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생 커뮤니티에선 유명한 말이 있죠. 남편이 박사 과정이면 부인은 박살 과정이라는!길고 어렵고 스트레스 많은데 돈은 쪼들리는 험난한 박살 과정을 마치고 신분 세탁에 성공해 드디어 '주재원 부인'이 되었으나, 난 네아이의엄마! 하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로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세 돌 된 막내 아이를 종일 데리고 있던 프랑스 첫 1년은 미국이 다시금 펼쳐지는 데자뷔 기간이었습니다. 간편식, 조리식, 배달 및 반찬 가게가 발달한 한국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해야 하는 외국에서의 주부일상은 '장보고 밥하고 치우기'로 점철되는데, 외국에서 한식 해 먹고살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 금전이 들어갑니다.
생선+껍질콩. 버터. 소금. 후추. 허브 오븐요리... 느끼하다고 괄시당함. 결국 돌아온 그 자리엔 한식만이....
프랑스의 마트들
파리는 좁디좁은 도로, 주차 공간은 그냥 없다고 보면 되는 상가와 건물들이 특징이에요. 외곽에 있는 코스트 코나 차 타고 가야 하는 대형 마트 몇 곳 빼고는 거의 집 근처 슈퍼에서 조금씩 장을 보는 게 일상이에요. '샤리오'라고 불리는 장바구니를 너도 나도 들고 다닙니다. 전 가족 먹을 음식을 제가 다 해야 하니, 거의 매일 장을 봤어요. 미국 마트에는 통조림이나 박스포장, 포장, 가공육등 식품 공장을 거진 음식들이 대부분인데, 프랑스 마트엔 야채, 과일 같은 신선식품이 많고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먹거리에 신경 많이 쓰는 파리지앵들은 한 곳에서 장을 보기 보다, 고기는 정육점, 치즈는 치즈가게, 와인은 와인전문점, 야채 과일은 직거래 장터등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하는 전문 구입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프랑스에선 동네마다 요일별로 장터가 꼭 열리는데, 가장 프랑스적이며, 가장 신선한 식재료의 구입이 가능한 곳이랍니다.
초창기엔 샤리오가 없어서 짐수레를 끌고 장 보러 다녔죠.
프랑스 와서 놀라웠던 것은 '냉동식품'의 품질이었어요.냉동식품이 질 떨어지는 싸구려가 절대 아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마냥,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인들은 신선한 재료를 바로 급속 냉동해서 공급하는 훌륭한 냉동식품 라인을 만들어 냈더라고요. '냉동식품'만 파는 전문 가게 [Picard]라는 곳이 있는데, 냉동 디저트, 피자, 해산물, 야채, 과일. 빵까지꽤 품질이 좋아서 애용했답니다. 냉동 피자나 냉동 크루아상이 파는 피자나 크루아상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괜찮군!' 할 정도의 만족을 주고, 아이스크림 라인은 매우 훌륭하답니다. 뼈 발라낸 고등어를 포함해서 해산물류가 다양해서 한식 요리에도 좋았고, 가을 & 겨울엔 냉동 밤도 나와서 계절상품으로 쌓아두곤 했지요. Picard가 없었으면 도시락 싸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신선해 보이는 라비올리 파스타
사실은 소스 빼고 다 냉동 식재료로 만든 것!
2. 유제품, 와인 그리고 빵
프랑스에서 먹으면 좋은 대표적인 세 가지는 '유제품, 와인 그리고 빵'이죠. 버터나 요구르트는 유지방 함량이 높은 아주 깊고 진한 맛이고, 브랜드나 종류도 참 많아요. 와인은 종류와 수량의 규모가 말할 것도 없고, 대형 마트의 와인 코너가 거의 신선식품 코너만큼 크기도 하고, 백화점 식품관 지하 전층이 와인만 취급하는 등 프랑스 인들의 식생활에 와인은 정말중요해요. (코로나 때 필수 업종 외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는데, 와인 판매점은 국민 필수 상점으로 구분되어 문을 열었다는!) 제가 보기엔, 프랑스 식탁에서 와인은 우리의 김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느끼한 음식들을 와인발로 중화하고 소화해 내는 그런 느낌이에요.
끝없이 펼쳐진 치즈의 세계! 몰라서 못 사 먹는... 모험과 신비의 세계
빵은 신선하고 맛있어요. 그런데 블랑제리(빵집)에 가보면 한국 빵집에 비해 종류가 별로 없어요. 바게트나 크루아상, 페이스트리랑 타르트와 덩어리 진 신선한 전통 빵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인이 즐겨 먹는 식빵류는 슈퍼마켓에서공장빵을 사요. 점심시간에는 다양한 바게트 샌드위치들과 샐러드를 사러 빵집마다 줄이 길지요. 프랑스 와보니, 한국 제과점 사장님들이 진짜 고생하시는구나 싶어요. (구운 빵 말고, 튀긴 빵도 많이 파는 한국 빵집!) 프랑스엔 한국에서 먹는 생일용동그란 생크림 케이크가 없었어요! 디저트 빵류는 작은 타르트가 많고, 케이크라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티라미수이거나 길쭉한 롤 케이크 모양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여기 있는 일본 빵집이나 한국 빵집에 가서 생크림 케이크를 주문해서 먹더라고요.
프랑스 타르트류, 과일 파이류- 너무 달아서 커피 없으면 다 못 먹어요.
프랑스 디저트들은 그 모양과 색감이 곱고 이쁘고 화려하죠. 크램 브랠리 정도는 괜찮지만, 다른 디저트류들은 솔직히 한국인 입맛에 너무 달아요. 프랑스 제과에서 설탕을 15% 줄인 것이 일본제과, 일본 거에서 또 설탕을 10% 줄인 것이 한국 제과라고 해요. 흔한 우리나라의 디저트 리뷰가 "너무 달지 않고 맛있어요."잖아요.. ^^ 단짠은 몰라도 막 달기만 한 건 싫어하는 우리 민족이죠.
안타깝게도 치즈 싫어하고, 술안 마시는 남편으로 인해 프랑스 식도락의 1/3은 날아가버렸고... 혼자서 이런 치즈 저런 치즈 조금씩 사 보지만, 부엌 구석에 앉아 혼자 조금씩 맛보는 치즈들은 솔직히 재미없네요. 치즈 종류가 참 많은데, 몰라서 못 사 먹어요. 잘 알려진 모차렐라나 브라타, 에멘탈, 체다 뭐 이런 류만 사 먹다가 꽁떼라는 치즈를 알게 되어 가끔 사 먹었어요. 염소치즈나 블루치즈, 까망베르같은 냄새 강한 치즈들은 가족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니 저도 외면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제과중 하나인 에끌에흐. 대형 사이즈로 유명한 곳
3. 모든 식재료는 김치로 통한다.
치즈, 빵 디저트 다 좋은데 결국 우리 대한 사람들은 대한 음식으로 귀결하게 되어있어요. 처음엔 샌드위치며 파스타며 다양하게 현지식흉내 내 보지만, 결국 남편과 가족들은 두부 된장찌개와 김치전에 제일 열광하죠.
격주로 김치를 담는 파리의 한인 주부. 사 먹는 김치는 비싸요.
다른 반찬들이 없어서 그런지, 외국 오면 김치의 몸값이 급부상합니다. 시댁 친정 있는 한국에선 배추부터 시작해서 김치 담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프랑스 오자마자 격주로 조금씩 담아먹어요. 배추 알맞게 저리는 게 의외로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비싼 종갓집 김치는 사 오면 맛있다고 이틀 만에 클리어하니, 제가 담아야 좀 오래 먹지요. 맛보다 길이로 승부하는 프랑스 무 사진갑니다. 하나 사면 바람 들 때까지 먹고 또 먹는 프랑스 무! 맛없어서 오래가는 내 김치 같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