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것을 쫓다가 작은 행복을 잃었다.

비교 속에 잃어버린 행복

개가 고깃덩이를 물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개는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그것이 더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다른 개라고 믿었다. 그래서 개는 제 것을 놓아버리고 다른 개의 고깃덩이를 빼앗으려고 덤벼들었다. 그리하여 개는 두 가지를 잃었다. 하나는 애당초 없었던 것이기에 얻을 수 없었고, 다른 하나는 강물에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이솝 우화> 중에서




고깃덩이를 물고 있는 개는,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더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다른 개라고 믿었다. 그 결과 제 것까지 잃었다. 나 또한 더 큰 것을 쫓으려다가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어리석은 순간이 있었다.


결혼 초기, 나는 행복했다. 어머니, 언니와 함께 살던 작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남편의 발도 씻어주었다. 밥하고 반찬 하는 것이 즐거웠다. 결혼 전 혼자 지냈던 외로운 시절이 많았기에 남편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친구의 34평 아파트 집들이에 다녀온 순간, 마치 이솝 우화 속 개처럼 내 앞에 흐르는 강물에 비친 환상을 보게 되었다. 친구의 큰 아파트와 비싼 가구들이 물에 비친 더 큰 고깃덩어리처럼 보였고, 그동안 소중히 여겼던 내 행복은 갑자기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비교가 되는 순간, 행복은 불만으로 바뀌었다. 은행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고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었다. 집은 커지고 환경은 좋아졌지만, 우리가 잃은 것은 소중한 부부관계였다. 물에 비친 환상을 쫓다가 실제로 가지고 있던 행복마저 놓치고 말았다.


요즘 '소셜 미디어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다. SNS에서 타인의 완벽해 보이는 삶의 모습을 보며 비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나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지위에 대한 불안은 우리가 누구와 자신을 비교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며 불행해지곤 한다. 우리는 모두 이솝우화 속 개처럼, 강물에 비친 환상을 실체로 믿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산 후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여보! 빨리 나와봐. 이게 뭐야"부엌 바닥은 미역으로 덮여있었다. 남편은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시장에서 물었는데 너무 많은 양을 물에 담겨놓은 것이다. 또 한 번은 가물치가 임산부에게 좋다는 말을 듣고 사 왔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남편은 찜통에다 소금과 가물치를 넣고 뚜껑을 닫았는데 가물치의 힘을 남편이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가물치도 바닥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었다. 서툴지만 서로를 이하는 마음, 어설픈 표현들이 얼마나 귀중했던가. 하지만 나는 그때 더 큰 집, 더 나은 환경만을 쫓느라 이런 소중한 순간들의 가치를 놓쳤다. 50대가 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쫓던 것은 실체가 없는 환상이었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함께 독서하며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별거까지 했던 부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화목하게 지낸다. 이솝우화의 개가 강을 건너기 전으로 돌아가, 물에 비친 환상이 아닌 자신이 실제로 물고 있는 고기의 가치를 알아본 것처럼.


욕심은 우리 눈을 흐리게 하며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하게 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행복의 큰 적이다. 진정한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치를 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비교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오늘도 강을 건너는 개처럼, 환상과 실체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기를. 개가 강을 건널 때 자신의 입안에 있는 고기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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