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듬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내가 자주 하는 동작이 있다. 나는 그것을 ‘고양이 동사’라 부른다.
단어장 맨 앞 페이지에 ‘쓰다듬다’라고 적는다. 쓰다듬는 행위는 고양이를 향한 애정 표현이자 교감의 방법이다.
쓰다듬다 옆에 비슷한 단어 ‘만지다’를 적는다. 만지다와 쓰다듬다, 두 단어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두 단어 모두 접촉을 뜻하지만, 느낌은 다르다.
‘만지다’는 주로 일방적이지만, ‘쓰다듬다’는 서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의 동사는 자신 안에 많은 동사를 포함한다.
‘보다’라는 동사를 예로 들면, 쳐다보다, 바라보다, 째려보다, 응시하다, 읽다…. 등등. 여러 동사로 다시 표현될 수 있다.
‘쓰다듬다’도 그렇다. 쓰다듬는 동작은 실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손바닥을 활짝 펴서 쓰윽 훑을 수도 있다. 손가락 끝으로 살살 긁을 수도 있다. 간지럼을 태우듯 톡톡 건드리거나, 마사지하듯 꾹꾹 눌러줄 수도 있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동작은 이렇듯 다채롭게 이루어진다. 손길의 기술이라고 할까?
나는 왜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 편안해질까?
하나의 언어를 공유할 수 없는 다른 종(種)이, 서로 환대를 확인할 방법은 살과 살을 맞대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이 있을까?
내가 고양이를 쓰다듬지만, 고양이가 나를 돕는다. 내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고양이는 나에게 골골송을 선물한다.
상대에게 말 대신 손으로 전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내 검지를 너의 손바닥에 대고 연필처럼 이용하던 순간.
영화 속 이미지가 하나 있다.
두 모녀는 카메라를 등지고 나란히 앉아 있다.
그녀들 앞에는 아득한 수평선이 펼쳐져 있다.
엄마가 상심을 겪은 딸의 등을 위아래로 반복하여 쓸어내린다.
생명의 온기, 생명이라는 따뜻함.
기쁨과 신뢰가 서로에게 파고들어 퍼지는 시간.
생명을 쓰다듬을 때 세상은 평화롭다.
집사들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생명의 연결을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