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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Oct 04. 2023

불어 완전정복!? 나의 프랑스어 굴욕기

중년 학습자, 애증의 프랑스어 배우기

 미국 살다 와서 영어가 편했던 저는, 프랑스로 출국 전에, '불어, 그까짓 거 내가 가서 빠짝 하면 금세 정복하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귀국하면서 "나의 프랑스어 정복기"를 쓰게 될 줄 알았는데..  프랑스 살던 3년간 정복은커녕, 어에 처참히 복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또 인생은 맘대로 되는 건 아님을 알고 겸손해집니다. 지겹게도 안 늘던 프랑스 이야기를 해 볼게요. 성공기 아닌 실패기라서 민망하지만 저항시인이 맥락 없이 갖다 붙인 프랑스 현지 명화를 감상하시면서  읽어보세요.^^

"프랑스어! 넌 나에게 굴욕감을 주었어!"

프랑스어... 너란 존재는!

전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고교 제2외국어로 독어를 배웠습니다. 어학을 좋아해서 대학 때 스페인어, 중국어, 독일어 수업도 들었던 어학인으로서, 저는 프랑스 오기 전까지, '설마 내가 못하겠어? 내가 왕년에 토익 만점이었다고!'이렇게 마리아 라떼로 빙의했건만... 

제가 간과했던 세 가지. 코로나 시절에 와서 1년을 봉쇄된 상태에서 살았고, 중년의 두뇌기능이 예전 같지 않았으며, (출산 후 기억력 감퇴 x 4회) 모두 다른 학교에 다니는 네 명의 아이가 있다는 것! ( 공부 & 숙제는 뒷전) 이렇게 핑계는 많지만, 오링고도 하고, 1년 어학원을 다녔는데도 생각보다 늘지 않는 불어가 황당하고 내심 충격적이었어요. 나..설마 못하는거..?!  말이 안 나오지?

머리속에서만 멤도는 불어... 막힌 귀... 열리지 않는 입...

참을 수 없는 불어의 어려움

프랑스어가 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어는 변화형이 매우 많아요. 주어에 따라 동사 어미가 다르고, 과거형이나 미래형도 동사 어미가 변화되며, 동사뿐 아니라, 형용사와 관사까지도 성과 수에 따라 모두 변합니다. 동사변화도 1군. 2군 3군으로 많아서 주야장천 외워야 하는데, 이런 기본 규칙들을 확실히 외워두지 않으면 이후 계속 헷갈립니다. 어느 정도 익혔다 싶으면 새로운 외울 거리가 쏟아지고,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또 새로운 변형이 빵빵 터지니 어느 시점에선 '그냥... 말까' 싶답니다.

 발음하는 것과 쓰는 것의 차이도 커서 같은 발음이라도 글자는 다르고 단어 끝은 발음을 안 하고, 연음과 축약도 빈번하며, 관사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단어라도 관사를 붙여 버리면 단어 발음이 달라져 버려요. 프랑스어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프랑스인들도 변형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초등 저학년부터 프랑스어와 문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받아쓰기도 꾸준히 하고, 중고등까지 문법 문제를 계속 연습합니다. (아이들도 영어는 미국 가서 1년 정도 지나면 말문이 트이던데 불어는 2년은 지나야 자유롭게 말하더라고요. 말은 된다 해도 문법 구멍은 많습니다. 프랑스 애들도 불어 보충 과외를 종종 하더군요.)

초4학년 공책ㅡ 전부 필기체라 애들이 필기체 익히는 것도 힘들었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말을 너무 빨리 해요. 빨리 할 뿐 아니라 또 많~이 해요..... 그래서 도저히 조금씩 익힐 수가 없습니다. "어머 외국인이세요?" 하면서 천천히 말해주는 그런 배려 없답니다. 그리고 구어체의 경우 동사를 잘라서 이리저리 순서를 바꾸는 '언어유희'가 많고 글을 장황하고 어렵게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 또한 드높아서 '프랑스 왔으면 프랑스어 해야지'라는 생각에, 유럽에서 가장 영어가 잘 안 통하는 나라이기도합니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에선 영어가  통하고, 북유럽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해요.) 이래저래.. 어가 어렵다 보니 그 언어장벽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도 불어권 보단 영어권을 선호하고 난민들도 프랑스보단 영국으로 가길 희망합니다.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는 동사 꽁쥬게이션

프랑스어 자격시험

토익. 토플처럼 불어도 DELP라는 어학 자격증이 있는데 A1,2가 기초. B1,2 가 중급. C1,2 가 고급이에요. (프랑스 대학을 다니려면 B2가 필요합니다.) 두뇌 쌩쌩한 젊은이들은 밥 먹고 불어만 하면 6개월 만에 B1을 따지만, 살림하고 육아하는 어미들은 A2 따는데 2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2년 후 효력이 없어지는 토익 토플에 비해 델프는 만료기한없어서 한 번 따면 평생 인정된답니다. 그래서 주재원 엄마들도 괜히 A2정도는 따고 싶어 합니다. 불어 자격증 천하에 쓸모없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든든하잖아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것 같고 성취감도 주고... ^^ 빈칸 보이면 채우고 싶고, '쯩'은 뭐든 따놔야 할 것 같은 시험형 민족인 지라 Delf시험 응시자수 2위가 한국인이라 합니다.


불어를 대하는 주재원들의 자세

불어를 반드시 잘해야 하는 유학생이나 현지 취업자들이 아닌 주재원이나 배우자들, 기타 1~2년 단기 체류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1) 불어 애초 멀리 파

 어렵고 머리 아프고 시간도 없다며 아예 시작 안 하고 눈 귀 막고 살면서 영어로 대충 뭉개는 과감한 실속파. 시간과 돈을 어차피 안 될 게임에 베팅하지 않는 깔끔하고 결단력 있는 분들이십니다.

"불어 안 배우세요?" "이제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1년 후 "아직도 불어 안 배우세요?" "벌써 갈 때 다 돼서요~" 이러면서 "봉쥬! 메르시! 실부뿔레!" 정도만 하며 번역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일관성 있으신 분들입니다.

"불어요? 제가요?? 왜요?바쁜 인생, 영어도 아니고 왠 불어?!"

2) 불어 중도 포기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하는 파로, 야심 차게 어학원 등록하고 스터디에 참여하는 등 시작은 의욕적이나 어려운 불어의 벽 앞에서 심기일전하지 못하고, 관광 및 쇼핑의 유혹과 육신의 고단함, 두뇌의 기능 저하로 기초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약한 부류입니다. 식당, 마트에서 우버 배달원에게 기초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단어의 나열 이상은 좀 어렵고, 시제랑 관사 앞에 작아지는 분들.

 이들은 "어머! 아직 불어 포기 안 하셨어요?" 이렇게 서로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지요. 1년을 다녔는데... 2년을 배웠는데 "난 왜 이모냥 넌 왜 그 모양!!" 이렇게 성토하지만 그렇다고 큰돈, 많은 시간 투자하긴 싫은 보통의 핑계형 한국인들입니다. (지금 바로 제가 하고 있는... 내가 불어 못하는 건 불어 탓! 자기 합리화)

네 시작은 심히 창대하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희미한 동사 과거형의 기억..?

3) 불어 막 해불어파

그런 부류 있잖아요... 학교 때 공부 잘하고 욕심. 승부욕 성취욕 강한 부류. 자기 계발에 열심히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며 맡은 일은 해내고야 마는 그런 능력파들! 주로 센 직장 다니다 오신 분들이나, 여기서 다른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 분들, 혹은 외고나 불문과 출신.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는 (외동맘이거나 중고딩 맘) 분들은 불어의 벽을 넘어버립니다. 학원도 두 개씩 다니고 것도 아예 소르본 같은 대학 부설 힘든 어학원을 다녀요ㅡ 하루에 세 시간 이상 불어에 매진하면서 막 새벽에 일어나고, 단어장도 만들고, 스터디방 조직해서 녹음 파일 올리는 등... 불어고시생처럼 매달리시는 분들!

 결국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 불어 수준급에 도달하고 델프 B2 휘날리며 위화감 팍팍 조성하는 분들 꼭 있지요. 불어와 한국어는 음소가 겹치는 것이 많아서 영어보다 발음은 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데, 이렇게 공부하신 분들은 "오히려 영어보다 불어가 말할 때 부담 없지 않아?" 이러면서 승자의 면모를 드러내 주십니다. 칭찬해 칭찬해~ 의지의 한국인들! 부디 한국 가서 불어 쓸 곳 찾길 바래요~. ㅋ

불어, 쉬지 말고 달려 달려!! 달리면 되거늘 안 달리고 어렵다 핑계야!

첫 해는 봉쇄였고, 두 번째 해엔 어학원 다녔지만, 마지막 해엔 등록을 안 했어요. 그냥 이쁜 파리 구경이나 다니자며.... 그런데 솔직히 찝찝하고 좀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영어랑 비슷한 단어들도 많아서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해내지 못하고  앉은 스스로에게 좀 실망입니다. T.T 다른 외국 아줌마들, 특히 유럽권 분들은 불어 곧잘 잘하더라고요.

이게 알파벳 문화권이 아니라 그런 거라며 또 핑계 만들어 보지만 결국은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여버린 마음)인 것이죠.

 파리에서 프랑스어 잘하면 너무너무 좋답니다. 일단 일상이 편하고 프랑스인들도 사귈 수 있으며, 박물관 미술관 등 많은 무료 프로그램 이용가능하고 그토록 아름답다는 불문학의 세계에 입문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제대로 좀 배우고 싶었는데... 고3 수험생을 포함한 가족 뒷바라지로 가득 찬 일상 속에서 공부할 시간과 여유를 찾기 어려웠어요. 


프랑스어 굴욕샷들

9유로나 하길래 고급 치약인줄 알고 샀는데 알고보니 틀니 붙이는 본드.
'잼+와플'이란 단어인 줄 알고 주문했는데 '크림+와플' ... 왕 느끼..
Skateur 라 써있길래 스케이트 인 줄 알고 엄마가 신청....아이스링크 가는 줄 알고있다가 뜬금없이 문신남 코치에게 스케이트 보드 배운 따님들.

불어 헷갈리고 몰라서 황당했던 일들 많았는데요. 그래도 어찌어찌 3년 살아냈습니다. 근데 이게 또, 솔직히 집 밖만 나가면 이렇게 이쁜데 제가 공부하게 생겼겠습니까??!!

와따, 그냥 놀아 불어~~!!!! 

아름다운 파리에서~~ 파리에서 살렵니다 아~~ 

인간미 넘치는 저항시인의 불어 정복 실패기였습니다.


Merci d'avoir lu mon post! Je vais revenir! au revoir!(번역기 돌려유. 저도 번역기로 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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