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롬 Feb 28. 2024

배우자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

내 나이 만 서른, 결혼 5년 차에야 문득 깨달았다.

배우자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음을.

남편은 매일 하고 있고, 나는 매일 실패하는 그것

이는 나와 남편의 대화에서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나: 아, 갑자기 수제버거 먹고 싶다.
남편: 내일 집 앞에 가볼까? 거기 맛있대.
나: 다음 달에 베를린이랑 옆 도시 갈까.
남편: 좋아! 휴가 써서 길게? 기차표 보자.
나: 손목 또 슬슬 아프네. 버티컬 마우스 살까.
남편: 괜찮아? 버티컬 마우스 지금 주문하자.
이 제품 보면 컬러가 화이트, 블랙, 베이지인데···


그래. 당장 찾아보자. 오잉, 넌 예쁘잖아. 좋아.

나의 어떤 말에도 그의 대답은 이 범주 안이다.

"공무원 그만두고 해외로 가서 살래?"라는 말에도

"그래, 좋아. 일단 계획을 먼저 세우자."고 했으니.


외모로 따지면 훤칠한 남편에게 한참 기우는데도

"나 30대 되니 왠지 훅 가는 것 같아···"라는 말에

"뭔 소리야! 너는 완전 여신이야. 존예야!"라 한다.

얼토당토 하지 않아도, 어째 슬며시 웃음은 난다.




반면 나는 이런다.


남편: 나 뱃살 좀 나온 것 같아?
나: 흠. 우리 나이엔 관리 좀 해야겠지 아무래도
남편: 흥(새침하게 흘겨보기)
남편: 아, 배불러. 근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ㅎ
나: 이틀 전에도 먹었잖아. 참고, 다음에 먹자.
남편: 넴...
남편: 나 운동용 이어폰 싼 거 하나 사도 되에?
나: 일단 담아놓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남편: 웅... 근데 이거 할인 이번주까진데...
나: 아니야. 할인은 계속 돌아와. 걱정 마.


우리 부부의 대화만 잠깐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무슨 말을 해도 긍정의 답을 얻고,

남편은 웬만하면 유한 답을 듣기 어렵다.


차가워 보이는 내 말의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남편이 튀김을 맘 놓고 먹을 걱정에 단호해지고

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 걸릴까 후식을 말리고

그의 소비가 충동적일까 결제를 늦추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다.

상황이 반대라면 매일 어떤 마음일지.


나의 어떤 말에도 심드렁해하지 않고,

나의 어떤 말에도 고개를 내젓지 않는

그런 남편이 아니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이렇게까지 안정과 평화를 매일 느꼈을까.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크게 애정이 없는 타인을 대하는 것처럼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던지듯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 쉬운 것을 남편에겐 못한다.


남편이라고 제 아내에게 잔소리할 것이 없을까.

지혜로운 그보다 천방지축 내가 더 문제인데,

어제도 술을 마셨는데 오늘도 마시겠다고 하면

그는 아내의 건강상태가 염려되어 말릴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러지 않는다.

그는 알고 있다. 아내가 과음은 하지 않음을.

제 아내는 제 몸을 걱정하는 30대 성인이니.

그러니 굳이 한숨 쉬며 술 좀 줄이라 할 필요도

굳이 NO라고 해서 기분 상하게 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30대 성인이다.

내가 굳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 않아도

그는 그 본인의 건강을 신경 쓰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의 배우자인 내 역할은 단순하다.

그저 볼을 쓰다듬으며 그래. 먹자,라고 하면 된다.

배우자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이렇게 쉽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잊는다. 그 쉬운 일을 자꾸 못한다.




나는 이따금씩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만 서른에 결혼 5년 차가 된 보통의 아줌마.

나 혼자만 두고 본다면 그럴 이유가 없는데

지금 느끼는 이 안정과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시 옆에 있는 남편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제 아내의 말을 듣다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래! 진행시켜! 하는.

그래서 어떤 말이든, 무슨 계획이든 편히 하게 만드는.


이 버석한 세상에서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미친 계획을 세워도 경청해 주는 배우자

쉽다, 쉽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일들을,

10년 동안 우직하게도 하는 나의 퍼스널 치어리더.


이러니 나는 덕질할 수밖에 없다.

나의 결혼, 나의 남편.

그래서 매일 쓴다. 남편 덕질 일기.



@사진 Unsplash, Aleksandr Popov



이전 12화 왜 남편은 선크림을 5분 전에 바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