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라야 한다?
"엄마 3,000만 원"
전세 살다가 아파트 사서 이사하기로 한 아들이 전화 왔다. '엄마, 3,000만 원'이라는 말만 들어서 3천만 원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줄 알았다. 수화기를 통해 다시 아들이 이야기했다.
"엄마! 이번에 엄마돈 3,000만 원만 우선 갚아드릴게요."
"3,000만 원 달라는 것이 아니고 갚아준다고? 내가 너한테 돈 빌려준 적 있었나?"
"결혼할 때 엄마가 전세 얻어줬잖아. 한꺼번에 다 주지는 못하고 조금씩 갚아줄게. 그동안 모은 돈이 3,000만 원밖에 안 돼"
결혼 때 전세금을 다 준 것도 아니고 우리 형편대로 해 준 건데 아들은 그 돈을 갚아주겠다고 했다. 순간 울컥해서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oo아 전세 얻을 때 준 돈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당연하지. 엄마 돈인데 갚아야지"
아들은 결혼식 때 사용한 비용도 보내왔다. 그냥 송금해 왔길래 의아해하면서 받았는데 이번에는 전세금을 돌려주려고 하는 아들이었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다. 우리 둘 다 늦둥이여서 결혼할 때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고 아이들을 맡길 때가 없어서 전전긍긍한 날이 많았다. 놀이방에 갈 때마다 가기 싫다고 울었던 아이다. 우리 부부가 둘 다 늦을 때는 놀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아파트 경비실에 맡겼다. 아들은 모자가 눈까지 내려와서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꼼짝도 않고 선생님이 앉혀준 대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아이였다. 모자를 벗기니 더웠는지 땀이 흠뻑 젖어있었다.
아들 군대 갈 때도 맞벌이라는 이유로 가지 않았고 면회, 제대할 때도 갈 생각도 못 했다. 지금도 군대 이야기 나오면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은 딱 한 번 군대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먹먹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부터 준비물도 혼자 챙겨서 갔다. 늦잠 자서 학교 못간 날도 있어서 전화 온 적도 있었지만 혼자서 척척 해냈다.
"엄마. 나는 맞벌이 안 할 거야"
며느리는 집에서 주부로 열심히 살아가고 아들은 혼자 경제활동 한다. 올해가 5년째다. 곧 두 번째 생일이 되는 손자가 있고 다음 달에 손녀가 선물로 온다. 우리는 돈으로도 부부싸움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아들 부부는 싸울 일이 없다고 한다. 강아지 '봉봉이'도 키운다. 밤에 아이 재우고 둘이 맥주 한 캔 마시며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것 보면 우리 때와 다르다.
꼭 맞벌이라야 되는 줄 알았다. 아들 부부를 보면서 맞벌이를 꼭 해야 하고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맞벌이가 싫다는 아들의 말을 들을 때 반성이 됐다. 아들 부부가 아이를 낳고 예쁘게 키우는 모습을 보며 맞벌이한답시고 아이 키우는 데 신경 쓰지 못한 우리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고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oo아,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부모에게 부탁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감사한 일이거든. 너희가 예쁘게 잘 살아줘서 고마워. 그 어떤 선물보다 좋은 선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