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지하철 노선표가 빽빽하리만치 발달된 서울과 달리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도시들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 땅덩이가 워낙 넓어서 동네 슈퍼마켓을 간다고 해도 차로 10여분 씽씽 달려 나가야 하니 대부분 개인 소유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종종 버스가 있다 해도 차량 간격이 1시간에 1-2대 꼴이라 오죽하면 고등학생들이 직접 운전하여 통학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랴.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자가용이 더더욱 필수품이 된다.
미국에서 학령기 연령의 두 아이를 키우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결혼 초반에는 신랑이 많이 운전했는데 이제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운전대 앞에 앉는다. 일단 기본값으로 아이들 학교 등교, 하교, 하루에 학원 1개 드롭오프, 픽업을 더하면 왔다 갔다 최소 4회이다. 여기에 한국장을 보거나 친구와의 약속이라도 추가되면 5-6회가 되고, 제일 많은 날은 왔다리갔다리만 8번 했던 듯하다. 감사하게도 그나마 올 2024-25년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첫째와 둘째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1년이기에 동선이 한두 개는 줄어들어서 그럭저럭 일상을 버티는 중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나는 어딘가에 갈 때 미리미리 도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시에 도착하는 사람이다. 혼자만 훌렁훌렁 준비해서 뛰쳐나갈 때는 시간 지키기가 수월했는데 이게이게.....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이니까 쉽지 않다. 신랑은 저녁형 인간인지라 아침에 일어나기를 너무 힘들어해서 등교 준비에서는 주로 내가 움직인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애들도 깨우고 전쟁처럼 부랴부랴 두 아이 준비를 마치고 시계를 보면 간당간당하다. 게다가 미국 급식이 너무 맛없고 영양도 부실해서 도시락을 싸주는 중인데 ㅠㅠ 그러다 보니 첫째 둘째 아침 식사를 주고, 학교에 가져갈 첫째 간식, 첫째 점심, 둘째 간식, 둘째 점심 총 6개를 만들어야 하니 손이 느린 나는 아침에 혼이 쏙 빠져버린다.
(짧은 커트머리라서 자고 일어나면 통키처럼 머리가 번개 모양으로 산발이 된 채) 두 아이를 데리고 차로 냅다 달려 나간다. 차를 타면 이제 진짜 만화의 주인공이 된다. 레이싱카 만화. 우리 아이들 지각시키면 안 되니까...... 부아아아아아앙!!! 동네 운전에서 골목길은 완전 빠삭하다. 어쩌면 안전한 트랙을 빠르게 내달리는 레이싱카라기보다 총알택시.... 그러니까 액션영화 추격씬이라 해야겠다. 꽉 막히는 출근길 대로변을 피해 차량이 없는 골목길로 요리조리 빠져나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신속하게 데려다 놓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전을 싫어하느냐? 그건 아니다. 단서련의 단서, 난 울 아빠를 닮아 운전을 꽤 즐기는 편이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에는 항상 아빠가 운전을 전담했다. 추석 귀경길 교통 체증으로 서너 시간 걸리는 운전이 배로 불어날 때에도 아빠는 자기가 운전하는 게 좋다고 했다. 게다가 운전을 잘하셨다. 멀미 나지 않게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알았고, 눈 오는 날 내리막길로 안전하게 운전할 정도로 기술이 좋았다. 그런 아빠를 닮았는지 나도 운전이 편하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그랜드캐년으로 여행을 왔다. 비행기가 아니라 자동차 로드 트립으로. 올해 초 우리 가족은 더 적극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위해 사륜구동 7인승 자동차를 구매했다. 7인승이지만.... 크기로 치면 어린 시절 내가 다닌 유치원의 버스, 봉고차 덩치 맞먹는다. 첫 번째 차의 이름은 붕붕이, 두 번째 차의 이름은 씽씽이다. 씽씽이와의 첫 장거리 여행으로 캘리포니아 땅을 떠나기로 했다. 네바다의 라스베가스 거쳐서 유타와 애리조나에 걸쳐있는 자이언 캐년, 앤털로프, 모뉴먼트밸리, 그랜드 캐년 광대한 자연 속으로 들아가는 동선으로. 일단 경유지이자 첫 번째 목적지인 라스베가스만 우리 집에서 대략 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ㅋㅋㅋㅋㅋ
아이들을 차에서 최대한 재우기 위해 새벽 4시 출발을 목표로 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채로 그대로 차에 태우기 일단 잠옷과 일상옷의 경계에 있는 옷으로 입혀두고 재웠다. 대망의 월요일 새벽 4시!! 장이 예민한 신랑이 긴장을 했는지 배가 아프댄다. 목표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그래도 어째 5시 쬐끔 전에 출발해 본다.
미국에서 숙련된 운전자가 된 나는 여행의 첫 3시간 새벽운전의 단추를 꿴다. 주무시는 손님들을 태우고 해가 뜨지 않은 고속도로를 지나고 꼬불꼬불 산길도 지난다. 식구들이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음악도 틀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더니 졸린 순간도 있었지만, 브런치에 이 단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깨웠다. 신랑이랑 운전 교체를 하면서, 여기저기 국도의 1차선 도로에서 앞의 차가 너무 느리게 간다 싶으면 타이밍을 보아서 추월도 했다 (이건 여전히 쫌 심장 터질 거 같다 ㅋㅋㅋ) 지난 6일간 이리저리 길고 긴 로드 트립을 해 나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토요일 아침, 브런치 연재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은 아직 자고 나는 호텔룸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872km, 라스베가스에서 우리집까지의 거리이다. 오늘도 안전하게 잘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