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명품, 낭만과 미식의 나라 프랑스가 세계적으로 뛰어난한 가지는 '대규모 시위와 파업'입니다. 혁명의 나라답게 정기적 파업과 시위로 온 나라가 마비되니 프랑스 적응은 '파업에의 적응'이기도 합니다. 파업도 화끈하게 '대중교통 전면 파업' 혹은 '전국 주유소 무제한 파업' 정도죠. 올해 초반엔 정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3주간 프랑스 전역 주유대란! 2월에만 전면 파업 세 번. 대중교통 파업 기간엔 교사들 출근 못 해 학교도 휴교하고, 직장인들 대량 지각 사태에,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유로스타 철도까지 부분 취소됐으니, 민폐도 이런 국제적 민폐가 없습니다. 그 남다른 파업 스케일보다 더욱 놀라운 건 묵묵히 모든 불편을 견디며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파업 견디는 맷집입니다!
"왜 프랑스인들은 자주 파업을 일삼는 걸까? 그 엄청난 불편과 손해를 왜 국민들은 감수하는 걸까?" 파업일수가 한국의 4배인 프랑스에 살면 필연적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입니다.
프랑스의 시위는 기본적으로 '행진'입니다. 깃발 들고, 피켓 들고 함께 걷기가 기본. 경찰은 교통을 통제해 줘요
집회 조기교육 - 의견은 소중해, 표현은 존중해!
프랑스에서도 시위대와 경찰과의 격돌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시위는 피켓과 깃발을 든 행진이 기본입니다.저는 아이 때문에 시위에 동참해 본 적 있어요. 프랑스 정부가 소규모 어린이집을 공립 유치원으로 통합하려고 해서, 막내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통폐합 반대 시위 하러 파리 시청 앞으로 모이자 했습니다. 아이도 데리고 오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학교에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나가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시위는 사람보다 피켓이 중요하더라고요.풍선, 피켓 이런 거 세워놓고, 두세 시간 모여 있다가 자진 해산.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모여서 인사하고 대화 나누고, 커피 마시고 무슨 학회 온 것 마냥 소셜을 합니다. "우리 왔다감~!" 이 정도 느낌이었어요. 이런 비장함과 긴장감이 떨어지는 조용한 집회를 '꾸준히' 합니다. 한 학기세 번 정도 나가서, 풍선과 피켓을 달았고, 막판엔 학부모들이쓴 손 편지를 시장실에 전달하기도 했어요.그 결과 어린이집 폐업은 1년 미뤄졌어요.
모여서 의견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시위의 기본
프랑스 인들에게 집회와 시위, 파업은 세일이나 교통체증처럼 생활의 일부입니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프랑스 교육 자체가 '스스로 생각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개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기, 이견과 차이를 말로 좁혀가기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이견이 있으면 거리감을 느끼고 긴장이 흐르는데, 프랑스인들은 이견이 있으면 "오! 잘 만났네!" 하면서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인 대화를 시작합니다. "다름은 섹시함. 너의 다름이 날 자극해~!" 이런 식이다 보니, '개인의 의사표현'은 존중받고, 집단적 의사표현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좌우, 남녀, 노소, 이쪽저쪽, 네 편 내 편, 진영 갈라치기하고, 끼리끼리만 모여상대의 말은 잘 듣지 않는 우리랑 다르죠.
일단, 뜨겁게 저항하라!
프랑스인들은 저항정신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목숨과도 중요한 것! 그 저항 정신은 코로나 기간에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집합 금지 명령" 이 내리면 집합해서 저항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가 떨어지면 정부와 거리두기 하면서 저항하더라고요.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동양적 사고를 가진 우리들에게는 "왜 저러나..." 싶은데, 천부 인권설 믿는 자의식 강한 프랜치들은 달라요.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저항하는 댄스 시위. 말 참 안듣는 프인들 ㅋ
코로나 규제에 저항하는 스쿼트 시위. 시위 방법도 참 다양하죠?
연대와 관용... 너희의 파업을 인정한다.
프랑스 사회에 흐르는 두 정신이 있는데, "솔리다리떼"와 "똘레랑스"입니다. 솔리다리떼는 '사회적 연대'로서 상대방과 내가 '우리'가 되어 함께 싸우는 정신이고, "똘레랑스"는 "사회적 관용, 자비"로 "그래. 니가 그럴 수 있어" 정신이에요. "내 권리가 중요하듯 너의 권리도 소중해. 내가 존중받기 원하니 너도 존중해 주겠어."라는 이성에 기초한 관용 정신입니다. 솔리다리떼와 똘레랑스가 사회적으로 구현된 것이 '전면파업'인 것 같고, 대가는 일반 시민들이 치릅니다.
"이런 게 가능해?" 싶을 정도의 '국민 대 불편 초래' 파업에 제가 뒷목을 얼마나 잡았던지요!전국 농민들 파리 트랙터 시위로 도로가 봉쇄되어 5분 거리가 35분 걸린 적도 있고,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2주간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파리에 쓰레기 산이 쌓이고 냄새와 오물에 쥐까지 창궐한 게 불과 몇 달 전이였죠. 왜 시스템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개선하지 않나? 싶은데 (조정 단계가 잘 되어 있는 독일이나 스위스엔 파업이란 없습니다) 함께 목소리 내 저항하고 파업할 권리를 실천(?)하는문화적행태라고 받아들였어요.
파업 5일 차 샷. 여기서 10일 이상 쓰레기가 더 모였지요.
한국에선 총파업했다가 '국민 불편 초래' 욕 들어먹고, 노조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고소당해 그 피해 비용까지 덤탱이 쓰기도 한다지요. 프랑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프랑스는 집회 파업으로 극심한 도로정체. 여행 취소. 사업장 마비 등 전 국민 피해가 막심해도 파업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유일하며 당연한 권리 행사"라 믿기 때문입니다. "불편하다고? 그동안 편했던 게 누구 덕? 네 편리함은 당연한 게 아니야" 이런 사고방식이요.
우리가 남이가?
파업이 잦다는 것은 파업이 효과가 있다는 말이죠.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파업했던 기관의 약 70%가 합의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프랑스 노조가 센가? 싶어서 찾아보니, 프랑스의 노조 가입율은 놀랍게도 10%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조 가입율 8%)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을 잘 안 해도, 프랑스의 '단체 협약 적용률'은 90%가 넘습니다. 개별 사업장 노조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산업 노조가 강력해서, 산업 부문별로 파업 & 집단행동을 통해 노사 간 혹은 정부 와의 협약에 이르면, 그 약속이 전체 산업에 확장 적용된단 뜻입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하급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산업별 노조를 결의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솔리다리떼' 정신으로 모두와 함께 가는 용기 있는 결정을 많이 내렸고, 시민들과 법률가들은 '똘레랑스'의 정신으로 이를 지지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법을 개선했습니다. 그런 오랜 역사적 개선의 결과 중 하나가, "효력 확장제도법" 입니다. 단위 사업장에서 '갑'의 결정과 상관없이 '협약 내용'이 강제 적용되는 것인데, 예를 들어 화물 연대 노조가 정부와 협상안을 타결할 경우, 노조 유무에 상관없이 전체 화물 회사들이 그 협상안에 따라야 하지요. 그러니,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전국 농민 상경 시위 - 센강변 도로가 수천 대의 트랙터 행진으로 꽉막힘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단위 사업장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노조가 '귀족노조'란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조건 좋은 대기업 정규직만 노조의 혜택을 보고, 다수의 계약직, 단기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협상권이나 근무 환경개선 요구권 없이 위험한 일에 내몰리고도낮은 임금을 받으니, 같은 산업 종사자끼리의 임금 격차는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져 연대를 어렵게 만듭니다. "너 참 억울하겠다. 우리가 함께 싸워줄게!"가 아니라, "그러길래, 열심히 해서 정규직 되지 그랬어? 다 니 탓이지."라는 메시지가 왠지 익숙하지요? (한국은 OECD국가들 중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예요.)
똘레랑스 당(?)한 솔직한 심정
프랑스는 노동자의 인권이 높아서, 일 안 하고, 일 못하는 사람들 자르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미국에선 "너 해고야!" 하면 땡인데, 프랑스에선 "해고 절차"가 최소 6개월 걸린대요.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해고 못한다는 농담이 실상으로 다가올 만큼 경영진이 노동자를 함부로 하지 못해요. 물론, 이게 마냥 좋은 건 아닌 거 같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파업을 종종 하는데, 개인 사정에 따라 안 나오시기도 해요. 개인 권리 좋다지만, 황당한 경우가 많았고, 그 최고봉은 셋째 아이의 수학여행 취소 사건이었어요.
친구들과 산, 바다로 놀러가는 연중 최고 행사 반 수학여행
프랑스는 초등학생들이 매년 봄 5일간 반 캠프를 가요. 수련회장 가서 자연 체험활동, 레크리에이션등을 하며 우정을 쌓는,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기간입니다. 그런데, 우리 반 담임이 "저는 애가 어려서 올해 반 캠프를 안 갑니다. 일주일간 근처 견학 활동으로 대체할게요"라고 선언했어요. 전교생이 캠프 가는데, 딱 2학년 5반만 담임 개인 사정으로 빠지겠다니요!애들이실망하니, 부모들이 학교에 항의했어요. "대체 인력이라도 구해서 캠프 가자. 아이들이 불쌍하다!" 교장의 답은, "학교는 담임에게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할 수 없다. 학급담임이 그런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그녀를 존중한다." 그러자 분연히 일어섰던 학부모들은 똘레랑스를 시전 합니다. "어쩔 수 없지. 담임의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 내년 캠프를 기약하자." 소 쿨한 프랑스 학부모들과 달리, '형평성'에 예민한 한국인으로서, 저는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지탄을 퍼부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해하고 수긍하다니!'
제가 교사인데 아이가 어려서 일주일간 집을 비울 수 없다면 이러한 존중이 참 고맙겠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사정으로 반 아이들을 희생양(?) 삼는 교사의 자질이 의심스러웠지요. 입으론 "그래. 멋지다~ 똘레랑스!" 하지만, 당장 내가 피해를 보니, 마음에 분노가 일더라고요.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똘레랑스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고, 그 대가를 기꺼이 감내하는 학부모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함께 싸우자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OECD에서 노조가입율 최저. 산재율 최고. 비정규직 비율 최고. 남녀임금 격차 최고인 우리 노동시장에 가장 필요한 건 적극적인 '노동자 인권 보호' 같은데, 한국 언론과 정부는 노조를 눈엣 가시로, 파업을 '이기적인 행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서 '전면 파업' 하면 전 국민의 욕을 먹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도 노동자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노동자의 편이 아닙니다.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따뜻한 급식 제공이 중단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내 자식의 점심 한 끼에만 집중했지요. 그들과 '연대' 하기보다는 그들이 알아서 견디길, 조용히 사그라들길 바랐던 저의 모습을 봅니다.
"내가 너의 옆에 함께 서 있어 줄게." 사회적 연대의 시작
소수 보호, 약자 보호, 개인 인권, 인간 존중... 이런 절대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 너의 권리 행사 때문에 내가 피해 봐도 그걸 기꺼이 감내해 주는 똘레랑스. 함께 뭉쳐서 목소리 내는 솔리다리떼. 이런 빛나는 프랑스 정신이 참 부럽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당해(?) 보니,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의 안위와 만족'만큼 '너의 권리 주장과 유익'도 중요하다는 삶의 방식을 우리도 실천해야겠습니다.
서로를 위해 싸워주고, 서로를 견디어 주는 사회가, 서로 싸우면서 서로를 못 견뎌하는 사회보다 살기 좋으니까요.
“난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함께 죽도록 싸워 줄 것이다." - 볼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