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대훈 Mar 07. 2024

139

3.7 

근황


1

사람을 향한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무언가 잘못된 듯하다.

2

무균실에 갇혀 있는 꿈을 꿨다. 하얀 방에는 넋과 혼이 공존해 있었다.

3

음식은 꼭꼭 씹어 부드럽게 넘기는 게 좋고, 시는 꿀떡 삼켜 확 체해버리는 게 좋다.

4

턱 밑으로 송곳이 자란다. 늙수그레한 곰벌레 한 마리가 그 사이를 기어간다. 그것은 신분이라고 불린다.

5

가만히 멎는 순간이 잦다. 밥을 먹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허공을, 머리카락을 말리다가 팔을 멈추고 땅을 본다. 자꾸 시끄럽다.

6

일어나자마자 세계는 밤이다. 해가 새카맣다. 어제는 분명 핏빛이었다.

7

어떤 경우에는 표면이 심연이 되고. 그러나 여기는 우글거린다. 파리 떼다. 시계 초침 소리가 너무 거슬려 확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가증스러운 예민함.

8

빛을 머금은 물방울같이 죽음은 화창한 낮

9

사실 밤 같은 건 없는 거다. 두 쪽이 난 오후의 한쪽이 다 타버린 잿빛이 됐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질질 끌어다 놓은 거다. 그리하여 오후와 새벽만 남는다.

10

맥주를 들고 벤치에 앉아 황막해진 나무를 시새움한다. 고요하게 침잠한다. 그가 손목을 자른다. 초록을 돋게 하기 위해 그는 새벽 내내 잘린다.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만일 쓰러질 위기에 처한다면. 그는 차라리 뿌리를 뒤집어버릴 것이다.

11

손이 무거우면 머리가 맑다. 머리가 무거우면 발이 가볍다. 발이 무거우면 눈 이 깨끗하다. 이 세 가지 지혜가 한 번에 작동하려면 아마 열 번은 죽어야 할 것이다.

12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식을 할 때부터 나는 구역질이 난다. 그렇다. 시각이라는 건 구토를 유발하는 것이다.

13

그리고 혼잣말이라는 병세가 깊어진다. 혼잣말을 하는 목젖을 해부해 보면 촘촘한 쇳가루 같은 게 바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부엌에 가니 온갖 칼날이 나를 향해 있다.

14

스스로의 대한 자족감이 소외감으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극도의 자기혐오와 허무의 늪으로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독과 능청 사이에서 괜찮은 척하느라 미쳐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5분도 안 걸릴 것이다.

15

자유라는 것은 없다. 죽음마저도 내가 결정할 수 없다. 해방감은 곧 모멸감이다. 그러나 의지라는 것은 있다. 자유의지. 때때로 그것은 명징한 자유가 된다. 그때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존재에게 역으로 모멸을 준다. 통쾌한 반항이 시작되는 것이다.

16

바닥에 기어 다니는 먼지를 닦다가 팔을 뒤로 하로 주저앉는다. 정적이다. 나는 머뭇거리며 염원하였다. 내 뒤에 있는 투명하고 의미심장한 힘들에 밀어내지고, 내 앞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끌어당겨지면서. 처연하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으로. 부디, 이 괴로움의 끝이 없게 하시라고.

17

그렇다. 인간의 바닥은 지극히 난해하고 모호한 것이다. 모순과 모호함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순간이 바로 존재의 시간이다.

18

그리하여 욕망의 고갈. 그게 곧 죽음이다. 쓰는 자에게는. 나는 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13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