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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Oct 22. 2023

바캉스, 프랑스!나는 놈 위에 노는 놈

프랑스 어린이들의 방학과 어른들의 휴가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고, 프랑스인은 바캉스심으로 삽니다. 프랑스는 인류 최초로 '법정 유급 휴가 제도"를 시작한 나라, 학교조차도 1년에 방학 5회. "7주 수업 후 2주 방학"이 기본, 세계에서 수업 일수가 가장 짧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대체 공부는 언제 하고, 일은 언제 하나 싶은데, 수 세대를 그리 살아온 가닥 덕분인지, 애들도 자기 몫을 하는 시민으로 잘 자라고, 나라도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듯합니다. 휴가라 하면 전 국민 8월 첫 주 휴가지 예약 전쟁, 방학이라면 국영수 방학 특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 프랑스의 휴가와 방학 이야기를 해 봅니다.

박카스와 바캉스 ㅡ 와인과 휴가의 나라 프랑스

놀기 위해 일한다

  프랑스인들은 바캉스를 신봉하기에 3주~4주의 긴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여름휴가는 그 전해 겨울부터 준비해서 봄쯤이면 예약을 마치더라고요. 그리스나 지중해, 스페인 등의 해외 휴양지, 국내 가족 별장이나, 캠핑장 등에서 쭉~눌러앉아 지내요. 프랑스 주재원을 비롯한 한국인들은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스페인 남부 일주 등'원정형 정복 여행'을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휴가는 한 곳에서 유유자적 수영하고 선탠 하는 '휴양'입니다. 한국인들은 휴가도, 동유럽 뽀개기, 스위스 일주일 정복! 같은 전투적인 자세로 임합니다. 한국인들이 애용하는, <몽생미셀, 에트르타, 지베르니 당일치기 여행 - 새벽 5시 개선문 집합. 익일 새벽 1시 해산>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기절초풍하지요... "너희는 왜 열흘 짜리 휴양 코스를 하루에 몰아서 일처럼 하니?"

이렇게 두 나라의 휴가 문화가 다릅니다. 프랑스인들은 휴가를 굉장히 당연하고 마땅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여름 휴가를 잘 보내야 그 해를 잘 살았다 생각합니다. 국민 총생산량을 봐도 7,8월 두 달을 합쳐야 한 달분이 나온다니, 정말 전 국민이 한 달은 '완전히 놀고 쉬는' 것이죠. 프랑스 살면서 '진짜 이 민족은 제대로 놀고 쉴 줄 아는구나..' 했어요. 그들 기준에서 우리들은 제대로 놀지도,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베르동 계곡ㅡ 방방곡곡 갈 곳 많은 프랑스

긴 휴양형 여름 바캉스 

 영국,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이 운전 가능한 거리이고, 비행기 타면 북유럽과 북 아프리카가 반나절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는 프랑스. 굳이 외국을 안 가도, 자국 내에 바다, 알프스, 계곡, 강, 평야 등 아름다운 휴양지가 넘쳐나는 나라랍니다. 프랑스 관광청은 매년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발표해요. 수백 개의 마을이 선정되어 있는찾아가 보면 정말 다 아름답습니다!

산지가 많은 도르도뉴 지방의 아름다운 마을

 노는 복 많은 프랑스인들은 휴가 계획하는 재미로 지내다가, 휴가지 숙소에 딱 자리 잡고, 어른들은 샴페인이나 나이트 파티 하면서 어른끼리 어울리고, 애들은 애들끼리 놀게 하거나 프로그램에 맡기기도 해요. 대부분의 휴양지 호텔이나 리조트 혹은 도시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담당 선생님이 아이들을 돌보며,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하고, 여러 가지 스포츠도 해주는 그런 키즈 클럽이죠. 캠핑장 예약하면 그 안에 포함된 경우도 많고, 브랜드 리조트는 좀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길고 오랜 휴양형 방학 때문에, 가족 별장이 많아요. (파리 근교 노르망디에 파리지앵들의 별장이 많아서, 노르망디 도빌지역이 파리 21 구라는 별명이....^^) 가족 별장에 형제자매 친척들이 모여서 같이 지내면서 노니 우리보다 사촌이나 방계 가족들끼리 더 친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공부 위주. 애 보기 위주' 방학은 없고 '방학 특강, 방학 숙제' 없이 남녀노소 신나게 찐하게 쉬고, 제대로 퍼져서 노는 기간이 여름 바캉스입니다.


 둘째 친구 중에 파리 찐부자 친구가 있어요. 엘리제궁 근처의 그 집에 가보니, 널찍한 거실에 거대한 스핑크스가 두 개나 있더라고요. 나중에 둘째가 집에 와서 해 준 말이 충격. "엄마, 거기 거실 아니고, 현관이야." 우리 집 마루 크기를 전실로 가진 그 찐부자양의 엄마에게서 어느 날 문자가 왔습니다. "우리 모로코 별장으로 여름휴가 가는데, 너희 딸을 초대하고 싶어. 수영장과 테니스 장이 있어" 오오!!! 모로코의 별장이라니!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 일정을 알려달라 했습니다. 그 가족의 모로코행 직항 비즈니스석 일정을 받아 같은 비행기로 예약하려니, 왕복 비행기값만 230만 원! "너무 비싸서 못 보내겠어"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여권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라고 넘어갔답니다. T.T 그 찐부자 친구는 다음 바캉스에 또 우리 아이를 초대했고, 그땐 노르망디의 별장이라 해서 갈 수 있었답니다. (요리사와 운전기사, 내니를 동반하는 파리 부자들의 여름휴가를 체험하고 온 둘째 딸, 네가 부럽고, 장하다! ㅋㅋ)

수영장 딸린 여름 별장 하나 정도는 다들 있으시죠?(파리지앵 빙의)

 파리 스포츠 교실 / 방학 놀이 센터

 아이들은 7주 수업 후 2주 방학을 하지만, 부모님들의 직장도 그 기간이 다 휴가는 아니지요. 그래서 방학을 커버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늘 있습니다. 프랑스의 예체능 교사들은 계약직 교사로 한 선생님이 여러 학교에 나가는데, 방학이면 그 선생님들은 스포츠 교실 담당 교사가 됩니다. 시에서 무료 혹은 저렴하게 스포츠 교실을 열어주는데 양궁. 펜싱. 체조. 육상. 배드민턴. 테니스 등등 다양한 스포츠를 1주일간 배울 수 있어요. 파리시의 구립 체육관에서 매 방학 시작 전에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 평소에 배울 수 없었던 종목들을 배울 기회를 줍니다. 종합 스포츠 교실도 있어서 다양한 스포츠를 해 볼 수도 있어요.

파리 스포츠 ㅡ 체조 여름 캠프. 올림픽 체조 종목을 체험해 봄

 파리 스포츠와 더불어 Centre de Loisior (놀이 센터)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유치원~초5까지) 공립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일명 방학 보육교실로 프로그램이 다채롭고 괜찮아요. 이름에 걸맞게 공부는 1도 안 시키고 체육, 게임이나 미술 활동 많이 하고 미술관 수영장 박물관 동물원 공원 견학도 하며 재밌게 놀지요. 유료이지만 부담이 크지는 않고 소득 구간에 따라 1일에 1유로에서 최대 13유로까지 내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원하면 대부분 보낼 수 있지만, 초등 2~3학년만 돼도 한국 엄마들은 집에서 공부시킬게 많은데 너무 종일 논다고 다소 기피하기도 합니다.

 사립 기관에서 하는 영어나 과학. 체육 방학 프로그램도 많이 있어요. 공립에 비해 비싸고 시간도 짧은 편이고 (하루 3시간 정도) 사립 종일 반 프로그램은 주 300유로 훌쩍 넘어 가지요. 일단 방학 때는 운동을 많이 해서, 고급 스포츠 클럽마다 여름 프로그램도 늘 있어요. 이처럼 프랑스에는 미리 준비만 하면, 맞벌이 부부든, 저소득층 자녀든, 누구든 무리 없이 방학을 지낼 수 있도록 공교육과 사교육의 탄탄한 백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답니다.

방학 때 파리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센강 지류 무료 바캉스 놀이터

 애들 보내고 어른도 쉬자!

 Sejour 라 불리는 여름 숙박 캠프는 참 프랑스다운 놀라운 프로그램이에요. 프랑스는 1년에 1회 초등 1학년부터 일주일 자비 부담 수학여행 <Class vert 그린 스쿨>이 있습니다. 7살 어린이들이 5박 6일 자연 캠프라니, 어린 나이부터 터프하게 돌린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다녀오면 아이가 독립심, 자주성이 부쩍 늘더라고요. 부모는 세상 편하니 이거야 말로 1석 2조! 프랑스 만세!

4학년 캠프 마지막 날 댄스 파티. 노는 법도 잘 가르치는 프랑스

 그 가닥이 있어서인지 여름 방학 때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2주~3주 짜리 캠프로도 많이 보냅니다. 방학 숙박 캠프는 주로 스포츠 클럽이나 사설 캠프 기관에서 진행하는데, 비용 감당이 힘든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국공립 캠프도 있어요. 골프장 딸린 호텔에서 진행하는 호화 골프 캠프, 영국까지 가서 하는 수천 유로짜리 영어 캠프, 카누, 승마, 테니스 캠프도 있고, 그냥 숲 속에 풀어놓고 산속 텐트에서 자는 캠핑장 캠프까지 스팩트럼이 매우 넓어요. ^^ 저소득층이나 다자녀 가정에는 일반 캠프 참여 지원금도 나온데요. 1학년부터 중고생까지, 대부분 대자연에서 신나게 노는 프로그램이라 바닷가나 호수와 산이 있는 남부 쪽에서 진행돼요. 여름 주말 프랑스 기차역에 가시면 노랑 빨강 단체티 입고 깃발 든 어른들 주위에 캐리어 들고 모여있는 여름 캠프 학생 무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2월 스키 방학이 있는데, 스키/스노 보드 캠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렇게 아이들 캠프 보내고 부모들은 단 둘이 어디 여행하기도 하지요. 캬~진정한 휴가네요! (두 명 보내도 두 명 남는 우리 집은 예외..)

2주간의 스키방학이 있는 2월. 스키장 마다 스키캠프가 있어요.

 저희 아이들은 프랑스 개신교 연합 캠프에 2년간 참여했었어요.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캠프는 꽤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차마 2주를 마냥 노는 건, 국민 정서법상 무리인 것 같아서 일주일로 신청했는데 나중에 3일 연장할 정도로 아이들이 재밌어했어요. 종일 게임하고 뛰어놀고, 매일 수영하고, 숲 속이나 바닷가도 가고, 저녁에는 노래 부르고 성경 이야기도 배우고 그랬데요. 열흘간 찐하게 놀았지만,  개인위생도 책임지고, 자기 물건도 챙기며 다른 아이들과 지내다 온 아이들은 불어만큼이나 책임감과 독립심도 부쩍 늘어 있어요. 난, 이런 프랑스식 여름 캠프 찬성일세!  

종교계 캠프는 흔하진 않지만 캠프비가 비교적 저렴

우리도 좀 놉시다

프랑스의 여름 방학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찐 바캉스! 애들은 애들끼리 신나게 놀고 어른들도 어른들끼리 놀 수 있게 시스템이 돼 있어요. 프랑스 어린이들은 '지금 당장 신나게' 많이 놀아요. 애들 방학이 부모 방학이 되는, 검증되고 내실 있는 방학 캠프 인프라 및 보육 시스템을 갖춘 프랑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어차피 노는 측면에선 여긴 상대가 안 되는 나라입니다.  어릴 땐 진짜 많이 놀고 대학생 때 최고 심하게 공부하는 나라.(대학은 쉽게 갈 수 있으나 매년 20% 쳐냄. 최종 졸업률은 낮음) 적어도 프랑스 어린이들은 한국 어린이들보다 자연스럽고, 여유로우며, 즐거워 보입니다.


 두 달의 긴 여름 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가 시작된 9월, 저는 프랑스 친구의 3주 남프랑스 바캉스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어요, "너네 프랑스 사람들은 좋겠다. 온 나라에 먹을 것도 많고, 놀러 갈 곳도 많고, 노는 날도 정말 많구나."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죠. "그럼.. 그래서 우린 불평불만도 아."

우리도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우는 나라로 돌아갑시다.

복에 겨운 프랑스,  나라가 너희 같을 수는 없겠지만.. 대한민국도 좀 더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강의 기적, 전국민 열공, 세계 최장 노동시간... 그렇게해서 훨훨 날아오른 국 맞지만... 우리 나라 여기저기 많이 아픈 것 같아서요.

 돌아오니 어느새 그리운 프랜치 노세 노세 분위기.

우리 나라 어린이들 만이라도... '지금 마음껏 충분히' 놀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그만 열심히 하고 프랑스 사람들 처럼 좀 놀면 안될까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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