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있던 진도를 밀어붙인 탓에 쌍꺼풀이 맺혀있는 게 안쓰러워 모른 체 그렇다고 대답해준다.
"큰가요?"
"크지."
"꽃도 많나요?"
"그럼."
"선생님이 물 주고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자기들이 알아서 해."
"선생님은요?"
"난 심었잖아."
아이는 명확하지 않은 대답들에 대해 스스로 지치거나 납득할 때까지 재차 묻는 습관이 있다.
"심고 나면 물 안 줘도 돼요?"
"야생화니까."
"그러다 죽으면요?"
"나보다 오래 살걸?"
오래 산다는 건 정확히 몇 년일까 표정으로 계산해보더니 이내 다시 묻는다.
"그럼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예요?"
"너희들 가르치고 있잖아."
"꽃은 어떻게 하고요?"
"포크레인 부를 거야."
대답 앞에 '이번 달 월급으로'라는 말을 생략했다.
"포크레인으로 물주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러면 왜 불러요?"
기분전환으로 시작했던 대화가 길어질까 봐 잠깐 고민한다.
경험 상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한 번에 쭉 대답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애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개로 나뉜다.
알아들은 척하거나 흥미를 잃거나-
"산은 경사가 있어서 물이 잘 안모이는데 몇 군데만 지형을 바꿔주면 물이 잘 모이거든. 그러면 꽃이 더 잘 자라. 근데 땅 속에 나무뿌리나 자갈이 많아서 내가 직접 삽 들고 설치는 것 보다 포크레인이 한번 들어오는 게 훨씬 나아. 내가 일주일 일하는 것보다 5.5톤 포크레인이 들어와서 10분 일하는 게 더 빠를 정도야. 그러면 당연히 포크레인이 와야겠지?"
"네."
일단 대답부터 해놓고 아이는 자기가 무슨 말에 대답한 건지 생각해본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밥 먹으려고 쌀농사를 지을까 아니면 일해서 번 돈으로 쌀을 살까?"
"당연히 사 먹죠."
"그래서 나도 너희 가르치고 있는 거야."
"아 이해했어요."
우주의 신비를 푼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눈이 맑아졌다.
-때가 됐다.
"자 이제 나 좀 도와줄래?"
"어떤 거요?"
"다시 일해야지. 페이지 넘어가자."
아이의 눈이 다시 힘을 잃었다.
농장에 처음 포크레인을 불렀던 날을 기억한다.
바가지-포크레인에 달린 삽을 이렇게 부른다-가 바닥을 긁자 내가 4일 동안 만들어놨던 수로의 3배 정도 되는 물길이 열렸다.
내 가슴 한편이 휑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그 수로를 어떻게 만들었었는데....'
그 육중한 기계 팔은 계절보다 더 차갑게 내 마음속을 헤집고 있었다.
파헤쳐지던 땅 속에서 바위가 나오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고생 좀 하겠지.'
비슷한(실제로는 훨씬 더 작았던) 크기의 바위를 내가 손으로 꺼내서 치우는데 45분 정도 걸렸었다.
그 정도도 꽤 빠르다고 생각했었다.
그 순간 바가지 뒤에서 갑자기 집게가 튀어나왔다.
내가 그게 뭔지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집게는 바위를 잡더니 땅속에서 그대로 뽑아 올린 후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기계 팔은 무심하게 다시 바가지를 잡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포크레인 기사는 작업 내내 한물 간 음악들을 틀어놓고 흥얼거렸고 난 그걸 들으며 속으로 울고 있었다.
다시는 삽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숲과 농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숲에는 지금까지 개체수로 약 5만 개체의 꽃이 내 손을 거쳐 심어진 후 자라고 있고 그 꽃들이 앞으로도 문제없이 다 잘 자랄 수 있게 난 늘 고민하고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
다만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궁금해했어야 할게 내 농장 사정이 아니었던 것처럼 꼭 직접 물 주고 땅 파는 일이 내가 할 일은 아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