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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May 22. 2024

너는 남편복이 있네

사람은 저마다의 복이 있다.

나의 경우, 그것이 '인복'이다.


재물복도 외모복도 일복도 기타 다른 복도 없는 것 같지만, 인복만큼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뚜렷하게 느낀다. 평범하디 평범하지만, 분명 인복만큼은 가득한 인생임을.


사람 때문에 속 썩은 적이 거의 없고, 오히려 늘 사람 덕분에 어떤 고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타고나길 무뚝뚝하게 태어났지만, 점점 사랑이라는 것이 많아졌다. 친구들은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한다. 본래 음침한 성격이었지만, 인복이 좋은 탓에 살면서 그렇게 바뀌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거대한 복이 있다. 남편이다. 남편복이 어마어마한 인생. 이 인복의 정점은 바로 이 남자였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를 알아채진 못했다.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니 이만한 반려를 만난 건 당연하다, 콧대 세우며 살았다. 그건 단단한 착각이었다.


결혼을 하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내가 0.1프로의 결혼을 했음을.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불운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상황은 여느 결혼 생활들과 다름없다. 돈은 늘 부족하고, 커리어도 지지부진하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행 같은 사건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나를 먼저 안아 다독이는 남편 덕분이다.


출장 가는 남편


무려 10년이다. 

심지어 우린 애착인형들처럼 붙어있는 성향인지라 거의 매일을 함께 지냈다. 솔직히 인간이라면, 지긋지긋할 때도 됐다. 얼굴, 몸, 머리카락, 습관, 성격. 서로의 모든 것이 익숙하니. 장난으로라도 상처 주는 말을 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외모 지적을 할 수도 있다. 오래 본 사이고 또 쉽게 헤어질 수도 없는 사이니, 완전한 타인에게 하는 것보다는 대충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다. 가끔은 동태눈을 하고,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너 운동 좀 해야겠다는 말도 고민 없이 뱉어버린다.



하지만 내 남편은 어떤가. 

일단 눈빛부터 다르다. 결혼 5년 차 유부남의 눈빛이라기엔 너무나 반짝인다. 밥을 먹을 땐 밥만 먹어야 한다는 내 오랜 신념이 그로부터 깨졌다. 와구와구 밥 잘 먹는 손주를 보는 할머니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어색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또 와구와구 먹으면 남편은 흐흐 웃는다. 분명 남편이 차려준 집밥을 먹고 있는데 '피자 먹고 싶다'라는 되도 않는 말을 해도 바로 지금 주문하자며 검색한다. 모든 것에서 그렇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는 못 한다.



나이 서른에 유럽에 산다. 

별 다른 재능도, 능력도, 커리어도 없지만 큰 걱정 없이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고 있다. 역시 남편 덕이다. 뜬구름 잡는 말로 '나는 노트북만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방랑자의 삶을 살고 싶어!'라고 했더니 남편은 '못 말린다, 정말'이라고 했다. 부모님과 기타 지인들처럼 '대책 없다, 철없다, 무책임하다'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못 말리는 짱구를 보듯 슬슬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래. 그게 정 네가 원하는 거라면 우리 같이 해보자. 단, 실현 가능한 방법을 더 찾아보자. 솔직히 지금은 조금 이상적이야.'



 너는 남편복이 있네 


언젠가 유명한 절에 신년운을 점치러 간 적이 있다. 막상 올해 운은 별 말을 듣지 못했지만, 그분은 이 말을 강하게 하셨다. 너는 남편복이 있네. 자세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나는 남편복이 있다 했다. 미혼의 20대였던 나는 허허 웃고 넘겼다. 남편복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지 않나, 하면서. 그런데 이제는 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운들 중에서도 상위를 차지하는 것이 배우자복임을. 그러니까 나는 천운이다.


      




휴.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다롬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브런치북 열심히 썼는데요,

발행을 한 번 놓치니 왠지 못 쓰겠더라고요..헤헤


블로그에는 거의 매일 일상 기록을 하고 있었지만

브런치는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하려고요!


앞으로 브런치에는 여행, 해외생활 다 빼고

오로지 결혼! 남편! 부부! 글만 쓸 예정이에요.

블로그에 '해외살이' 밀리로드에 '술'을 쓰고 있으니

아끼는 브런치에는 가장 애정하는 결혼만 써보려고요 :)


제 노트북 메모지에는 <남편 글감>이 있어요.

매일 최소 하나씩은 소재거리가 추가되는데요,

브런치에 차곡차곡 풀어 쌓을 예정입니다 홀홀


육십억 지구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난 건 행운이죠.

백년해로할 배우자를 만나는 건 천운이고요.

전 운 좋게도 그 천운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대체로 말랑하지만 또 현실적인! 결혼을 써볼게요.


늘 응원해 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브런치에서 자주 뵐게요 :)


+사정상 브런치 글 몇몇 개를 비공개해야 하는데

브런치북에 포함된 건 개별 비공개가 안 되더군요. 

결국 눈물을 훔치며 브런치북을 삭제했습니다...

앞으로는 브런치북 말고, 비정기적 단편글을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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