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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Jan 09. 2024

빨래터 처녀가 백화점 주인으로.. 신데렐라는 아닙니다.

르 봉막쉐의 창립자 부시코 부부의 이야기

세계 최대 매출 백화점은 어디일까요? 뉴욕 파리 도쿄 다 제친 서울의 '신세계 강남점'이라 합니다! (^0^) 그럼,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어디일까요?1852년 (우리나라 고종황제 시절!) 파리에 세워진 '르 봉 막쉐'입니다! 명품 매장 많은 파리 최고급 백화점인 이곳은 사실 근대 상업의 혁명이라 불리는 놀라운 역사와 기록을 가진 곳입니다. 한국 관광객 '샤넬빽' 사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봉막쉐 개점 170 주년 행사에서 창립자 스토리를 알고 깜짝 놀랐어요. 

영화로 만들어도 될 법한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운 봉막쉐 창립자 부시코 부부의 . 얼핏 신데렐라 이야기인가 싶지 만, 들여다보면 시대를 앞서간 비전으로 도전과 혁신을 통해 성공하여 사회 공동체의 번영과 공동 선을 이끌어 낸 비저너리 여성 사업가의 이야기! 부시코부부를 소개합니다.

2023년은 봉막쉐 창립 170주년

파리 봉막쉐 백화점의 전설


 세계 최초 백화점 봉막쉐를 만든 부시코(Boucicaut) 부부는 평민출신. 특히 마가렛 부시코 부인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로 시골에서 10대에 파리로 와서 센 강 빨래터에서 일을 시작한다. (수도시설이 없었던 당시엔 부잣집 빨래를 수거. 센강 빨래선 1층에서 손빨래. 2층에서 건조 & 다림질을 해서 다시 집으로 배달하는 세탁물 배달업이 있었다. 마가렛은 센강의 빨래녀!)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아 드디어 작은 치즈 가게를 차리는데 그 가게에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러 온 총각 아히시티드 부시코. (Aristide Boucicaut) 그는 시골 방앗간집 아들이었는데, 파리로 올라와 작은 상점에서 일을 하며 세일즈를 배우고 있었다.


둘은 연애하고 살림 차려 아들도 하나 낳았으나, 여자 출신이 보잘것없다는 시댁의 반대로 정식 결혼식도 못 올린 채 10년  흐른다. 부지런한 아내의 도움을 받은 아히시티드 부시코는 탁월한 비지니스 감각으로 봉막쉐라는 매장을 주인으로 부터 이어받아 (똑똑한 종업원에게 가게 넘기기) 놀랍게 번창시킨다. 이후 주변 가게들 전부를 사면서 확장을 거듭하다 드디어 종합 잡화점 "르 봉막쉐" 탄생! 살롱을 연상케 하는 화려하고 밝은 내부장식과 깨끗한 시설, 아름다운 상품의 진열은 신흥 부르주아들을 매료시켜 엄청난 매출을 일으켰다.1852년 개점 시 50만 프랑이던 봉막쉐의 수익은 1870년에는 2000천만 프랑. 이후 1872년 신관의 증축은 무려 구스타프 에펠이 맡았을 정도!  

진정한 비저너리이자 박애주의자였던 부시코 여사.

부시코 부부의 혁신 행보는 참으로 놀라웠다. 1852년 개점시부터 낮은 가격의 정찰제(흥정이 기본인 시절에 정찰제는 새로운 시도). 깨끗한 화장실(당대 파리에서 화장실을 갖춘 최초의 가게였음), 유아 놀이방, 남편들을 위한 리딩 룸, VIP 서비스 등 획기적 & 신박한 비지니스 아이디어로 승승장구. 어린이들에게 지금의 포켓몬 카드 처럼 수집 가능한 선물을 주어 주말이면 아이들이 봉막쉐 가자고 부모를 달달 볶았다 한다. '카탈로그'를 가가호호 발송하여 상품을 안내하는 서비스와 마차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고, 백화점에 미술작품을 전시해서 예술가와 부자 들이 만날 접점을 제공하기도 해, '부르주아라면 봉막쉐로~' 문화를 퍼뜨리는 데 성공하며 파리 최고 핫플로 등극했다. (요즘 시대 백화점 서비스의 대부분을 부시코 부부의 봉막쉐가 시작!)

아름답고 깨끗한 내부 공간의 연출로 부르주아들이 주말이면 찾는 곳으로 등극한 봉막쉐
그 시절 파리 전역 물건 배송/우편 주문 서비스 시작! 수백 대의 마차가 봉막쉐 앞에서 출발. 부시코, 미래에서 온 부부인가?!

 그러나 부시코 부부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직원 복지 제도에 있었다. 전 직원의 50%가 여성 근로자였으며, 법정 공휴일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그 시대에 일요일은 휴일로 지정하여 쉬게 하고, 시골에서 상경한 여직원들을 위해 백화점 내에 기숙사를 마련했다. 넓고 깨끗한 직원 식당에서 매일 두 끼 '양질의 식사 무료 제공'이라는 당대 놀랍도록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고, 퇴근 후 문화, 여가 및 재교육 프로그램을 실시 (펜싱, 공예, 영어회화) 하였으며, 판매 실적에 따른 포상금/ 해외여행 기회까지 제공하였다. 매년 의무 건강 검진. 퇴직하거나 죽은 가족들을 위한 부조 기금 조성, 직원을 사주로 만드는 주식 분배 등 21세기 기업들도 못 따라갈 복지를 1800년 대에 최초로 시행하였다!

부시코여사가 직접 만든 진열대. 아래쪽을 열어서 바로 물건을 보여줄 수 있는 혁신적 디자인. 지금도 매장에 있음

이쯤 되면, '이들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인가?'싶다. 부시코 부부가 전례없는 복지 제도들을 고안해 낸 기저에는 Lemennais란 기독교 사회주의가 있었는데, 이는 '형제애' 를 기반으로 '서로 돌보는 이상 사회'를 주창한 사상이었다.

20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특별하고 위대한 기업가.  아랫사람들의 고생을 모르는 귀족이 아닌, 센 강 빨래터에서 귀족들의 옷을 빨던 마가렛 부시코였기에 직원들을 위한 교육, 주거, 의료 복지를 생각을 해 냈던 것이리라. 

150여 년 전 시작해 지금도 운영 중인 어린이 놀이방. (유료)

미국인들은 '부시코가 미국인이었어야 해!'라고 한다. 아마 부시코가 미국 사람이었다면, 유명해져서 전 세계 모두가 아는 위인이 되었을지도... 그러나 봉막쉐라는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아름다움과 특별함은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부시코 씨가 죽고 부인이 10년 간 더 경영하다가 마가렛 부시코 부인도 사망. 그녀의 장례식 행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슬퍼했다고 한다. 부시코 부인은 사재를 양로원, 병원, 미혼모를 위한 치료 빛 보호 시설을 짓는 데 사용토록 지시했고 그때 세워진 병원과 연구소들이 지금도 파리에서 운영 중이다. 현재는 루이비통사가 봉막쉐를 소유하면서, 창립자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기리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주고자 했던 창립자의 뜻을 이어 받아 지금도 백화점 전체가 예술가들의 설치 미술 공간으로 정기적으로 변모한다.

겨울엔 트리, 연중엔 테마 예술 작품 전시장으로 탈바꿈하는 봉막쉐

놀랍도록 인스퍼레이셔널 한 부시코 부부와 봉막쉐 스토리. 명품 매장 즐비한 소비천국인 줄로만 알았던 봉막쉐가 이런 곳이었다니!

봉막쉐 개점 170주년을 기념하여 1800년대 판매 제품을 매장에 전시 중. 기록물 보존과 전시에 진심인 프랑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받은 포인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면서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창립자 부부의 "직원들을 형제자매처럼 돌보는" 형제애 이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핵심 정신인 '박애주의'의 비지니스적인 현현! 근대 상업의 모든 것을 시작했다고 인정받는 입지전적인 사업가. 혁명적인 복지 시스템을 고안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아름답게 환원할 줄 알았던 진정한 사회 사업가, 부시코 부부.


마땅히 지급해야 할 수당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계약 난무, 육아휴직 쓰지 못하는 직장맘이 허다하고, 비용 절감 지시에 제일 아래 비정규직부터 잘려나가며, 경영 실패로 사업이 망해도 경영진과 주주들은 미리 챙겨 빠지고 직원들만 하루 아침에 정리되는 그런 현실에 익숙해진 이 시대의 한국 사회에는 부시코 부부 같은 '유능함과 선량함을 함께 갖춘" 사업가들이 참 간절하다.

재벌님들에게 기대하고 싶지만, 한국 고용의 90%는 중소 기업. 대한민국이, 꿈꾸는 사장님들, 나와 내 가족을 넘어선 연대 의식 넘치는 선한 사업가들로 가득한 나라가 되기를...!

봉막쉐 내 예전 부시코 부부의 사무실에서 스위스 외교관 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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