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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Apr 02. 2024

모네의 두 여인: 가난한 모델 vs 똑똑한 유부녀

모네의 마을 지베르니, 잊혀진 모네의 두 번째 부인 알리스의 이야기

파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주민 500여명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43년간 여기 살면서 여러 대표작들을 그리면서 꽃들이 만발한 큰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화가이자 정원사였던 그는, 사후에도 마을 주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습니다. 모네의 작업실은 기념품 파는 공간이 되었고, 그의 작품들과 함께 모네가 수집했던 일본 판화 작품들이 걸려 있는 집은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지베르니 모네의 집

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시슬리. 르누아르. 고흐. 고갱.. 당대에 주목받지 못했던 비주류 화가들. 그림 그리는 가난한 벗들로 서로 의지했던 그들은 후일에 미술의 역사가 되지요. 고달픈 삶을 살았던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모네는 당대에 성공해서, 모이면 모네가 밥값을 내곤 했다네요.

모네의 식탁. 구리 냄비와 많은 식기들이 걸려 있었어요. 이 식탁에서 여러 인상파 화가들이 식사를 함께 했겠지요.
응접실. 그림 원작은 오르세와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습니다.

모네의 영원한 뮤즈는 수많은 작품의 모델이었던 '까미유'입니다. 신분이 낮고 가난했던 그녀는 미모의 모델로 모네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어린 아들 둘만 남긴 채 32세 나이에 암으로 죽습니다. 까미유와 함께 했던 시간들 내내 모네는 가난했지만, 아내의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까지 화폭에 담으며 지극한 사랑을 불태웠지요. 그림이 팔리지 않아 어려웠던 모네는 사업하는 친형 '레옹 모네'의 도움으로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부를 얻고, 말년에 호수 딸린 그림 같은 집에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인맥 좋고 생활력 강한 두 번째 부인 '알리스'였습니다.

침실. 전반적으로 내부의 메인 색깔은 아이보리였습니다.

알리스는 원래 모네의 후원자였던 부유한 예술품 수집상 '에르네스트 오슈데'의 부인이었는데, 사업이 망한 남편이 해외로 도주하자 아이 여섯과 모네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모네의 첫 부인인 까미유가 죽은 후, 알리스는 모네의 두 아들까지 무려 여덟 명의 아이들을 맡아 집안을 건사하면서 모네와 사실혼 관계로 살아갑니다.

 주렁주렁 달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신 빠짝 차린 파리 여자 알리스였을까요? 그녀는 상류층 인맥을 이용해 부자들에게 모네의 천재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림을 소개합니 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고 명성이 점차 쌓이기 시작한 모네는 돈을 모아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게 됩니다.


 모네에게 진심이었던 알리스는 이후 무책임하게 도망갔던 남편이 나타나 파리로 돌아와 같이 살자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지베르니에 남습니다. 수년 후 남편이 죽고 40대 후반 미망인이 되어서야 알리스는 모네의 정식 아내가 됩니다. 일본 예술과 문화를 동경하는 자포니즘에 푹 빠진 모네는 '호수 딸린 일본식 정원'을 늘 갖고 싶어 했지만, 지베르니 집에는 호수가 없었어요. 여기서, 스케일 크고, 생활력 및 행동력 (자금 동원력!)이 남달랐던 알리스의 면모 가 드러납니다. "일본식 물의 정원? 거 하나 팝시다!" 알리스는 멀리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공사를 통해 모네가 설계한 물의 정원을 실현시켜 버립니다. (모네는 두 번째 부인 만나 팔자 고치고, 좋은 말년 보냈다 할 수 있어요~)

이 정도 연못은 파 줘야~아내의 지지로 가능했던 연못 정원
모네의 영감이 되었던 아름다운 지베르니.

이런 놀라운 여인이었지만, 아쉽게도 미술사는 모네의 가난하고 연약했던 첫 부인 '카뮈유'만 기억합니다. 그녀를 그린 모네의 유명작이 많았기 때문이죠. 두 번째 부인과 오래 함께 했던 모네였지만 알리스를 그린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모네는 어느 순간부터 인물화 보다 풍경화에 집중했지요.

이 집에 살았던 적 없는 카미유를 그린 그림들만....

장수했던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의지했던 형과의 관계도 틀어져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베르니의 강한 햇살과 푸르른 정원에서, 불후의 명작 '수련' 연작을 탄생시킵니다. 알리스는 백혈병으로 모네보다 15년 먼저 세상을 떠나지만, 장성한 그녀의 자녀들이 모네를 마지막까지 보살핍니다.


요절한 아름다운 첫사랑.. 연약하고 고왔던, 그래서 그림으로 남아 유명해진 카미유도 좋지만, 저는 모네에게 지베르니를 가능케 했던 알리스, 모네의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일구며, 그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생활력 넘치는 두 번째 부인 알리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지베르니에는 모네 가족묘도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뜨거운 여름, 시원한 가을도 모두 선명하고 아름다워요.

 프랑스 파리 여행 가시면, 투어 패키지를 통해 모네 마을 지베르니를 들러보세요. 프랑스 시골의 쨍한 햇빛과 그림 같은 일본풍 정원의 풍경, 정갈한 모네의 집을 둘러보면서, 그 모든 살림을 일구고 돌보았을 진정한 안주인. 모네의 뮤즈로 지 못했지만, 그러함에도 끝까지 남편 내조진심이었던 모네의 '찐 부인' 알리스를 떠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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