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뮬드 와인
3년 전 11월 말, 추수감사절 즈음에 첫째 아이의 학급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조촐한 파티를 주최했었다. 룸패런츠가 보낸 이메일에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핫초코와 애플 사이다 -- 우리나라 칠성 사이다처럼 톡톡 터지는 탄산음료는 아니고 따끈따끈하게 데운 사과 주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ㅎ -- 어른들을 위해서는 뮬드 와인(Mulled Wine)을 준비하겠다고 적혀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추수감사절 일정 때문인지 그 파티는 참석을 못 했었다. 그렇게 넘어가려나 했는데 당시 친하게 지냈던 룸패런츠가 이 뮬드 와인은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면서 예쁜 메이슨 유리병에 담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처음 듣는 단어라 뮬드 와인이 뭐냐고 물어보니 향신료와 과일을 넣고 와인을 끓인 뒤 따뜻하게 마시는 겨울 음료라고 한다.
집에 와서 와인을 따뜻하게 데워서 마셨다. 겨울이면 종종 바깥보다 더 추워지는 우리 집 ㅋㅋㅋ 그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와인을 마시니까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나를 떠올리며 선물을 준비했던 마음 때문인지, (끓이는 동안 날아가겠지만) 와인에 옅게 남아있는 알코올 때문인지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 얼굴과 온몸이 벌게지기 때문에 술을 피하는 편이다. 게다가 소주와 맥주 둘 다 맛이 없다는 느낌이 강해서 술을 멀리하는 게 힘들지는 않다. 그렇지만 새콤하고 땃땃한 이 와인은 아이들 저녁 준비할 때마다 작은 유리잔(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샴페인용 쿠페잔이라고 한다) 담아서 며칠연속으로 내리 마셨다. 쿠페잔은 친언니가 앤티크샵에서 데려온 녀석이라는데 디자인도 귀엽고 사이즈도 딱이다. 스타벅스 커피 마실 때 톨 사이즈가 부담스러워 일본 스타벅스에만 있는 쇼트/미니 사이즈를 그리워하는 내게 이 아담한 사이즈가 제격이다. 한국에서 언니네 집에 놀러 갔을 때 1개 세트로 2개 잔이 있었는데, 언니는 둘 다 가져가라고 했는데 나는 '시스타 하나 나 하나 나눠갖자' 말하고 한 녀석만 미국집으로 데려왔다. 맨날 찻장에서 놀고 있어서 안쓰러웠는데 뮬드 와인 덕분에 겨울마다 바깥 구경 시켜준다.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언니한테 따뜻한 와인을 마셨는데 너무 좋다며 카톡을 보냈는데 언니는 자기는 뮬드 와인이라는 말 대신 프랑스에서 쓰는 용어 '뱅쇼 Vin Chaud'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좋아해서 겨울마다 한솥씩 끓여둔다고 했다. 뱅쇼 스펠링을 찾으려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독일에서는 '글루바인 (Gluhwein)'이라고 한다고 한다. 뮬드 와인을 보면서 처음 나에게 와인을 소개해 준 폴린, 쿠페잔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우리 시스타, 지금은 멀리 이사 갔지만 뱅쇼를 좋아한다던 언니를 떠올리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버텨본다.
올해에는 그 온기가 다른 가정에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도 한솥 끓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맛이 달라지니까 와인이 고급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트레이더 조에서 저렴이 녀석으로 서너 병, 그리고 시나몬 스틱을 사 왔다. 향신료로 판매하는 정향이나 팔각이 안 팔아서 따로 홀푸드로 가서 예쁜 꽃모양 팔각도 사 왔다. 지난주에는 마침 무료 와인병 꽃장식(동그란 소형 오아시스 활용하는데 꽃꽂이는 또 다른 신세계다-) 워크숍도 다녀왔으니 빈 와인병은 연말 분위기 물씬 나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적극 활용해 본다 ㅋ
매주 단서 찾는 게 쉽지 않은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매번 소재를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시네요 ㅎ 나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걸 좋아한다! 따끈따끈한 오뎅국물, 호호~ 불어먹는 호~빵(단팥 <3)과 호~떡에 이어서 과일향이 솔솔 올라오는 따뜻한 와인까지 겨울 필수 음식들이 되었네요 (시원하다~ 소리가 절로 올라오는 뜨끈뜨끈한 물목욕과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뜨뜻한 찜질팩도 너무나 애정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어디에 계시든지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채우고 마음도 한껏 따뜻해지는 겨울을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