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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Sep 04. 2023

파리 입성-신분 상승인가 추락인가?

코로나와 정착 초기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파리

미국에서 유학생 부인으로 오랜 국제 독박육아를 하다 귀국한 저는 코로나가 한 창이던 2020년, 남편의 프랑스 국제기구로 발령으로 이번엔 유럽으로 떠납니다. 3년간 파리에서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 네 명의 엄마 & 주부이자, 외교관 신분을 가진 가족으로 살았답니다.

국제 이사, 그 찐한 중노동의 기억

방역 모범국을 떠나다

그 해 가을, 주재관 가족으로 프랑스 입국하자마자 봉쇄와 가을 방학 시작되어 등교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프랑스엔 계절마다 2주씩 방학이 있어요. 1달 반 수업, 2주 방학인 공포의 사이클!) 마루를 구르며 노는 네 명의 아이들 데리고 백 개가 넘는 박스들을 풀고 정리하면서 집에 갇혔지요.

 코로나가 한 창인 시절이었는데, 세계 최고 모범 방역국과 세계 최고 확산 증가국, 그 극과 극을 체험. 한국에서는 1일 '확진자' 100명 넘은 국난 극복하자며 명절도 건너 뛰었는데, 1일 '사망자'가 100명 넘던 프랑스에서는 "11세 이하 어린이들의 교내 마스크 착용 금지"라는 학교 규정을 보니 참 두 나라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이렇게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이렇게 팬티를 입는 것과 같다..는 경고문.

 프랑스 사람들은 마스크를 대충 써요. 턱스크는 애교. 코 밑으로 마스크를 살짝 내리기는 (콧구멍 노출) 흔하고, 마스크를 앞머리 올리는 헤어밴드로 이용한 아줌마, 팔에 토시처럼 건 아저씨도 보았죠. 전부 중국산 덴탈이거나 천 마스크라 허술한데, 길거리의 카페에는 그런 마스크도 없이 재잘대는 사람들로 가득했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프랜치들은 말도 많고, 파티, 모임도 많고, 저항정신 드높아 정부 말을 잘 안 따르니, 어쩌면 당시 프랑스의 코로나 대 유행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람들 가득 한 파리의 카페-코로나도 우리의 수다를 막을 수는 없다!

파리 정착 이야기

 주택 수요가 늘 공급을 초과하는 파리는 집값이 비싸서 방 3개 집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자녀 가정은 보통 파리 근교 '일드 프랑스 지역'에 사는데, 다행히 선임분의 집을 받아 파리 15구에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파리엔 1구 부터 20구가 있는데, 한인마트와 식당들이 밀집된 한인 거주지역은 15 구예요. 센 강변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은 한인 인기 거주지) 집 앞에 센 강이 흐르고 10분 걸어가면 에펠탑인 곳. ♡ '한강 지류천 뷰 아파트에도 살아보지 못한 내가 센강뷰 아파트라! 인생 역전이다!'


 파리는 원래도 도로가 좁은데, 차를 줄이려는 파리시의 노력으로, 자동차 도로가 자전거 도로로 바뀌고, 주차장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리시내 자동차 판매점에는 소형차들 뿐이죠. 6인 가족이라 큰 차가 필요했던 저희는 파리 밖으로 멀리 나가서 중고차를 구입해야 했어요.

저 앞에 센강... 감히 이런 곳에도 한번 살아봅니다.

 석회 있는 물이라 한국처럼 자연건조 하면, 냄비나 숟가락에 하얀 석회자국이 남아서 설거지 후 마른 수건으로 닦아줘야 해요. 검은 옷에도 석회가 묻어나, '검은 옷 전용 세제'도 따로 있죠. 욕실이나 변기도 석회제거가 필요한데, 전 그냥 석회와의 동거를 선택합니다. (종유석 생길 때까지 버텨보리!) 에어컨, 비데, 정수기, 도어록 없이 열쇠 들고 다니면서, 격일로 식수용 생수를 사서 들고와야 하는 일상이었습니다. (생수들에도 석회가 있긴 해요. 에비앙 조차!) 도시가스는 없고 거의 인덕션을 써요. 아름다운 파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문화재급이다 보니, 미관상, 건물 보호상의 이유로 실외기 설치가 금지되어 있어서 에어컨이 귀하고, 엘리베이터도 두 명 간신히 들어가는 초미니 사이즈인 경우가 많아요. 무엇보다 쿠*맨이 사라진 일상이 제일 큰 변화였어요. T.T


빵의 나라 입성

프랑스 온 것이 제일 실감 날 때는, 바게트랑 크루아상 같은 빵 먹을 때에요! 겉 바삭하고, 속 촉촉 끈적한 바게트도 맛 있고, 버터향 가득한 크루아상도 풍미가 훌륭하지만, 제게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건, '빵오쇼콜라'라는 초콜릿 크루아 상입니다. 유럽의 초콜릿은 코코아 매스를 다량 함유해서, 정말 진하고 맛있답니다. 가끔 여유되는 아침이면 집 근처 빵집에 가서 한국의 아메리카노에 해당하는 '카페 알롱제'와 '빵오쇼콜라'를 사 먹는 것이 저에겐 프랑스 살이의 특별한 기쁨이었어요. (몇 년 후 뱃살 보복으로 돌아왔지만...)

빵 오 쇼콜라와 에스프레소 한 잔... 파리 살이의 낙

경기도민에서 파리지앵으로

 전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불어를 읽지도 못하고 아는 단어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문맹'이 되어버린, 매우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못하는 무식한(?)외국인 아줌마 처지가 되었어요. 인터넷 설치, 학교 등록, 마트 회원 가입 까지 누군가의 도움 혹은 번역기가 필요했던 무능함 때문에 '자신감의 몰락'이 있었죠. 그 와중에, 프랑스어를 모르니, 영어가 통하면 뛸 듯이 기쁘고, 수지맞은 것 같고, 영어가 막 모국어 같고 그랬습니다. 남편도 프랑스 와서 영어랑 친밀 해졌다며 "불어에 비하면 쉬운 영어쯤이야~" 자신감 뿜뿜! 영어 울렁증 있으신 분들, 프랑스로 와요~!

심란한 사회상과 달리 심하게 아름다운 파리의 전경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씩씩하게 입성했지만, 말과 글의 제약으로 답답하고, 코로나 감염과, 아시안 혐오 범죄소식이 두려움을 주었어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주는 무능감과 외모의 확연한 차이에서 오는 인종적 위축감이 있었지만, "우리는 여기 국가 대표로 와 있는 거야!"라는 불타는 애국심 으로 무장하고, 용기 내어 당당하게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여섯 식구, 코리안 파리지앵으로 오늘부터 1일!

파리 아파트에 갇혀있던 그 해 가을날, 나를 반겨주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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