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 중 하나입니다.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파리지앵들은 베스트 드레서지요. 아시아에선 단연코 한국인들이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Fashion 보단 Passion으로 충만한 저는 옷에 관심이 없고, 패션 감각이나 심미안도부족해요. (임신 수유 기간만 10년패션이고 나발이고 거적때기만 입고 살았슈...) 그런 제가 패션과 미술의 나라, 브랜드의 나라, 프랑스에서 파리 16구 의 패션 박물관 두 곳을 다녀옵니다. 패션에 관심있거나, 파리에서 머무는 시간이 조금 여유로우신 분들이라면, 루브르나 오르세 보다 부담 없이(1시간 정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Palais Galliera와 Musée Yves Saint Laurent Paris를 추천합니다.
[파리 복식 박물관 & 샤넬]
파리 16구의 복식 박물관은 패션 및 미술에 관련된 훌륭한 특별전이 꾸준히 진행되는 박물관이에요. 저는 파리시립 박물관 연간권을 끊고 꾸준히 특별전을 관람했답니다. 2022년에 '패션의 역사"라는 특별전이 열렸었어요. 17세기말부터 18세기를 메인으로 2000년대 초까지 복식 관련 전시물(대부분은 옷, 특히 여성의 옷, 약간의 신발과 모자, 장신구)이 모여 있었어요.
인간 역사에서 옷은 신체를 보호한다는 기본적인 기능에더해, 신분과 경제력을 상징하고 '이성을 유혹'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죠. 복식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18~19세기 상위 3%의 옷들을 전시해 놓은 것인데, '패션'이라 불릴 만큼 멋 부릴 여유가 있는 귀족층 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계형 평민들은 때타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어둡고 튼튼한 옷 두어 벌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래요. 옷은 남자 재단사가 만들었고, 역사 최초의 여자 재봉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레스를 만든 사람이었어요. 재단사들은 큰돈을 벌지 못했고, 옷을 팔아 돈을 번 사람들은 천을 수입, 공급했던 직물업자들이었습니다.
18세기까지 귀족 여성들의 옷은 신분과 부를 뽐내며, 매력 어필로 귀족 남자와 결혼해서 부를 유지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하녀의 도움'을 받아 입을 수 있는 아름답지만 불편한 옷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가슴볼록. 허리 잘록한여성미를 강조하면서도 길어서 불편한 옷들. (볼 일 볼 때도 하녀 어시스턴트 필수.. 결혼식날 드레스 이모님이 옆에붙어서 신부가 자세 바꿀 때마다 드레스 펴서 이쁘게 주름 펴주시던 것처럼, 평생 웨딩드레스 입고 이모님 대동하는 귀족여자의 삶!)
충격적 이게도, 실크로 만든 당시의 드레스들은 세탁불가 여서, 옷을 '빨아 입는다'는 개념이 없었고, 그냥 '솔질'을 하는 것이 다였어요. 속옷도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천민들은 팬티를 입지 않았고, 귀족 여자들만 패티코트를 입을 뿐.
빨지 못했기 때문에 안에 다른 옷 입고 위에 덧입는 드레스가 일반적
위 드레스의 착샷 ^^ 18세기까지도 신발의 좌우 구분이 없었데요.
패션은 사이클을 탑니다. 젊은이들은이전 세대(할머니옷 거부!) 패션과 차별화를 추구하다 보니, 새로움-복고-새로움-복고의 사이클이 생기지요. 패션은 또한 언제나 정치, 경제 상황을 반영해서, 전쟁이나 공황기에는 드레스가 단순해지고, 전쟁이 끝나거나 경제 호황기에는 화려해집니다.
자수 무늬로 꽉 채우고 옆으로 크게 퍼지던 귀족의 화려한 드레스
프랑스혁명 후 심플하고 슬림하게 급변! 나폴레옹 황후 조세핀의 드레스
1900년대 초반, 남자 손으로 낚아챌 수 있는 비정상적인 얇은 허리를 강조하던 패션으로 인해서, 여성들은 코르셋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옷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지경.... 바로 그때 등장한 코코 샤넬!
모자 제작으로 시작한 그녀는 여자들이 입기 편하고, 실용적인 옷을 디자인했고, 최초로 여성 바지 정장도 출시했어요. 치마길이가 짧고 입기 편하면서도 장식미를 양보하지 않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슈트는 인기를 얻었고, 샤넬은 사교계의 거물이 되었죠. 이후 샤넬은 향수도 출시하고, 2차 대전 후 잠시 사라졌다가 남자 디자이너들의 득세를 보고 분전하여 다시 컴백, 죽을 때까지 승승장구했지요. 샤넬의 업적 중 하나는, 하얀 피부에 대한 집착으로 햇빛을 극도로 꺼려하던 여성들에게 남부 해변에서 신나게 여름을 보내고 선텐 한 갈색 피부로 등장하여, 구릿빛 피부 대 유행을 불러온 것.
짧은 머리 유행, 숄더백 유행! (무거운 가방은 하녀의 몫, 손엔 장식용 가방만 들던 시대에 샤넬은자기 어깨에 메는 숄더백 출시! 프링스 부자들 빈티 난다고 경악, 미국에서 여배우들이 들면서 성공, 이후 가방의 역사를 바꾸고 럭셔리와 부의 상징이 된 샤넬빽!)
그렇게 샤넬은 여성을 해방시키고, 여성의 건강을 증진시킨 위대한 여성이었을까요?
70세 넘어서까지 일했던 샤넬. 겹겹의 진주보다 멋진 저 가위!!
아이러니하게도, 한 때 프랑스에서 샤넬은 경멸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큰 추앙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에요. 그녀는 평생 여러 재벌 스폰서 유부남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사업을 키웠고, 독일군 장교와 호텔에 거주하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지했기 때문에, 2차 대전 후 전범으로 몰렸으나, 전 애인의 도움으로 처벌을 피해 스위스에 가서 살았어요. 독립적이고 여성 해방의 선구자 같은 샤넬의 이미지는 일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본국에서는 나치 추종자, 노동 인권 유린 사업주에, 다른 디자이너와 문제도 많은 소위 '인성 논란'에 빠진 인물 이었어요. 20세기 가장 성공한 비지니스 우먼이자 디자이너인 샤넬, 그러나 지금까지도 정작 프랑스인들은 그녀를 높이 평가하지 않고, 그녀의 방계 후손들도 혈족 관계임을 쉬쉬하는 편이래요. 개인적으로 저는 여성의 옷을 디자인 한 최고의 여성, 그리하여 여성을 해방시킨, 스타일과 비즈니스의 천재 샤넬이 존경스러워요.
[입생 로랑 박물관; 현대미술, 옷이 되다.]
박물관 속의 입생 로랑. 이런 테마형 연합 전시 참 좋아요
복식 박물관에서도 돋보이던 인상적인 디자이너는 색채의 예술을 패션으로 형상화 한 입생 로랑이었습니다. 2022년 파리의 6대 메이저 박물관에선 [미술관 속의 입생 로랑]이라는 특별 전시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마티스, 몬드리안, 피카소 같은 현대 미술작품들에서 영감 받은 입생 로랑의 디자인들이 미술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지요. 진짜 보면, 2차원의 미술을 3차원의 옷으로 재탄생시켜, 예술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놀라운 시도였어요! 느낌 보고 가실게요~
하버드 의대생 같은 외모의 젊은 입생로랑. 하버드 의대급 노력과 두뇌를 겸비한 디자이너
퐁피두 센터 작품
묜드리안의 유명한 저 작품 아시죠? 입생은 현대미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데요.
마티스의 작품이 의복으로 재탄생
2차원 미술작품의 색과 선을 3차원 동적으로 재구현
고수들끼리 서로 통하는 그런 경지일까요? 콜라보 한 듯한 일체감!
파리 현대 미술관 Dupy의 이 큰 작품을 옷으로 표현하면?
짠! 색감과 천의 질감, 컷까지 그림을 옷에 투영
예술작품을 옷으로 바꿔버린 저 아웃풋에서 알 수 있듯이 입생로랑은 젊고 잘생기며 천재적인 감각과 더불어 부던한 노력과 실험정신을 겸비한 디자이너였어요. 그는 20살 젊은 나이에 크리스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고 (디올이 심장 마비로 52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그 빈자리를 입생이 채움!) 이후 파리 패션계를 뒤흔드는 신성이 됐죠. 그러나 군복무와 크리스천 디올에서해고 당하는 충격 등을 겪으며 약물에 의존하게 됐고 평생 우울증.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데요. 그래도 쉼 없이 열정을 불태워 일을 했고 모로코와 그 색감을 사랑해서 말년엔 모로코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여자 형제들과 그림 그리며 놀던 소싯적 입생의 종이인형
그는 사업 파트너이자 동성 배우자인 피에르 베르제와 평생을 함께 했어요. 유럽 패션계에 게이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왜 유독 남자 동성애자 여성복 디자이너들이 많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남자의 눈에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이 더욱 어필할 수 있고, 체력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보통의 남자들보다 더섬세하고 미적인 눈을 지녀서 그런 건 아닐까 추측합니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 입생로랑
지나갈 패션도 남을 스타일도 없는 저는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멋있는 말이라 생각하고요...
입생 로랑의 작업실. 매년 봄, 가을 패션 위크를 준비하는 것이 파리 디자이너 삶의 패턴
평생 옷감을 자세하고 치밀하게 연구함
여러분, 옷 잘 입으세요? 옷 쇼핑은 자주 하시는지? 이 시대가 인류 역사상 옷 값이 제일 싼 시대래요. 그만큼 의류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고 있고요. 명품 브랜드들은 가치유지를 위해 세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남는 옷을 소각해요. 스파 브랜드에 명품 브랜드까지 매년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고, 옷 생산에 들어가는 화학제품과 염료들도 환경을 많이 오염해요. 옷보다 몸이 중요하다고 성경에도 나와있는데, 패션도 몸과 지구를 생각해서 추구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누구나 돋보이고 싶어 합니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패션으로 그 자연스러운 욕망을 나타내는 건 개인의 훌륭한 전략이죠.그래서 샤넬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여성이 누추하게 입으면 사람들은 그 옷만 기억한다. 여성이 완벽하게 차려입으면 사람들은 그 여성을 기억한다" - 코코 샤넬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할 일 많고, 옷과 가방에 큰 지출 하기 버거운 보통의 우리 일상에서 모두가 늘 완벽하게 차려 입을 수는 없는 법... 저는 들고 있는 가방으로 기억되기보다는, (그 여자 누구? 아, 디올빽!) 선한 눈빛과 친절한 말로 기억되고 싶어요. 복식 박물관에 있던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와 카와쿠보의 일명 '거적때기 패션' 샷으로 마무리하면서 저항시인, 샤넬에 살포시 저항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