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막 거창하지는 않고,
그냥 살짝 웃음이 나는 그런 순간들.
그건 역시, 오늘 아침에도 있었다.
유럽의 집은 대부분 도어락 대신 열쇠를 사용하는데 그건 우리 집도 마찬가지. 새벽 6시, 같이 공복 운동을 다녀와서는 씻고, 나는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전날에 잠을 몇 시간 못 잔 터라 어쩔 수 없었던 일. 남편은 그 사이 출근 준비를 마쳤다. 남편이 현관을 나설 때까지는 깨어있으려 했는데 누워있다 보니 잠들어버렸고, 남편이 이제 출근한다며 뽀뽀하러 왔을 때 살짝 깼다.
"나 다녀올게. 더 자, 더 자."
남편은 열쇠를 찰랑 들고 문을 나서서는,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근다. 현관 바로 옆이 침실이기에 그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데, 그 열쇠 돌리는 소리가 은근히 듣기 좋다. 문을 잠근 뒤에는 확인한다. 덜컥 덜컥. 문이 잘 잠겼는지 손잡이를 두어 번쯤 당겨 보는 소리. 그건 나도 하는 것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5초쯤 뒤에 또 들린다. 덜컥. 이건 그 소리다. 남편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놓고 다시 돌아와서 한번 더 확인하는 소리.
살짝 깬 상태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는 웃음이 났다. 항상 문 잘 잠그고, 밥 꼭꼭 잘 챙겨 먹고 있으라는 남편의 얼굴과 겹쳐 보여서. 내가 하루 중 나가는 곳이라고는 고작 동네 카페가 전부인데 말이다. '연락이 끊기면 죽는다' 미션을 받은 듯 늘 연락하는 남편. 원래 아침을 그냥 넘기는 터라 공복에 커피를 마시러 가는 날이 잦은데, 그렇다고 하면 남편은 그런다. 배 안 고파? 거기서 뭐라도 좀 먹어야지. 집에 가서 좀 쉬어.
난 만으로 서른이고, 지금껏 총 28개국 51도시를 여행한 아줌마다. 밥 챙겨 먹으라는 말은 이제 우리 엄마한테서도 잘 듣지 못한다. 나는 그걸, 동갑내기 남편에게서 매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한다. '아, 얘 진짜 못 말려. 근데 기분은 좋네.' 매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아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은 사실 별 게 아니다. 특히 결혼에서는. 그저 이런 작고, 아주 소소한 일상들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렇다. 오히려 작은 것들이 더 잔잔히, 오래 남는 것도 같다. 풍성한 꽃다발에 반짝이는 값비싼 선물 따위 중요치 않다.
남편 출근하는데 코롱코롱 자는 아내가 안전하게끔 현관문을 몇 번이나 체크하고, 혹시 굶고 있지는 않은지 매번 확인하며, 저녁에는 퇴근하고 온 본인이 더 피곤할 텐데 집에 있던 아내의 고단함을 먼저 챙겨주는, 그래서 굳이 또 발마사지를 해주는 그런 행동들로 느낀다. 나는 지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정말 아주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