 빈틈 가득한, 철저하지 못한 내 책임이었다. 여권 상태에 대한 책임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엄마와 불안하고 어딘가 찝찝한 마지막 포옹을 나누었다.


“엄마, 안녕. 금방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쓴웃음이 났다.

“그래, 건강 잘 챙기고. 혹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면 전화해라.”엄마는 나보다 더 웃었다.


확실히 처음 호주로 갈 때랑은 다른 분위기였다.


일본에는 순조롭게 입국했다. 입국 걱정보다 비자 걱정이 더 커서, (사실 일본 입국이 되어야 호주에 가겠지만…) 입국이 통과했다고 해서 날뛸 정도의 기쁨은 아니었다.


- 일본의 요모조모



오사카 어느 거리에 있는 타코야끼 가게에 앉아, 타코야끼를 먹다 문득, 내일 모레면 호주로 가는구나 싶은 생각에 여전히 발급받지 못한 세컨드 비자가 마음에 걸렸다.


세컨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비자 신청과 승인 시점 모두 호주 내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신청만 해둔 상태로 호주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 거였다. 규정상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니, 비자도 나올 수 없었다.


근데 호주 입국일은 퍼스트 비자가 만료된 다음 날인데, 나는 도대체 무슨 비자로 가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주 내에는 다른 비자로 전환하거나 연장하는 동안 임시로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브릿징 비자’라는 걸 주는데, 말 그대로 기존 비자와 새 비자 사이를 연결하는 비자다. 이 비자는 해외에 있는 동안은 효력이 없고 호주에 있어야만 발효된다. 브릿징 비자는 있지만, 호주에 입국할 비자가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거 완전 바보 아니야?


생각나서야 망정이지. 일단 여행 비자를 신청했다. 합법적 입국을 먼저 해야, 브릿징 비자가 발효 되든, 세컨드 비자가 나오든지 하는 문제였다. 아무리 워킹 홀리데이 카페에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도, 외교부와 호주 정부 워킹홀리데이 측으로 문의해도 이렇게나 꼬여버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제대로 된 답을 구하지 못했다. 내가 만든 구렁텅이에 보기 좋게 빠져 기어 나왔다. 결과적으로 무사히 호주에 입국했지만, 나는 몇 번이나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당장 갖다 버리고 싶은 여권은 어느 입국 심사 앞에 서든 죄인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새 여권을 받는다면, 정말, 정말 깨끗하게 모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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