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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Mar 30. 2021

엄마가 서툴러 미안해

"엄마가 너한테 줄 사랑이 없어. 미안하구나"

2021.3.30.화



"그때 내 나이가 몇살이었을까요.? 11살? 12살? 이었던 것 같아요. 늘 차가웠던 엄마. 따뜻하게 안아주고 품어주는 엄마의 기억은 거의 없었던 어린시절이었어요. 하루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마한테 다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저한테 사랑을 주세요" ("妈妈, 你给我爱吧。") 그때 엄마가 아주 작고 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들아, 엄마는 너한테 사랑을 줄 수 없어." ("妈妈不会")


그 말에 슬퍼서, 서운해서, 펑펑 울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엄마가 산처럼 큰 존재로 느껴지는게 아니라, 나와 똑같은 그저 나약한 한 인간으로 느껴졌어요.  작고 쳐진 어깨. 생기 잃은 눈빛. 힘없이 지친 표정. 그때 이후로 신기하게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졌고, 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토론방 제목은 <나는 언제 나의 부모와 마음속 깊이 화해했는가?> 였다. 클럽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 친구의 이 고백이 오래 마음을 울렸다. 보통의 엄마라면 "엄마 나 좀 사랑해줘. 나 좀 챙겨줘" 라는 자식의 말에 뭐라고 대답했을까? 무조건반사적으로 자기 변호를 하겠지. "무슨소리야??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 엄마 맘 몰라?"


우리는 참.. 생각없이 말을 던져 결정적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 우리가 잠깐 멈추어 생각해본다면, 그럴 수 있다면... 허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엄마의 자기인식과 솔직담백한 고백, 그리고 그 고백이 깊은 슬픔이 아닌 놀라운 알아차림과 이해로 연결된 건 기적이 아닐까. 이 장면이 영화처럼 기억에 남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쉽지 않은 자기인식. 쉽지 않은 고백. 쉽지 않은 용기, 아니.. 용기라기보다 사는게 너무 힘들어 토해낸 말일 수도.   


나는 언제 엄마와 화해를 했나.. 돌이켜보니,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였다. 어느새 어린시절 기억속 엄마보다 더 늙은 중년의 엄마가 된 나. 그때까지도 엄마와의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하고 징징거리고 짜증을 내곤 했던 늙은 나. 왠일인지 그 날 엄마, 아빠, 나 셋이서만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아빠는 일찍 주무시고 엄마랑 나는 새벽까지 옛이야기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밤. 이야기가 무르익자 난 무슨 용기였는지, 그날의 일을 꺼냈다. "엄마 초등학교 6학년때, 그 날, 엄마 그 한 마디 말에  '아, 이 사람은 내 엄마가 아닐 수도 있구나'라  생각에 밤새 울었어. 울음소리가 새어 나갈까 이불속에서 꺽꺽 울었어."


그 말을 꺼내 놓으면서 내가 엄마한테 기대한 건 뭐였을까. "아이구. 딱하지..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그땐 참 엄마 힘든거만 알고 니들 힘든건 몰라봤구나. 엄마가 철이 없었다" 어린 시절 혼자 눈물 삼켜야 했던 많은 순간들에 대한, 엄마의 진심어린 공감과 사과를 바란 것일까.


엄마는 너무나 엄마답게 반응하심 "그런 일이 있었니? 엄마는 기억도 안나는데, 뭐 그런 걸 아직까지 맘에 두고 그러니?" 그리고 시작되는 변명과 합리화. 엄마가 그때 할머니때문에 아빠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라면서 늘 들었던 그 이야기. 예전 같았으면, "엄마 또 그 자기연민! 자기합리화! 어떻게 엄마는 늘 엄마만 옳고 주변 사람들은 다 틀려? 어쩜 그래???" 하고 따박따박 반박했을텐데, 그날은 왠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엄마는 이렇게 힘들구나. 필사적으로 자기방어를 하며 움추린 어린아이가 내 눈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에게 따뜻한 사랑, 돌봄, 존중 받지 못하고 식모처럼 일하고 동생들을 돌봤던 50년전 소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엄마에 대한 원망은 울 딱한 엄마.로 바뀌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엄마에게 '미안하다 딸아. 얼마나 힘들었니' 라는 말을 기대하지 않는다. 엄마의 인생이 충분히 힘들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엄마를 안아줘야지. '엄마, 많이 힘들었지? 이제 내가 챙겨줄께. 오래오래 행복하자.'


나와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면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여야 할지가 조금은 분명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에게 바라는 건 '완벽한 엄마'가 아닌 '솔직한 엄마'가 아닐까. 엄마가 조금 부족해. 그래서 사랑을 잘 못주겠어. 날마다 실패하네. 미안해. 하지만 노력할께. 우리의 그 고백에, 11살 아들은 엄마를 꼭 안고 그 작고 작은 손으로 엄마 등을 토닥 토닥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가 "엄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나 너무 속상했어. 라고 말하면, 이렇게 말을 바꿔보자.

before : "엄마가 언제 그랬어?" (부인) "그거 다 너 잘되라고 그런거야~" (합리화)

after :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그때 참 서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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