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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공공 Mar 30. 2022

퓌제트와 프라질

나만의 세계가 다채로워지는 순간

노란 줄무늬의 하얀 등대에 사는 퓌제트는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이 세상에 여자아이는 자기 하나뿐이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본인이 짜 놓은 루틴 속에서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는 퓌제트. 해와 파도와 새, 물고기, 배, 구름까지 자기가 만들어 배치하는 대로 있음에 만족한다.

그리고 퓌제트 곁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항상 곁에 있어주는 펭귄이 있다.

모닝 루틴 중인 퓌제트

그러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상자가 파도를 타고 온다.

상자 안에는 다른 여자아이가 타고 있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퓌제트는 여자아이에게 다시 가라고 나름 정중히 말한다.

말이 없는 이 여자아이는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하고, 퓌제트는 상자에 붙어있던 '취급주의'를 보고 여자아이를 '프라질'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프라질은 이름과는 다르게 너무나 자유롭고 조심성이 없는 아이였다. 마음 가는 대로 퓌제트의 세계를 마구 흐트러놓는다. 그것이 불편했던 퓌제트가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쉽게 넘어 퓌제트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는 프라질.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물건을 사용하고 놀이를 하는 프라질이 못마땅하지만, 한편으로 재미있어 보였는지 어느새 같이 놀며 웃고 있는 퓌제트가 보인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함께 물고기들을 춤추게 하던 퓌제트는 밤이 되자 다시 본인의 루틴으로 돌아가려 한다. 퓌제트의 집이고 중심인 등대에는 프라질을 들이고 싶지 않다. 이때 펭귄의 모습이 재미있다. 자연스럽게 프라질 곁에서 자려고 하다가 화들짝 놀라 등대로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매몰차게 밖에서 자라고 해놓고 마음에 걸렸는지 이불을 가져다주는 퓌제트.

날이 밝았고 언제나처럼 퓌제트는 파도를 놓고, 해를 올리고, 새를 날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프라질 역시 언제나처럼 마음대로 자유롭게 행동한다. 결국 퓌제트는 프라질에게 화를 내며 돌아가버리라고 한다. 화가 나서 프라질에게 매정한 말을 내뱉었지만, 정말로 가버리는 것은 싫었던 걸까. 사실은 좀 더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마음을 표현하기도 전에 프라질은 떠나버린다. 허전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는데, 폭풍우가 몰려온다. 그리고 폭풍우 속에 있을 프라질이 걱정되는 퓌제트. "프라질 돌아와!" 외쳐보지만 소용 없자, 용기를 내어 프라질을 찾아 떠난다. 펭귄에게 등대를 맡긴 채 홀로. 자기만의 섬, 자기만의 세계에 있던 퓌제트가 거침없이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은 위태롭기도 하지만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누구나 한편에 그런 면이 있겠지만, 나도 퓌제트 처럼 루틴 속에 있을 때 편안한 성향이 있다. 그리고 나의 여섯 살 딸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나의 원가족도 그런 분위기였는데, 자라면서 그런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타고난 성향 탓이 있는지라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런 성향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기가 태어난 후로 더욱 힘들었다. 마치 퓌제트의 세계에 프라질이 들어와 마구 흐트러놓은 것처럼, 아기는 나의 예상과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열심히 나의 세계에 틈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퓌제트가 섬을 떠나 홀로 프라질을 찾아 떠난 것처럼 과감한 시도는 없었을지 모르나, 아이들 덕분에 하나씩 깨어지고 그 틈으로 새로운 파도가, 흙이, 씨앗이 들어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고 나의 세계를 다채롭게 해주는 것 같다.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었던 퓌제트는 무사히, 그렇지만 혼자, 등대로 돌아온다. 프라질을 다시 만나게 되고, 다시 만난  프라질에게 건네는 말의 온도가 사뭇 다르다. 프라질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프라질도  발짝 퓌제트의 마음에 다가가는 듯하다. '퓌제트'라는 낱말과 함께.



*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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