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의 변화
우리 시골집엔 열두 고양이가 함께 산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은 물론이고 지붕과 울타리 위, 집 주위 곳곳에서 노니는 고양이를 볼 수 있다. 집에 사람 목소리보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 자주 들린다. 내가 하루 중 제일 많이 내뱉는 말은 고양이 이름이다. 아침에 눈뜰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고양이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고양이다.
처음부터 고양이가 이렇게 많았던 건 아니다. 고양이가 많아진 데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내 때문이다. 아내와 결혼 전에 동거하면서 고양이와도 동거하게 되었다. 그때 아내가 데려온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 둘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아내가 동물 보호소에 자원봉사를 다녔다. 그곳에는 버려지고 병든 고양이들이 많았다. 안락사를 앞둔 고양이도 있었다. 아내는 이런 고양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 데려와 임시 보호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입양을 보냈다. 입양을 가지 못한 고양이는 우리가 입양했다. 아내는 집에 데려온 고양이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이런 아내의 손길이 없었다면 아마 제대로 자기 명을 지키지 못했을 고양이가 많았을 것이다. 이러면서 집 안에 고양이가 하나둘 늘어갔다.
가여운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는 했지만, 집안에 점점 고양이가 늘어나자 결혼하고 처음으로 나는 아내와 다퉜다. 나는 그전까지 고양이를 비롯해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고양이에게 점령당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점차 아내도 나의 이런 불만을 느꼈는지 고양이를 여섯에서 더 이상 늘리지 않았다.
동물과 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에 고양이와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낯설었다. 두 발로 걷는 동물이 네 발로 걷는 동물을 대하는 건, 인간 외에 다른 존재에게 관심을 둬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와 나 사이에 강이 놓였다. 왠지 서로 데면데면했다. 고양이가 싫었다기보다 동물과 사는 게 서툴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고양이와 관계 맺는 데 소극적이었다. 아내가 데려왔으니, 아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서 고양이를 돌보는 건 주로 아내 몫이었다. 직장생활도 핑계의 하나로 들었다.
나는 고양이의 리듬과 종종 부딪혔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어느새 내 뒤에 와 있던 고양이의 꼬리를 밟기도 했다. 이불속에서 잠들어 있던 고양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앞발이나 꼬리 등을 밟기도 했다. 그때마다 고양이는 앙칼진 소리를 내며 나를 원망했다.
집 밖으로 나가려던 고양이를 제지하다가 고양이 발톱에 큰 상처를 입어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단지 아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니, 나는 고양이와 교감보다는 의무감이 앞섰다. 애정에 기반한 관계라기보다 책임감에 기반한 관계였다. 의례적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털을 빗겨줬다. 사랑스러운 손길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것처럼 아이들을 대했다. 아이들과 친밀감을 쌓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사랑이 넘치는 아내가 마냥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렇게 고양이들과 어색한 동거를 지속하다, 4년 전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다. 시골에 오자 고양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양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그제야 고양이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서로 다른 종(種)이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양이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 내 생활은 고양이와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시골에 와서 고양이도 늘어 열둘이 되었다. 도시에서와 달리 고양이들은 집 안팎을 자유롭게 오간다. 나가고 싶을 때 나갔다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온다. 도시에서 살 땐, 고양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도시의 거리는 고양이에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차에 치일 수도 있고, 복잡한 골목에서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골엔 고양이가 안전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너른 마당이 있고, 집 주변에 차가 자주 다니는 도로가 없다.
집에 고양이가 많으므로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오면 우선 고양이에게 눈을 빼앗긴다. 고양이의 유연한 몸놀림과 도도한 발걸음, 무엇보다 낯선 이를 향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손님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손님들과 앞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별채에서 요가를 할 때도 고양이들은 수시로 참견한다. 사람의 다리에 몸을 비비거나 배 위에 올라타거나 몸에 기대어 눕는다. 우리 집에 왔다 간 아이들은 고양이들이 보고 싶어 우리 집을 다시 찾곤 한다.
아내와 만나고 고양이와 살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나의 감각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마당을 뛰노는 고양이들을 보며, 내 마음도 함께 넓어진다. 고양이들의 움직임에서 집안 가득 살아 있는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인간 중심의 시선을 넘어 자연 전체를 품는 감각을 배운다. 이제는 고양이들도, 마당의 풀 한 포기도 모두 선물처럼 느껴진다.
우리 시골집은, 매일 고양이와 함께 삶의 기쁨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