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웹툰과 소설을 좋아한다. 아이들을 재운 뒤 주어지는 고요함의 시간. 포근한 침대에 누워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슥슥 느긋하게 밀어 올릴 때의 여유. 캬-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잖아-! 하지만 웹툰과 소설이 너무 좋을지라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지.체.없.이. 잠을 선택할 정도로 잠은 더 좋아한다.
잠귀가 어두워서 한번 잠들면 웬만한 뒤척거림에 깨지 않는 편이다. 늦게 자면 늦게 잤지, 자다가 중간에 깨는 일없이 30년을 살았었다. 그러다가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게 왠 걸!!! 새벽에 일어나 헤롱헤롱한 상태로 젖을 물리고 (심지어 첫째 때는 수유를 누워서 하면 안 된다고들 해서 굳이 똑바로 앉아있었음 ㅜㅠ 이 바부야~) 토닥토닥 트림을 시키고 아기님을 침대에 고이 눕혀놓는 작업을 2-3시간마다 반복적으로 해야 했다. 많으면 새벽에 잠을 3-4번 깨야하는데 첫째가 태어나기 전에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집을 둘러볼 기회가 없어서 말 그대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비교적 수월했는데 그 후에 쏟아지는 신생아 엄마의 일상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첫째 아이가 아기티를 벗어나며 어느 정도의 통잠을 자게 되었지만, 수면 분리, 밤수유 중지, 밤기저귀 떼기 등등 소소한 발달과업을 지나가며 통잠꾼이었던 나도 쪽잠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이 뒤척거림에 일어날 줄도 알게 되었으니 잠귀도 살짝 밝아진건가? ㅎ 둘째가 태어났을 때에는 2번째 겪는 일이라 그런지 새벽에 잠이 깨도 그러려니~하는 여유마저 생겼다.
둘째도 초등학생이 된 지금 나는 통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 나도 같이 침대에 냅다 드러눕기 때문에 (자기 전에 집안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나 + 밤이 되면 뭔가 활기차게 놀려고 시작하는 아이들 덕분에 -,.-) 어영부영 잠자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만,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한 뭉텅이로 주어진다는 일상의 기적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어렸을 때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 - 발레 -를 해서 그런지, 온몸이 녹초가 되어 침대에 빨려 들어갈 듯한 감각이 잘 훈련되어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 잠을 청할 때 느끼는 꿀 같은 느낌을 좋아한다. 우리 신랑은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걸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져도 계속 보게 된다던데 나에게는 그런 욕구가 잠이 주는 달콤함을 이기지 못한다.
과감하게 눈을 감고 리셋 버튼을 누른 것마냥 단숨에 잠에 빠져들어버리다. 7시간이라는 꽤나 긴 시간 동안 내가 전원 버튼이 꺼진 로봇처럼 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다. 자면서 꿈을 꾸게 되면 무의식이 풀어내는 상상의 나래가 내가 쓸 이야기의 영감이 되기도 하고, 혹은 환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어 좋다. 꿈을 꾸지 않고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는데 그새 아침이 되어버렸네? 싶은, 깜깜한 암흑 가운데를 지나는 깊은 숙면. 그것은 또한 그것대로 좋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잠을 끝내야 하는 리츄얼로 포근하게 덥혀진 이불을 걷어내야 하는 게 힘겹지만, 잠이라는 건 내가 진심을 다해 즐기는 휴식이자 나이가 들수록 느끼지만 알고 보니 이것이 건강을 지켜내는 인생 최고의 무기라는 점을 깨닫는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서너 살 즈음되었을 때었나. 커리어적으로 지지부진한 나 자신을 보며 풀 죽어 있는데 신랑이 '자는 시간을 줄여서 뭔가를 해보면 어때?' 노력 없이는 얻는 게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던졌었다. 그 발언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잠언에도 보면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게으름을 경계하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작가 워크숍을 듣는답시고 새벽 3-4시에 일어나는 일도 1-2년 해보았지만, 가족들한테 짜증을 부리는 빈도가 높아지는 거 같아서 요즘에는 평범한 수면 스케줄을 유지하는 중이다.
신랑 또한 이제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이자는 입장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오랜 시간 밤 작업에 익숙해진 엔지니어 신랑이 불면증, 혹은 질 낮은 수면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이라는 영역은 너무 오랜 기간 고착화된 생활 습관이라 불면증 문제를 파악한다 한들 뿅! 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지금이라도 열심히 수면습관 개선을 위해 신랑이 (옆에서 돕는 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내가 타고난 좋은 수면 습관에 대해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나님께서도 요셉에게 꿈을 통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조만간 꿈에서 어마무지하게 재밌고 감동적인 동화 아이디어가 뙇!!!하고 나타나면 좋겠다.
--
구글 포토에서 sleep으로 검색했더니 우리 두찌 오동통 시절 사진이 나와서 한참 구경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