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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의 첫 시험

3월 - 학부모

by 단서련

글의 초안을 만든 오늘은 첫째 아이에게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6-8학년에 이르는 미국의 중학교는, 마치 한국의 대학교처럼 개인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각자 시간표를 짜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는 원래 배정되는 학제를 하나 뛰어넘어 월반을 할 수 있고 필수 교과목을 미리 이수하게 되면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다른 공부나 액티비티에 그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첫째 아이가 치르게 될 시험은 바로 지역 교육청에서 시행되는 시험인데, 한국의 중학교 1학년에 해당되는 6학년 수학 스킵 테스트다. 그동안 성취도 평가를 위해 테스트라는 걸 몇 번 보긴 했지만, 오늘 시험은 OMR 카드로 작성해야 한다고 하니까 제법 시험다운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공교육에서 Pass와 No Pass(Fail)라는 후덜덜한 결과까지 주어지니 더욱 긴장이 되었다.


이 시험이 있는 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스케줄이 얼추 학기말인 5월 정도 되겠거니 생각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숙제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인지라 아이에게 오랜 시간 궁뎅이 붙여야 하는 공부 같은 공부를 시키려면 부딪힐 게 뻔할 뻔이라 무의식적으로 미루고 싶은 내 오해였을지도 모르겠다. 봄학기가 개강하고 - 시험 준비를 슬슬 해볼까나 하는 데 -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일이 3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그즈음부터 열심히 문제집을 풀고 학교 근처 작은 수학 학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은 스킵이 중학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번 6학년 시험을 패스를 못할 경우, 7학년 수학 스킵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또한 이번에 스킵 시험을 패스한 아이들은 내년에 스킵 테스트를 다시 볼 수 없다. 다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학년이 어릴수록 스킵이 다소 용이하다는데 일단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그냥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시험 준비를 해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 두 달간, 문제집을 3권을 우다다다다 풀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공부 습관을 들이지 않고 신나게 뛰놀기만 하던 아드님인데 갑자기 입시생 모드를 견뎌야 하려니 쉽지 않았는데 잘 따라와 준 것이 너무나 대견하다. 육아서에 나오는 뻔한 말이지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다. 결과가 좋으면 아이의 자존감이 한층 올라갈 거 같아 좋을 테지만, 패스를 못하더래도 스킵 테스트 기회야 또 있을 테니 큰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예습을 했으니 앞으로 6학년 수학 수업을 훨씬 수월하게 따라가서 중학교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을 테다.


날이 밝아서 하나님께 오늘 아이의 수학 시험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동안 준비과정을 견뎌 준 아이의 노력을 크게 칭찬하여 주시고, 오늘 그 시험을 치를 때 필요한 능력과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제법 큰 시험을 앞두고 아이가 긴장하는 듯한데, 그 마음을 평안히 지켜달라고 말했다. 혼자 걸어가야만 하는 좁은 계곡에서 나는 아이 옆에 찰싹 붙어있지 못하지만 성령께서는 손잡고 함께 걸어 나가신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첫 아이의 첫 시험을 통해 이제 진짜 학부모가 되었음을 경험한다. 주님 의지하지 않고는 육아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은혜를 느끼는 한 주였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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