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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Feb 14. 2024

일본이 접수한 파리의 박물관들

파리 께브항리 박물관과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수많은 박물관들 중, 한국 관련 전시물들이 있는 곳은 '비서구권 민속 박물관'이라 일컫어지는 께 브항리(Musée du Quai Branly) 박물관과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Guimet)입니다.  에펠탑 옆에 자리 잡은,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지은 께 브항리 박물관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즉, '유럽을 뺀 전 세계'를 한데 묶어 소위 '제3 세계' 문화 유물을 다 몰아 넣은 곳이지요. 께 브항리 강 건너 16구에 위치한 기메 아시아 박물관은 프랑스 최초, 유럽 최대 아시아 문화 박물관입니다. 파리가시면 이 두 곳은 왠만한면 들르지 마세요. 중국과 일본에 눌려 초라하기 그지없는 한국 전시물로 인해 기분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항리의 기모노 vs 한복

유럽을 제외한 전지구의 문화를 한 공간에 커버하려던 께 브항리를 처음 보고  '어둡고 기괴하다' 느꼈습니다. 평소 잘 볼 수 없었던 남미나 오세아니아 쪽 민속 유물들이 특이 하긴 했지만, 전시관이 온통 검은색이고, 각 대륙의 주술, 샤머니즘과 관련된 기이한 탈들과 형상들이 많아서 일면 섬뜩하기도 했어요. (무당집 분위기 같은...?) 이 박물관은 특별전을 자주 여는데, 2023년 3월부터는 기모노 특별전이 열려 큰 성공을 했답니다.

2023년 께브항리의 '기모노 특별전' 일본 문화 축제(제펜 매니아 축제)도 함께 열림

  지역신문에도 나오고, 일본문화의 밤이라며 야간 무료 개장 행사를 할 정도로 떠들썩한 전시였기 때문에 저도 한번 들러 보았습니다. 박물관 입장료에 추가로 티켓을 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구부터 줄이 길었습니다. 기모노의 역사부터 시작해, 이 특별전을 위해 제작된 현대 기모노까지 아름답고 화려한 기모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관람객들. 특히 프 어르신들이 많았음.
현대적 감각의 기모노들
기모노의 멋진 프리젠테이션... 다양하고 웅장했어요.
현대적으로 해석한 기모노들... 우리 한복도 전시하자구요....

한 층을 독립적으로 쓰면서 대단한 특별전을 벌이는 화려한 기모노와 화끈하게 비교되는 초라하고 보기 민망한 한국 관련 전시물이 영구 전시관에 있습니다. 기모노 전시를 보고 나니 더욱 부아가 나던 께브항리의 한복과 조각보..!

구김 간 너덜너덜 조각보
께 브항리가 소장 전시하고 있는 한국 세션의 한복들

낡은 한복 한 벌과, 치마 없이 걸려 있는 빛바랜 낡은 저고리와 구겨질 대로 구겨진 보자기. 이 두 장의 사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시물의 전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파리의 박물관에서 조우한 내 나라를 대표하는 전시물이 6.25 전쟁 피난길에 입었을 법한 상태의 낡은 한복 저고리.. 우리 애들도 보고 실망하더군요.

 박물관의 2층 전체를 독점한 채 인기를 끌어 모으고 있는 기모노 VS 한국인 심기가 불편할 정도의 초라한 한복... 한 벌로 입는 옷인데, 하의 실종 상태로 방치된 한복에,  현지 교민들도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데요.

기모노 단독전 보고나니 한복은 존재감 없음

프랑스의 일본 사랑

 17세기 말렵부터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해 '자뽀니즘'이란 명칭까지 생길 정도로 일본 문화는 프랑스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아 왔습니다. 인상파 화가들도 일본의 미술과 종이에 매료되어 일본식 정원을 꿈꾸고, 그림에 일본적 요소를 반영하기도 했으니 말이죠.

일본의 예술과 종이를 사랑했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마네

파리의 또 다른 아시아 박물관인 기메 동양 박물관에도 중국과 일본 전시물이 메인 홀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관은 구석에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요. 기메 박물관 기념품점에는 일본 문화에 관한 책들이 즐비하고,  일본식 가운인 유타카를 판매하기도 하니 일본 관련 물품들만 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께 브항리 박물관기념품점 역시 한국 관련 물품은 찾아볼 수 없고, 일본풍 소품들과 기념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기메 동양미술 박물관 북스토어의 일본 마네킹들
90%이상은 중국&일본 관련 서적들
박물관 서점 벽 끝에 제일 윗쪽 딱 한칸이던 한국 관련 서적

 2021년 9월부터 2022년 1월까지 께브항리에서 이어졌던 '아시아 무술전' 특별전을 떠올립니다. 아시아 무술을 소개 한다는 그 전시에서, 중국 무술 쿵후와 사무라이, 가라테와 유도뿐 아니라 현대 일본 만화의 무술 캐릭터까지 등장 했지만, 한국이나 태권도 관련 내용은 없어서 실망했었죠.

쿵후 대신 올림픽 금메달국 최다배출 종목인 태권도를..!

 오랜 문화 교류 역사에 더해 지금까지도 탄탄한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유럽에 일본 문화를 성공적으로 선전해 온 일본의 문화 외교 실력은 인정!

그러나 2000년대는 바야흐로 한국 문화의 번영기로서, 코로나 시절을 통과하며 프랑스에서도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이 뜨겁습니다. 파리의 한식당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한국어를 배우는 프랑스인들과 한국 드라마를 보는 프랑스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금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문화 외교 역량을 십분 발휘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뛰어남, 독창을 프랑스에 알릴 좋은 타이밍이에요.


저항시인, 저항하다!

께 브항리 한복 관련... 프랑스 한국 문화원에 연락해 봤더니 문화원에서 10년째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데, 박물관 전시물에 관해 자존심 센 프랑스는 복지부동이라고 합니다. 한 나라 박물관의 전시물 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전시 한복을 제공하겠다고 해도, 전시물 선택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싫으니, 역사적 고증과정을 언급 하면서 무시한데요. 박물관 상점 진출도 다방면으로 노력 하는데 변화가 쉽지 않다고 문화원 관계자들이 말하는 걸로 보아... 아직 프랑스 박물관 관계자들과 윗분들에게는 한국이 일본, 중국에 한참 밀리는 형국이네요.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글로벌 대기업과 집단지성에라도 의존해야 겠죠? 께 브항리 구글 리뷰에 제가 글을 남겼는데요.. 다들 한 번씩 들어가셔서  좋아요 눌러주세요. ^^ 베스트 리뷰로 떠서 박물관측도 보도록!!

Musée du quai Branly - Jacques Chirac https://g.co/kgs/9zqau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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