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모음

여름

by 조민성

아래 밭 영감님은 참 부지런하시다.

어느 날은 옥수수가 갑자기 심어져 있더니 어느샌가 사라졌다.

이러다 어느 날 오면 다시 고추밭으로 변해있곤 한다.




이게 참깨였던가 뭐였던가.

밭일이 지겹도록 싫어서 모른 체하고 살았더니 정말 잊어버렸다.

깨를 털어놓으라고 도리깨를 던져주고 가시자마자 마른 깨 줄기들을 가루로 만들어놓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돌아오신 아버지께 내가 가루가 될 뻔했던 기억까지.




마을 분들은 정말 부지런하시다.

계절마다 꽃이 바뀌는데 그중에는 내가 포기해버린 매년 캐고 심어야 하는 열대식물들도 있다.




개들이 모여있길래 또 뱀이 나왔나 싶어 다가갔다.

사이좋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분명히 밥을 먹이고 나왔는데.




가끔 꽃을 흑백으로 찍을까 그대로 찍을까 고민한다.

비 오는 날의 숲은 평소와는 다르게 진하고 흑백의 음영은 탁하고 어두워 훨씬 느낌이 산다.

둘 중 하나를 고르기 힘들어 결국 모두 찍어 남겼다.




코기가 점점 겁이 많아진다.

빗소리가 굵어지자 다래덩굴 밑에 숨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먹을 것 앞에서는 멧돼지로 변한다.




조리개 값이 높은 렌즈로도 큰 보케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조리개 값이 조금이라도 낮은 렌즈를 어떻게든 싸게 구해보려 중고매물을 뒤지던 날들이 스쳐갔다.

역시 기계는 뜯어봐야 어떻게 쓰는지 제대로 알게 된다.




농장 정문에는 외부인이 못 들어오게 출입금지 팻말이 달려있지만 가끔 몰래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비나 태풍이 올 때마다 나무 기둥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걸 그대로 둔다

일부러 부러진 부분들을 위로 세워놓았다.

당신은 초대받지 못한 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식물마다 맺히는 물방울의 크기가 다르다.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방향도 다르다.

부위 별로 또 다르다.

가만히 보면 필요한 만큼 모아서 가져간다는 걸 알 수 있다.

행동의 진화가 먼저 일어나는 인간에게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흰색은 금방 지저분해진다.

어릴 적 온갖 더러움을 몸에 묻히고 돌아다니던 내게 어머니는 늘 흰 옷을 입히셨었다.

내 몸에 뭐가 묻는지 직접 봐야 한다나.

13살이 되고서야 처음으로 내 흰옷에 묻은 얼룩을 내 손으로 지워봤었다.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쭉 걸어 나가면 20분 정도 걷게 된다.

수풀과 덩굴이 길을 덮어가고 있다 보면 옆산 아저씨께서 한 번씩 장비로 정리해주시는데 왜 자꾸 그냥 두냐고 물어보신다.

잘 모르는 남의 숲에 들어온 것 같아서 좋다고 대답했었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동네에는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언제 버스가 올지 모르는 빨간 벽돌 정류장이 있다.

가끔 지나가면서 앉아계신 어르신과 눈을 마주치면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가시냐고 여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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