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새롭게 태어난 인생2막
늙은 말이 맷돌 돌릴 말을 찾던 방앗간 주인에게 팔렸다. 늙은 말은 방앗간에 매이자 탄식하며 말했다. "경마장을 돌던 내가 이런 데서 돌고 있다니!" <이솝 우화> 중에서
한때 경마장에서 누비던 명마가 맷돌을 돌리는 운명을 한탄하듯이, 나름대로 화려했던 과거와 달라진 현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다.
퇴직한 선배들이 직장에 볼일이 있어서 가끔 들른다. 대부분 산에 다녀온 모습이다. 직장만 다니다가 등산하고 여유로운 생활에 얼굴이 밝아 보인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시간이 갈수록 세월의 흔적이 보이고 삶이 따분해 보인다. 나 또한 "30년 이상 일했는데 등산하면서 놀면 되지 뭐"라고 편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퇴직 후 편하게 놀고 지내기는 남은 시간이 많다. 우화 속 경주마처럼,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함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접어두고 새로운 자신의 가치를 찾을 준비가 필요하다.
남편과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극도로 사이가 좋지 않을 때인데 남편이 지나가듯 말했다. "독서 특강이 있는데 갈래?" 남편과 말이 하기 싫어서 단번에 거절했다. "갑자기 독서는 무슨? 그런 자리에 내가 왜 가"하지만 그날, 독서 특강에 가게 되었고 인생 2막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 당시 불편했던 상황 속에서도 독서 특강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것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어릴 때 책을 좋아했다. 집에 책이 없어서 친구에게 빌려서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책을 접하게 된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책에 푹 빠져들었다. '본깨적(보고 듣고 적용한다)'이라는 책으로 하는 독서 특강이었는데 2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책을 읽고 깨닫는 것을 책에 기록하는 것은 물론 적용하는 것까지 사례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모든 책은 너의 내면에 잠든 무언가를 깨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잠자고 있던 독서에 대한 열정이 깨어났고 인생 2막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는 영혼의 양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 '양식'이 메마른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독서 특강에서 5~6명이 한 조가 되었다. 같은 책을 읽고 깨달은 것과 적용하는 것을 발표했다. 같이 줄을 그은 문장인데 해석이 완전히 다른 것과 재미있게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책에 있는지도 몰랐던 부분을 누군가는 깨닫고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했다. 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려는 경형이 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지는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중략) 타인의 세계에 들어서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입니다."라고 했다. 독서 모임에서 다양한 해석을 나누는 과정은 나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독서 특강에 계속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한다고 했다. 그 당시는 서울까지 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포기한 상태였는데 '독서 기본 과정'이 부산에서 한 번 더 열리게 되었다. 술과 독서를 바꾼 시간이었다. 시간만 나면 직원들과 회식하고 노래방에서 놀았던 내 삶이 독서와 글쓰기로 채워졌다. 만나는 사람. 대화 내용, 환경 모든 것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유독 외롭게 느껴졌던 나였다. 독서를 만난 이후로 하루 종일, 1개월, 6개월 혼자 독서하고 있어도 행복했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바꾸어 주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라고 말했다. 독서는 잠자던 세포를 끼우고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려 주었다. 퇴직 후의 삶은 지난날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나는 독서로 다시 태어났다. 독서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서는 신을 내게 주신 선물이다.
독서는 자신을 성장시킨다. 경주마가 맷돌을 돌리는 일을 한탄했듯,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마장에서 맷돌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어쩌면 직장에서 성공이 아닌 자신과 진정으로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퇴직 8년을 남겨두고 독서를 만났다. 일반적으로 인생 2막 준비는 10년은 해야한다고 한다. 독서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내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