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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Jan 10. 2024

남편은 결혼반지를 빼지 않는다.

새벽 2시, 잠에서 깼다. 난 평소 잠에 쉽게 들지도 못하고 깊게 자지도 못해 항상 다크서클이 있는 편. 반면 옆에 있는 남편은 베개에 머리를 댔다 하면 바로 잠들고 새벽에서 내가 흔들지 않는 이상 잘 깨지 않는다. 어제도 그랬다. 핀란드의 어느 호텔에서 번뜩 깨버린 나는 문득 '내일 아침에 또 피곤하겠지' 같은 생각을 하다 남편을 봤다. 한쪽 팔로 눈을 가린 채 자는 습관이 있는 남편. 그렇게 넘어와 있는 그의 왼쪽 손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그의 손에 있는 결혼반지가 보였다. 자면서도 끼고 있다니. 액세서리가 주는 갑갑함에 거의 맨몸으로 다니는 나는, 손가락이 답답하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부터 들었다. 결혼반지 또한 집에 오면 나는 재빠르게 빼놓는 편이지만 남편은 아니다. 요리할 때와 근력운동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끼고 있는 그. 어째 손가락이 갈수록 굵어져 5년 전에 맞춘 결혼반지가 다소 꽉 맞아 보이는데도, 늘. 마치 타투처럼.



얼마 전에는 남편이 아침에 요리하며 잠깐 빼놓은 반지를 까먹고 출근을 했는데, 회사에 도착해서는 약간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더라. 내 반지 좀 챙겨놔 줘! 싱크대 앞쪽에 있어. 별일 아니니 심드렁하게 답장을 보냈다. 웅. 그러자 남편은 내가 못 미더운지 확실하게 챙겨달라며 재차 확인했다. 그러니 결국 내 것도 같이 찾아서 라디에이터 위에 고이 모셔둘 수밖에.



평소 남편의 행실로 보아 결혼반지를 애지중지하는 것쯤이야,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에게 결혼반지가 소중하고, 내가 소중하며 우리의 결혼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는 매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 꽤 자주 반지를 집에 놓고 외출하는 와이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도, '앗 까먹었다' 라며 멋쩍게 웃으면 귀엽게 그르렁거리는 것도. 그게 마치 저를 보호해 주는 부적인 양 제법 많은 신경을 쓰는 것도. 그 한 쌍의 나머지 한 쪽을 가진 나의 입장에서는 그저 뿌듯할 뿐이다.



2023.11. 노르웨이, 오슬로 토르프 공항 가는 길





"나중에 꼭 비싼 걸로 또 맞추자."

만으로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결혼해 돈도 없었는데 굳이 내 반지에만 조그만 보석을 박아주면서 남편이 했던 말.



비싼 반지가 다 뭐야. 그런 거 필요 없어. 출근은 본인이 하면서 늦잠 자는 부인을 위해 아침밥을 해놓고 잘 챙겨 먹으라며 이마에 뽀뽀하고 가는데. 달에 꼭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 데리고 가고, 내가 술을 마시다가 뜨끈한 것이 생각나 우물쭈물하면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도 바로 된장죽을 끓여주는데. 무뚝뚝해 연락도 잘 안 하는 딸내미 걱정할 우리 엄마아빠한테 나보다도 더 자주 전화드려 안부를 대신 전해주고,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수입이 시원찮은 나에게 넌 그냥 너 좋은 것만 하고 살라고 매일같이 말해주는데. 대체 비싼 반지 따위가 왜 필요하겠어.



내가 남편에게 평생 재밌게 살게 해주겠다며 제주도 어느 동네에서 청혼을 할 때, 선물 겸 뇌물로 준 시계가 하나 있다. 20대 어린애가 차마 비싼 브랜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어 고른, 프러포즈 선물로는 가당치도 않게 저렴했던 그 시계. 5년 전의 남편은 그걸 울면서 받았고, 서른이 된 지금도 거의 매일 차고 다닌다. 솔직히 우리 나이대 직장인 남성이 차고 다니기엔 주변 시선이 의식될 법도 한데,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니 어쩐지 더 미안하기도.



결혼반지만큼이나 금이야 옥이야 그 시계를 어루만지는 그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눈물이 반쯤 차오른다. 그러니 내가 얼른 성공해서 파텍필립을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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