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민 Nov 07. 2023

단어 [다너, tanʌ]

인간은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등 숲에서 함께 살던 형제자매들과 다르게 큰 규모의 무리를 이룬다. 인간이 그런 차이점을 가질 수 있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말’이다. 물론 동물들도 말을 한다. 하늘에는 새의 대화가, 숲에는 곤충의 의사소통이, 바다에는 고래의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말이 다른 동물과 차별점을 두는 건 말의 복잡성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인지 능력이 바뀌자 말이 복잡해졌고 그에 따라 체계가 생겨 큰 집단을 이뤘다. 그래서 말은 인간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자,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단어는 홑 단(單)에 말씀 어(語)로 자립성을 가진 말의 최소 단위다. 나, 너, 우리, 사람, 고양이, 개, 꽃, 나무……. 단어는 하나만 있어도 의미가 있다. 단어를 물리 세계에 비유하면 원자다. 원자는 아주 작은 알갱이다. 원자보다 더 작은 개념이 있긴 하지만, 화학적 특성을 가지는 최소 단위는 원자까지다. 그래서 수소, 헬륨, 리튬, 금, 은, 구리 등 우리가 이름 들어본 원소들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보인다. 단어와 원자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원자는 다른 원자와 결합할 수 있다. 원자의 조합에 따라 만들어지는 물질이 달라진다. 예컨대 염소는 염산의 주재료이며 독성을 띤다. 나트륨이라고도 불리는 소듐은 폭발성을 가진 금속이다. 그런데 이 위험한 물질 두 개가 만나면 우리가 요리에 사용하는 소금이 된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만나면 물이 되고, 거기에 산소 원자가 하나라도 더 붙는다면 표백제의 원료인 과산화수소가 된다. 원자 하나 차이로 우리가 마실 수 있느냐와 없느냐가 갈린다.


단어도 단어와 만나 말을 꾸린다. 합성어를 만들 수도 있고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대체로 단어의 속성이 말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 경우엔 어원을 살펴보아야 단어를 이해할 수 있다. 칡나무를 의미하는 갈(葛) 자와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 자가 만나면 갈등이 된다. 칡나무와 등나무는 모두 덩굴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존심 센 두 나무가 한 곳에서 엉키면 풀어내기 쉽지 않다. 한 데 자라는 덩굴처럼 사람 사이의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에는 상처가 남기 일쑤다.


콩이란 단어와 보리란 단어가 만나면 곡식 관련된 단어가 되는 게 아니라 숙맥이 된다.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줄임말이다. 각각 콩 숙, 보리 맥, 아닐 불, 분별할 변 자로 콩과 보리의 차이가 뭔지도 모를 만큼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사람을 가르킨다. 식물은 잘 모르더라도 콩밥과 보리밥은 구분할 줄 알아야 숙맥 소리 안 듣는다. 이처럼 단어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인간이 있다. 개인이 아무 단어나 붙인다고 새로운 단어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소 원자 두 개가 붙으면 동물을 살게 하는 산소 분자가 되는데, 세 개가 붙으면 오존이 된다. 성층권에서의 오존은 자외선을 차단해 주지만, 지표면 근처 대기에 나뒹굴면 동물을 해하는 독성 물질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호흡기와 피부에 악영향을 미친다. 물론 원자끼리 만난다고 바로 손잡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 주변에는 오존보다 더 안정적인 산소가 훨씬 많다. 원자가 반응하기 위해서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낙관해야 할 사안은 아니다. 인간이 쉬지 않고 공장을 가동하는 덕에 매년 대기 중 오존의 농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오염처럼 말에도 일종의 공해가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비하성 신조어가 그렇다. 그런 단어는 오로지 개인이나 집단을 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단어는 이미지화되기 쉽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명령했다고 가정하자. 아마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코끼리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단어는 대상을 표상하는 일종의 낙인이 되어 대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세상 모든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듯 사람도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지만, 결코 단어 하나가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내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을 단어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단어가 필요할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그렇다. 예컨대 어떤 이는 올빼미와 부엉이를 구분하기 위해 귀깃의 모양을 살펴본다. 귀깃은 눈 위쪽에 뾰족하게 나 있는 털인데, 귀깃이 없으면 올빼미, 귀깃이 있으면 부엉이라고 한다. 재밌는 방식이지만, 오류가 있다. 솔부엉이는 깃이 없고 비명올빼미는 깃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눈의 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홍채와 동공이 같은 색이면 올빼미, 다른 색이면 부엉이다. 물론 이것도 잘못된 정보다. 흰올빼미와 줄무늬수리부엉이는 설명과 반대다. 이처럼 올빼미와 부엉이는 ‘귀깃’이나 ‘눈의 색’ 같은 한 두 가지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 생물을 분류하고 종(種)을 구분하는 것은 수백, 수천 개 이상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생태학적, 지질학적, 분자생물학적인 분석 과정을 거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자라서’, ‘남자니까’, ‘장애가 있어서’, ‘피부색이 어때서’, ‘어디 학교 나와서’, ‘어디 지역 출신의’ 같은 말처럼 한 두 개의 단어를 근거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상엔 셀 수도 없이 많은 단어가 있다. 그중에서 나를 나타내는 단어는 내가 고르기 나름이다. 어떤 단어로 자신을 꾸미고, 어떤 단어로 세상을 바라볼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단어해부학이라는 글을 쓰게 됐다. 당연하게 사용하던 단어들이 사뭇 낯설게 느껴지기를 원해 제목에는 발음을 함께 표기했다. 단어를 마음껏 해부하고 단어 안에 담긴 세계를 훑어보다 보면, 우리네 삶을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일지 모른다. 단어라는 원자로 구성된 사람이라는 우주. 그 우주를 유영하는 방식은 오롯이 여러분들의 몫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움 [외로움, werou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