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롬 Feb 18. 2024

문득 한국이 그리울 때

유럽에서 병원 가기

저서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 북토크를 2번 했었다. 처음은 오프라인, 두 번째는 온라인. 그때 비슷한 결의 질문을 꽤 받았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한국보다 해외에 살면 좋은 점이 뭔가요?



저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이에 대해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제한적이다. 일단 자유로움. 눈치 안 봐도 되는 것, 그러니까 자유로움. 어떤 식으로든 속박되기 마련인 '결혼'을 했지만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둘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 다양한 세상 경험을 한다는 것, 결국 거진 다 자유로움으로 귀결되는 애매모호한 것들 뿐. 사실이 그렇다. 아무리 '헬조선'이라고 한들 아무래도 한국이 살기에 좋고, 몸이 편한 곳임은 부정하기 어려우니.



특히 아플 때, 한국이 아른거린다. 우리가 아일랜드에 살 때, 남편은 일하다가 손가락을 깊게 벤 적이 있었는데, 당장 응급실에 자리가 없고 예약을 해야 한대서 다음날까지도 손가락을 부여잡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어떤 공포가 자리 잡았고, 웬만하면 해외에서 병원에 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도 페낭에 살 때 나는 무려 대상포진에 걸렸다. 대중교통이 시원치 않아 매번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니면서도, 매번 최소 40분은 기다려야 했던 그때. 내 고향 한국이 아른아른했었다.



그리고 현재 유럽. 폴란드살이 5개월 차, 잔병치레가 많은 나답게 벌써 몇 번이나 병원에 갔다. 독감인가 의심할 정도로 심했던 감기와 그 후유증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병원 갈 때는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무작정 방문하면 진료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아 이런, 감기인 것 같으니 가서 지금 당장 진료받고 주사 한 방 맞고 오자'가 안 된다는 말이다.



Unsplash, Zohre Nemati



각 나라마다 의료 예약 시스템은 천차만별일 텐데, 우리가 사는 폴란드의 경우 먼저 공립 병원과 사립 병원으로 나눌 수 있다. 세금을 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립 병원은 대부분의 진료가 무료이지만, 대기가 매우 길고 의료서비스와 시설의 질이 다소 낮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사립병원은 자신이 속한 의료보험사(Luxmed, Medicover 등)에서 운영하는 병원만 이용가능한데, 보장되는 범위 내로는 무료이며 예약 시간에 맞춰 간다면 대기도 거의 없는 편.



우리 부부는 Medicover 보험사. 각 보험사마다 어플이 있을 것이다. 어플로 쉽게 지점별, 항목별 예약이 가능하고 고객센터와 연결하면 응급실 예약도 된다. 예약까지는 쉽다. 예약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까진 무난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다. 핀란드 여행을 앞둔 1월 초, 나는 호흡 문제로 인해 혼자 폐렴을 의심하며 엑스레이를 찍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진료를 보러 갔다. 나는 당연히 그날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드리니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라 하셨다. 당장 가라는 것은 아니었고, 엑스레이 예약을 할 수 있는 'Refferal'을 주셨다. 그리고 엑스레이 일자는 따로 예약을 해야 한다고.



그 레퍼럴을 들고 리셉션에 예약 문의를 하러 갔다. 단순한 흉부 엑스레이라 가능한 일시는 많았지만, 그것을 찍은 뒤 봐야 하는 의사 선생님은 또 다른 분이시다. 그분을 뵙고, 만약 이상이 있다면 원래 진료 봤던 오늘의 선생님 예약을 다시 잡아야 한다. 참으로 복잡하다. "지금 비타민 링거 맞고 갈 수 있을까요?" 같은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할 시스템. (결국 어찌어찌 엑스레이는 찍었고, 폐렴은커녕 단순한 감기 후유증이었다 헤헤. 역시 난 엄살이 심하다.)



속박과 구속에 진저리 치는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이렇게 해외에서 사는 일상은 대부분 좋지만, 문득 나의 고향 한국이 그리울 때는 역시 이럴 때다. 아플 때. 몸이 으슬으슬할 때. 바로 네이버 지도로 가까운 병원을 검색한 뒤, 워크인으로 가서 대충 인적사항만 적고 바로 의사 선생님을 뵙고 싶을 때. 왠지 잠이 잘 오는 1인용 병원 침대에 누워서 비타민 링거를 맞고 싶을 때. 해외에서 사는 것을 선택한 이상, 이것 또한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것. 그래서 한국에 갔다 때는, 상비약을 두둑하게 챙겨 온다.



글을 쓰는 지금도 한국이 그립다. 목감기에 걸린 탓이다. 나와 남편 둘 다 걸린 탓에 이번 주말은 골골대는 2인 가구의 일상이 되었다. 심플하게 주사를 맞으러 가는 것이 안 되니 그저 따뜻한 죽을 먹고, 약을 먹고, 영화를 보다가 서로를 보듬으며 푹 자는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남편과 장을 보러가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