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아카와 시아

고양이가 내 손을 잡던 날

by 김주영

나와 고양이의 인연이 시작된 건 15년 전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사귀었다가 헤어진 시점이었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고 있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전화가 울려왔다. 새끼 고양이 둘을 세 달 동안만 맡아달라는 전화였다. 일하던 곳에서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 둘을 발견해서, 부모님 집에 데려와 키우고 있는데,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이대로 고양이를 두고 가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엄마가 십중팔구 고양이를 집 밖으로 내쫓을 게 뻔하니, 여행 동안만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고양이는 안중에도 없이, 그녀가 전화한 것 만으로 반가웠다. 그녀와 내가 고양이를 핑계로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으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녀의 부탁은 실은 부탁이 아니라 인연의 신호였다. 그렇게 나는, 고양이와의 첫 만남을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으므로, 그녀로부터 고양이 집사의 기본 임무를 전달받았다. 고양이 이름은 ‘아카’와 ‘시아’, 합쳐서 아카시아. 서로 형제 사이였다. 생후 1년이 안 된 갈색 고양이었다. 크기는 내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아이들이 집에 온 첫날, 아카와 시아는 나의 환대를 뿌리치고 숨을 곳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옷장이나 싱크대 틈새로 숨어들었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출근하기 전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놓고, 마실 물을 갈아주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웠다.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사료와 물이 비워지고, 화장실에 아이들의 배설물 흔적이 보였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아카와 시아는 집에 없는 것처럼 굴었다.


아카와 시아가 집에 온 지 나흘째 되던 날, 퇴근하고 현관문에 들어섰다. 여전히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여느 때처럼 사료를 채우고,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운 뒤, 거실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켰다. 한창 TV에 열중하고 있는데, 내 옆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어느 틈엔가 고양이 시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시아가 달아날까 싶어 미동도 못 했다. 난생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 얼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렇게 긴장되면서도 어색한 정적의 순간이 흘러가는데, 시아가 결심한 듯 엄지손톱만 한 자기 앞발을 내 손가락에 살짝 얹었다. 발바닥의 부드러움과 발톱의 단단함, 서로 이질적인 감촉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내 손가락에 온기를 전했다. 인간 말고 다른 생명이 전해주는 기운이 내 몸 안에서 퍼져 나갔다. 내 마음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팡 터졌다. 이 아이가 드디어 내게 마음을 여는구나. 설레었다. 내가 자기들 밥 주고 물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걸 아는구나.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본심을 드러내는 장난꾸러기가 됐다. 내가 보는 앞에서 집안을 맘 놓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TV 액정 화면에 발톱으로 흠집을 잔뜩 내놓고, 천으로 된 소파도 무자비하게 뜯어놨다. 시아는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에서 알 수 있듯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반면에 아카는 조심스러운 성격이었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내 어깨 위에 올라탈 정도로 친밀해졌다.


그날 고양이가 내 손을 만지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종(種)과 교감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고양이와 관계는 이렇게 손을 잡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했다.


인도에서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는 아카와 시아를 계기로 나와 다시 만났다. 아카와 시아는 나와 고양이를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도 연결했다. 나의 은인이다. 그 뒤로 아카와 시아는 우리 부부와 5년을 함께 살다 무지개 저편으로 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 부부는 고양이 열둘, 강아지 둘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고마웠어, 아카 그리고 시아. 너희가 내게 내민 그 손이 내 인생에 새로운 문을 열어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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