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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Oct 22. 2023

한국문화에 중독된 파리지앵들

유럽 한류의 중심지, 파리

 제일 핫한 나라 꼬레

 10년 전 미국 살 때는, "한국에서 왔어요" 하면 대부분 별 반응 없거나, 몇몇 미국인들이 '김정은, 북한 핵문제'등을 언급했습니다. 10년 후 2023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의 파리지앵들은 "오! 꼬레!!" 하면서 반가움, 기쁨, 환영이 뒤섞인 반응을 하며 한국 드라마, 음식, K pop을 말합니다. 본인이거나 자녀, 친구, 이웃 등 주변 누군가는 한국문화를 즐기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최대 수혜국(?)은 한국이라  수 정도로 전 세계 한국 문화 열풍은 뜨거웠어요. 유럽 한류의 메카인 프랑스 파리에 살면서 경험한 한국 문화에 빠진 파리지앵들의 이야기를 해 볼게요.


오징어 게임 - 아이 오프닝

전 세계 넷플 1위, 넷플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 인구와 긴 시청 시간을 갱신했던 오징어 게임은 글로벌 센세이션이었죠. 2021년, 파리 시내에 넷플릭스가 만든 오징어 게임 체험관 때문에 대규모 소요사태가 일어났었어요. 10평 남짓한 작은 카페를 오징어 게임 세트장처럼 꾸며놓고 주말 이틀간 오징어 게임 음악에, 빨강이 옷 입은 세모 네모 요원들이 1인당 1개씩 뽑기 체험을 시켜주었습니다. 10분도 안 걸리는 체험을 해 보겠다고 새벽부터 줄을 섰는데, 그 줄의 길이가 수십 블록! 1시에 줄 선 사람이 6시에 들어갔다는 후문입니다. 관광객들은 에펠탑, 루브르, 베르사유 앞에서 한두 시간씩 줄 서는 기본. 그렇게 남의 나라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는 것이 100년간 참으로 당연하던 프랑스 땅에서, 현지인들이 대여섯 시간씩 줄을 서 한국 문화 체험에 목숨 걸다니요..

이 무슨 쾌거(?)이자 한방의 일갈이란 말입니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옵니다.  

오징어 게임 체험 카페 앞의 거대한 인파. 일대 마비로 결국 경찰 출동.

10여 년 전 미국 살이와 비교해 보면 정말 대단한 국가 위상의 차이를 느껴요. K-Pop을 필두로 한국 문화 콘텐츠가 저변 확산되어, 아시아권을 넘어 점차 미국과 유럽에서 포텐을 받던 중 BTS의 글로벌 콘서트와 평창 올림픽이 불을 지폈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집에 갇힌 세계인들은 넷플에서 서성이다 K-Contents에 빠져들고 맙니다. 한국 문화를 젊은이들, 변방 문화 정도로 여기던 기성세대들의 인식을 바꿔 놓은 계기는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입니다. "한국문화의 수준과 역량이 저 정도였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죠.


K-food

프랑스에의 한국 문화의 확대는 한식당의 확산과 맥을 같이 합니다. 2000년대 초반 파리에 40여 개이던  한식당은 코로나 이후 200개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드라마와 유튜브를 통해 접한 한식 메뉴들을 먹어보고 싶은 욕구로 인해, 불고기나 비빔밥 같은 전통 메뉴를 넘어서, 분식류, 덮밥, 팥빙수, 치킨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됐고, 한 두 종류의 라면이나 김밥은 이제 프랑스 대형 슈퍼마켓의 고정 품목이 되었답니다.

한식의 기본이 되는 김치도 이 알려져서, 한국 학부모회에서 김치 아틀리에를 열었을 때 하루 만에 접수가 마감됐지요. 저도 새로운 외국인들을 만날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파리 한국인이 하는 전통 한식당 추천이었습니다. 외교 모임에서 만난 각국 외교관 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남아뿐 아니라 남미에서도 한식의 인기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저 한국식 핫도그를 7유로(만원) 에 팔아도 줄이 매우 길어요.

K-Drama

프랑스 드라마에 팬을 만나기는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파리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젊은 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 학교 학부모회, 외교관 부인 모임에 나가도, 한국 사람이라는 말만 들으면 그때부터, "내가 요즘 보는 드라마는.." 하면서 한드 중독자들의 간증이 쏟아집니다.  한국에선 사실 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파리 와서 외국인들과 대화하기 위해 핫한 드라마들을 뒤늦게 몰아보았답니다. 고전에 가까운 사랑의 불시착과 태양의 후예부터, 사이코지만 괜찮아, 갯마을 차차차, 봄날, 미스터 선샤인, 더 글로리, 마스크 걸까지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프랑스 시청률 TOP 10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Gloria라는 20대 프랑스 아가씨가, "우리 아파트 층에 내 또래 8명이 사는데, 그중에 6명이 한국 드라마를 봐."라고 말했어요. 한국 드라마에 빠진 50대 프랑스 아저씨, 40대 프랑스 주부, 싱가포르 아줌마, 50대 인도네시아 대사 사모님, 가나 사모님, 30대 중국 엄마까지, 파리에서 만난 K 드라마 러버들은 참 많답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 "끝날 때 멈출 수가 없어서 다음회를 마구 눌러" "야하지 않으면서 진짜 로맨틱해." "세팅이 리얼하고, 멋지고 화려해." "남주가 너무 멋져!" 등등 한국 드라마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습니다.

파리 15 구청에 걸린 대형 태극기. 매년 열리는 한국 문화 축제

K-Pop

프랑스에서 K-pop의 인기는 꽤 오래됐지만, 지난 3년간 더욱 대중적으로 확대된 것 같아요. 저는 10대들이나 20대 젊은 층만 K pop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왠 걸요! 4,50대를 주축으로 하는 방탄 소년단 프랑스 아미 모임인 "프랑스 아미 맘" 그룹은 열성적인 활동을 하더군요! 저도 BTS팬인지라, 아미맘 프랑스 주최 댄스파티에 참여했었는데, 세상에나, 프랑스 4,50대 아미 엄마들의 파워와 열정에 깜짝 놀랐답니다. 클럽을 하루 통째로 빌려서 "아미 엄마의 밤" 행사를 열고 DJ를 초빙해 BTS의 곡들 포함한 핫한 K pop곡을 틀어요. 프랑스 아줌마들이 다 한국말로 따라 부르며 춤추는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지요. 자녀들 때문에 방탄 콘서트에 갔다가 팬이 된 사람들, 친구나 이웃 통해 접한 사람들 등 다양한 경로로 K-pop을 즐기게 된 파리지앵 팬들을 보면서 "한국 것은 멋진 것이라는 K-cool"을 실감할 수 있었답니다.

프랑스의 BTS 아미맘 열성 엄마들.

 방탄 소년단 서울 콘서트는 프랑스 영화관에서 동시 위성 생중계했었는데, 프랑스 전역에서 표가 매진됐었죠. 저도 큰 딸이랑 영화관에 콘서트 보러 갔는데, 자막도 없이 중계되는 BTS 콘서트를 보면서, 들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웃는 유일한 관객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죠. 영화관 화장실에서 BTS 곡 부르며 손 씻던 프 초등학생들의 모습에 빵 터졌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어린애들이라 한국어 발음도 정확!!)

BTS 서울 콘서트 프랑스 영화관 동시 생중계. 세계 최초 시도!

파리의 웬만한 체육시설에는 K-pop댄스 강좌가 있고, 고등학생 큰 딸은 '재즈 댄스' 강좌에 등록했는데, 블랙 핑크의 곡으로 춤을 배워왔습니다. 파리의 쇼핑센터나 카페에선 K- pop 종종 나오기도 하고, 아, 브리짓 마크롱님이 블랙 핑크를 영부인 자선 행사에 초대하신 것도 알고 계시지요? ^^ 

치열한 티켓 확보전과 전석 매진의 기록!

 우리나라 문화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사실 한국 안에서만 잘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해외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보면, 자주 체험 할 수 있답니다.

파리 한식당들 앞의 긴 줄, K-pop콘서트 앞의 어마어마한 인파,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서 열리는 한국 음식 축제의 뜨거운 열기... 광장에서 케이팝 댄스를 추고 있는 젊은 무리들... 프랑스 티브이에서 "한국 문화 열풍"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방영되었답니다. 

마크롱 대통령과 블랙 핑크 (C) 연합뉴스

한국어 열풍

프랑스에는 유럽 최대규모의 한국어 학습 인구가 있는데, 코로나 직전과 코로나 이후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학교는 3.5배로 늘어났고, 조만간 일본어를 앞지를 추세라고 합니다. 프랑스 대학의 한국어 관련 학과 경쟁률은 30:1에 육박합니다. 지금까지는 중국어나 일본어가 아시아권 외국어의 대세였지만, 한국어가 빠르게 추월하고 있는데, 특히 젊은 층에서 인기가 뜨겁습니다. 한국어 할 줄 알면, 편하게 누릴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많거든요. "자막 없이 드라마와 노래를 즐기고 싶다!" 이 강렬한 열망이 한국어 학습의 강한 동기가 됩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음소는 겹치는 것이 많아서, 프랑스인들의 한국어 발음이 좋아요. 듣기 거북한 영어식 억양 없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몇몇 만나보았지요. 레스토랑이나 가게에서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종업원이 "어머, 언니! 안녕!" 하면서 반가운 마음으로 말 거는 사람들 있어요. 한국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한국말 알아듣고 아는 척하는 거죠. 파리에서 한국말 내용 조심! ㅋ

2023년 9월.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파리 콘서트. 한국어 떼창!

 물론, 저는 대도시인 파리에 살아서, 유난히 더 뜨거운 한국 문화 열풍을 체험할 수 있었겠지만, 머지않아 중소 도시에도 한류의 도도한 흐름이 다다르리라고 믿어요. 한국 음식이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오기 힘들고, 한국 드라마 역시, 볼수록 빠져들기 때문이죠. 21세기, 세계인들이 발견한 한국 문화.... "한국사람들, 너네 이렇게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밌는 드라마 보면서, 이런 흥겨운 노래 부르며 쭉 살아왔던 거야?"

그 문화 콘텐츠를 타고 영어가 아니면서 세계인들의 안방에 침투한 유일한 언어인 한국어. 우리, K - Culture의 종주국으로서, 국뽕 많이 많이 가져도 된답니다.


파리에서 만난 한국

프랑스 파리에서 3년간 살면서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내 나라의 소중함과 자랑스러움', 파리 생활의 가장 큰 수확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기회" 였답니다. 사람들은 빛의 도시, 사랑의 도시, 낭만 파리를 칭송하고 그 매력에 빠져들지만, 저는 파리에서 오히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재발견했답니다. 세계인들이 한국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죠.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제1회 김치 아뜰리애! (파리EJM 한국 학부모회)

제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수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나도 한국 가고 싶어. 꼭 찾아갈게!!"라고 했지요. 빈 말이 아니었어요. 귀국한 지 한 달 지나, 아직 귀국 이삿짐 박스도 다 안 풀었는데, 프랑스 가족이 서울을 찾아왔네요. 12시간  비행 후 서울에 온 파리지앵들을 데리고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산 낙지 체험을 시켜주면서,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었도다."

파리에서 매년 열리는 한국문화 축제. 프랑스인들의 K pop 댄스 커버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제 프랑스의 이야기들의 기저에 '깊은 애국심'이 깔려 있다는 것을 느끼셨을 거예요. 외국 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죠? 10여 년을 외국에서 살다 보니, 전 거의 독립투사에 가까운 애국심을 장착하게 되었답니다. (저출산에 저항하며, 한국인 넷을 낳아 기르는 중!)

저항시인의 프랑스 살던 이야기는 계속될 거예요. 프랑스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프랑스에서 가본 멋진 곳들과 강렬했던 전시들, 프랑스 가족과 음식 이야기.. 아직 못 다룬 글감이 참 많아요. 앞으로 써나갈 많은 프랑스의 이야기들로 재미와 교양과 감동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프랑스와 파리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태어난 땅,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뜨겁게 품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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