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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Sep 04. 2023

미국 적응과 다른 눈물의 프랑스 적응기

프랑스 유치원, 초등학교 적응과 학교 급식

저는 남편의 박사유학으로 인해 30대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답니다. 미국에서도 유학생이자 육아맘이였기 때문에 파리 정착과 미국 정착의 차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로 이주하여 아이 셋, 다른 세 학교 보내고 세 돌 막내를 9개월간 가정 보육하며 힘겨웠던 초기 정착기를 기억해 봅니다.


1. 둘째의 학교 적응-  높은 언어장벽

 외국인들이 많은 파리에는 국제 학교와 이중언어 학교들이 습니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이니 영국계 국제학교에 등록했어요. 미국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라 적응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둘째는 영어 국제학교보다 저렴한 이중언어 학교 (영어 반/불어 반)에 보냈어요. 하필, 등교 첫날이 불어날이라 불어 모르는 아이는 한순간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충격 상태가 되어, 학교 안 가겠다고 발버둥 칩니다. 선생님 친구들 모두 마스크를 쓰니 더 안 들리고, 종일 알 수 없는 잡음만 듣다가 오는 거죠. 독서시간에 책 펴놓고 그림만 보다가 잠이 드는 등 부적응 행동을 보이니, 일주일 만에 학교에서 편지가 옵니다. "일주일 지켜본 결과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S 양을 한 학년 낮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굴욕적으로 일주일 만에 한 학년 강등(?) 당한 첫 등교날, 아이는 목이 아프다며 안 가겠다고 합니다. 구십 노인 기침소리를 내며 할리우드 액션을 하는데 저도 여러모로 힘들어, "그래 오늘 하루 쉬자" 하고 아이 데리고 있었어요. 일부 한국 엄마들은 오기 전에 불어 공부도 시키고, 열혈 엄마는 불어 인강 한 바퀴 돌리고 와서 바로 불어 과외선생님 붙인다는데 전 밥만 먹었다네요. (사실 그것도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떠한 경로로든 이리저리 노출되는 영어와 달리, 생면부지의 언어인 불어로 인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프랑스 초창기는 미국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게 힘이 듭니다. 뭐라도 읽을 수 있고, 매우 기본 적인 말이 가능한 것과 아예 모르는 것의 큰 차이죠.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프랑스 유치원에 던져진 셋째는 일 년간 어두운 표정으로 학교를 다녔답니다. 학교에서 첫 학기는 말 한마디 안 했다고 해요. 날이 짧아서 어둑어둑한 차가운 겨울 아침, 학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애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 시절은 고난의 시간이었죠.

둘째 학교 등굣길 - 초등학교 5학년 까지는 등하교 동행을 해야 해요.

2. 프랑스 공립 유치원 - 유럽의 쓴 맛?

 셋째는 집 근처에 있는 초등 병설 프랑스 공립 유치원에 보냈어요. 한 반 스무 명 정도였고, 자기 나이끼리만 구성된 반도 있고, 만 3세부터 만 5세까지 섞여 있는 반도 있었어요. 문화 충격이 몇 개 있었는데, 일단 화장실이 남녀 공용인데 화장실 칸에 문이 없어요! 독서실 책상처럼 칸은 있는데 앞에 문이 안 달려 있어서 용변 보는 모습이 그대로 다 보여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남녀의 차이를 알려주는 교육인지.. 낮잠 시간엔 20명이 베개와 이불을 공유해요. 코로나 시국이 아니더라도, 개인 이불이랑 베개를 챙기고, 매주 빨아서 보내는 한국 엄마들은 기겁할 시스템이죠. 등교 첫날 가정통신문에는, "머릿니가 돌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 계절이면 유행하는 머릿니를 가정에서 잘 관리해 주세요"라고.... 학교만 관리하면 될 것 같은데.. 머릿니라뇨.(*.*);


프랑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많은 일을 맡으셔서, 담임보다 교장선생님 볼 일이 많아요. 새로 전학 가면 교장선생님과 만나, 그분이 학교를 소개하고, 전학 절차를 진행해요. 학기 중 전달 사항, 연락 사항들은 교장 선생님이 메일을 보내시고 아침마다 교문에도 꼭 서 계세요. 어떤 결정 사항이나 갈등 중재도 전부 교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교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담임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한국의 초중등 학부모 시절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스 초등학교의 교문. 아침, 점심, 하교 시간에만 잠깐씩 열려요.

주 1회 아침에 부모가 교실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어느 날 데려다주고 나오려니 아이가 혼자 눈물 주르륵... 옆에 있던 보조 샘이 뭐라고 한 마디 하시더니 휴지 한 장 주고 가버리셨어요. 너무나 맘이 아팠지만 불어 안 되는 제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토닥여주고 나왔어요. 발길이 안 떨어져 밖에서 바라보았는데, 친구, 선생님들 누구 하나 신경 안 쓰더라고요. 아이는 혼자 눈물을 닦으며 견딥니다.

주변 한국애들도 거진 다 현지 학교 싫어하긴 마찬가지... 미국에 살 때 기억해 보면 영어가 안되더라도 학교를 싫어하는 애들은 잘 없었거든요. 일단, 미국학교 선생님들은 오버스럽게 밝고 친절하고 또 무슨 day 이 무슨 day 하면서 행사가 계속 있어서, 과자 사탕 먹으면서 놀 기회가 많아요. 반면에 프랑스와 유럽 계열 학교들은 유구한 전통에 걸맞게 다소 엄격하고, 스스로를 알아서 챙기는 학생 자주성에 기반을 둔다고 해요. 프랑스어가 워낙 변형이나 연음이 많아 자연스럽게 빨리 익히기 어려운 이유도 있는 것 같고요.

홀로 눈물을 닦던 셋째는 결국 친구 없이 외로운 한 해를 보냈어요.

3.  훌륭한 급식 vs 도시락 노동

 냉동식품 돌려 막기 대향연이라는 평가를 받는 부실한 미국 급식과 달리, 프랑스 학교 급식은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유치원부터 급식이 전식-본식-후식 세 코스로 나와요. 물론 레스토랑처럼 화려한 플레이팅은 아니지만, 어쨌든 쓰리 코스가 기본입니다. 한국처럼 전면 무상급식은 아니고 소득분위에 따라 내는 금액이 달라요. 어떤 아이들은 1유로, 또 어떤 아이들은 같은 급식을 10유로 내고 먹습니다. 이 같은 차등 교육비 납부는 방과 후 활동 및 기타 다른 나라에서 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적용돼요."많이 벌면 많이 낸다." 이게 대 원칙인 사회더라고요.

시에서 관리하는 국공립의 급식은 괜찮지만, 사립학교나 국제학교의 급식은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일부 사립학교의 경우, 급식비가 차등 없이 한 끼에 10유로(14000원)에 이르는데, 급식 만족도는 높지 않아서 도시락을 싸 가는 학생들도 많아요.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도시락을 싸 보내도, '점심 관리비'를 내야 한다는 점! 프랑스 학교의 점심시간은 1시간 반 정도인데, 그 시간 동안 아이를 관리 감독 해 주는 비용이 학교 급식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가더라도, 급식비의 35% 정도의 비용이 청구됩니다. 아예 돈을 안 내고 싶으면, 점심시간에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가 1시간 반 후에 다시 등교시키면 돼요. (충격적인 시스템이죠?ㅋ) 고등학교 정도 되면, 국제학교나 사립학교의 경우, 아이들이 도시락을 안 싸가고 그냥 나가서 사 먹는 경우도 빈번해요.


다자녀 가정이라 급식비 부담도 컸던 저는, 한식파인 남편의 도시락을 포함해서 3년간 매일 세 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습니다. 전 국민 무상 급식 천국인 한국에서 도시락을 아침마다 싸는 주부가 있을까요? 저녁마다 쌓이는 도시락 설거지 드높고, 겨울이면 보온 도시락, 여름이면 아이스팩까지... 프랑스 주부 살이의 귀찮았던 두 축은 '등하교 노동과 도시락 노동'이었답니다. 일부 외동 엄마들은 밥에 눈, 코, 입도 만들고, 소시지 잘라서 문어 만드는 그런 깨알 재미 도시락도 싸 보내 긴 하지만, 다자녀 맘인 저는 방심하다가 한 아이에게 밥 두 개, 한 아이에게 반찬 두 개를 넣어 보내기도 했답니다.

프랑스 공립학교는 급식이 나오지만, 국제학교의 경우 비싸기도 하고 아이들이 싫어하기도 해서 도시락 싸는 경우 많아요.

코로나 시절, 전염병 창궐한 땅에서 프랑스어의 장벽에 막힌 아이들을 다독이고 전가족 삼시 세끼 도시락 노동의 무게를 견디면서, "얘들아, 내일은 오늘 보다 나을 거야!" 외치며 씩씩한 정신 승리 행보를 이어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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